Part3 - 그저 주어진 길을 가다 서다
“스스로 자기 에너지 수준을 알고 있어야 돼요. 그래야 인간관계도 수월해집니다.” 이호선 교수의 숏츠 영상으로 아침을 열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오래도록 머릿속에 맴돌았다. 고갈된 에너지를 회복하는 방법은, 좋아하는 문장을 읽고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점점 더 버겁게 느껴진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감정을 나누는 일이 끝난 뒤엔 꼭 방전된 배터리처럼 멍해진다.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TV를 켜고, 아무 생각 없이 채널을 넘기다가 문득 창밖을 보면 하루가 다 저물어 있다.
올해 들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일이 줄면서, 자연스레 수입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수입이 줄기 시작하자 불안과 초조함이 따라온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시기부터 시선은 바깥이 아닌 안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건강은 괜찮은지, 마음은 어떤 상태였는지,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질문들이 조용히 떠올랐다. 타인의 안부는 그렇게 자주 챙기며 살았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안부는 오랫동안 묻지 않고 지내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생각의 방향이 달라지자 마음 안쪽이 조금씩 비워졌고, 그 빈자리에 조심스럽게 자신을 들여놓게 되었다.
책 읽기는 여전히 어렵다. 운동처럼 시작이 힘들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책장을 펼쳐 ‘15분만’ 읽자고 다짐하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전자책을 정기구독하며 책을 많이 읽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제목조차 흐릿해진 책들이 대부분이다. 읽는 동안은 분명 위로를 받았는데, 그 위로는 금세 사라졌다.
그래서 방식을 조금 바꿨다. 예전처럼 글을 전투적으로 읽어 내려가기보다는, 문장 하나에 천천히 시선을 머물기로 했다. 마음에 들어온 구절을 옮겨 적고, 그 아래에 생각을 덧붙여본다. 왜 이 문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는지, 어떤 감정이 불쑥 올라왔는지,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고, 천천히 대답하며 적어 내려간다.
그렇게 쓰다 보면 애쓰지 않아도 드러난다. 지금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어디쯤 서 있는지, 책 속 문장이 거울처럼 마음을 비춘다.
에너지가 고갈될 때 찾아드는 책 한 권은 잠시 머물다 쉬어갈 수 있는 조용한 쉼터가 된다. 문장 하나에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그 안에 머물다 보면, 잊고 있던 감각이 천천히 되살아난다.
오늘도 책 한 권을 집어든다. 그리고 어느 한 문장에서, 에너지 충전을 위해 조용히, 잠시 멈춰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