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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신세를 지며 서다

Part3-그저 주어진 길을 가다 서다

by 고율리

유난히 남에게 신세 지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렇다. 친구에게 커피 한 잔을 얻어마시면 꼭 기억해 뒀다가 다음엔 내가 사고 만다.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돌려줘야 마음이 놓인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자꾸 뭔가에 걸린다. 그래서 아예 신세 질 일을 만들지 말자는 나만의 원칙이 생겼다.


그런데 그 원칙이 어느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되어 있었다. 친구가 밥을 사겠다고 하면 나는 무심결에 말한다. "아냐, 내가 살게." 말이 튀어나오고, 또 말이 이어진다. "지난번에 네가 샀으니까 오늘은 내가 사야지." "음... 그럼 다음엔 꼭 내가 살게." 평범한 말인데도 내 마음은 어딘가 불편하다.

KakaoTalk_20250520_124059761.jpg 고슴도치 룰루 / 고율리 그림

살다 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에게 신세를 질 때가 있다. 아는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질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부탁을 해야 하는 날도 온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곳이고, 서로 돕고 살아가는 일이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건데, 자꾸 마음이 무거워진다.


왜일까. 아마도 ‘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생각이 불쑥 찾아오기 때문일 거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남에게 신세를 질 때, 어떤 마음이면 좋을까.


‘고맙다’는 마음. 그리고 ‘나누며 살자’는 다짐. 그 마음이면, 괜히 무겁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살다 보면 신세를 지게 되는 순간이 있고, 그럴 때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건 참 고마운 일이다. 그 고마움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겠다는 다짐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지친 하루에 잠시 멈춰 선 이들을 응원하며, 오늘도 그 곁을 조용히 내어주는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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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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