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그저 주어진 길을 가다 서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니 부모님께 드릴 봉투를 사러 문구점에 들렀다. 진열대에는 고급스럽고 화려한 봉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금빛 테두리, 예쁜 꽃무늬, 그리고 그 위에 적힌 말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 말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아무 무늬도 없는 흰 봉투들도 있었다.
매년 나는 늘 그런 봉투를 골랐다. 장식 하나 없이 조용한 흰 봉투에 ‘어버이날 축하드립니다’라고 짧게 적고, 내가 드렸다는 걸 알리기 위해 이름을 썼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내 마음을 담았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사랑합니다’라는 문장이 눈에 밟혔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사랑한다는 글이 적힌 꽃무늬 봉투를 집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한다’는 말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마음은 분명한데, 그걸 말로 꺼내는 일은 자꾸만 멀어진다. 특히 부모님께는 더 그렇다.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그런 표현에 익숙하지 않다.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라는 말은 우리 가족의 오래된 습관처럼 굳어 있었다. 서로를 아끼고 고마워하면서도 굳이 말로 꺼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믿었고, 그래서 자꾸만 품 안에만 마음을 안고 살았다.
어느 날, 엄마와 전화 통화를 마치려던 순간, 엄마가 “우리 딸, 사랑해”라고 하셨다. 너무 뜻밖의 말이라 어색한 반응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하지만 그 대신, “엄마, 나도 사랑해”라고 답했다.
그제야 알았다. 사랑은 마음속에만 간직한다고 전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가슴속에 꼭 껴안고만 있으면, 그건 결국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내 안에만 남는다. 사랑한다는 말은 꺼내야 하고, 건네야 하고, 때로는 쑥스러워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올해는 흰 봉투 대신 사랑한다는 글이 적힌 봉투를 고르기로 했다. 마음을 전하는 일이 더디고 서툴러도, 표현 없는 따뜻함보다 조금은 어색한 진심이 낫지 않을까 싶어서다. 멀리서 빙빙 돌지 않고, 더는 미루지 않고, 지금 여기서. 어설퍼도 마음은 닿을 거라 믿으며, 사랑을 전하며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