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의 사색

by 운곡

운곡의 말 안 되는 듯 말 되는 이야기 시리즈 3



울과 늦가을의 경계에 걸쳐져 있는 11월의 휴일 아침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식탁 위로 가만히 내려앉는다..

창밖 공기는 이미 겨울의 찬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었지만, 아직은 가을의 온기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차갑지만 싸늘하지 않고 여름을 벗지 못한 가을 햇살의 성가심도 없는 차가움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이 지점을 나는 유난히 좋아한다..


의 아침은 늘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였다. 간헐적 단식을 하고 난 뒤부터 그 자리를 따뜻한 물 한잔이 대신 한지가 1년이 넘었지만, 얼마 전부터 체중이 너무 빠지는 것 같아 일주일 중 6일은 간헐적 단식을 준수하지만 휴일 하루는 내 몸과 적당히 타협하기로 했다.

그런데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커피 추출기가 있는 주방으로 향한다. 그리고 머그컵을 꺼내고, 원두를 그라인더에 붓는 동작들이 너무 자연스럽다.

내 몸의 루틴은 아직 그 동선을 기억하고 있었다.

원두가 갈리는 소리가 주방에 작게 울리고, 고소한 향이 집안에 흩어진다. 사실 나는 커피를 마실 때보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 향을 더 좋아하는지 모른다....


두가 다 갈리고 나면 핸드드립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물을 드리퍼 속의 원두 위로 약 2분 30초간 천천히 붓기 시작한다. 이때 중간 굵기로 거칠게 갈아진 원두는 향을 폭발하듯이 품어내기 시작한다

드립서브 속으로 떨어지는 커피를 가만히 지켜보며 마치 엄숙한 종교의식을 수행하듯 진지하다.


군가는 쉽게 그냥 커피 한 잔이라고 말하겠지만, 나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다. 커피추출 머신에서 강제로 착 즙 하듯이 뽑아내는 낭만 없는 에스프레소 커피보다 종이 필터에 걸러지는 드립커피를 더 좋아하는 이유이다..


는 약간 성격이 급한 편인데 커피나 차를 우릴 때에는 이상하리 만큼 느긋하다 마음의 속도도 함께 느려진다. 세상은 늘 빨리 돌아가라고 독촉하지만, 이 작은 공간에서 만큼은 속도를 내가 정할 수 있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뜨거운 커피가 머그컵으로 갈아탈 때 또 한 번 향이 작열한다. 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컵을 들고 베란다 창가에 앉았다. 늦가을의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얼굴에 닿는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면 쌉싸름한 첫맛과 입안에 머금고 있으면 크리미 한 신맛이 느껴진다.


피란 녀석이 보면 볼수록 묘한 녀석이다. 달다 쓰다 이렇게 단순하게 결론지을 수가 없다.

나는 산미가 높은 편인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커피를 즐긴다. 이 녀석은 꽃과 과일의 상큼함이 조화를 이룬 매혹적인 향과 산미를 가지고 있어 마치 우아한 귀 부인 같은 느낌을 준다...


피는 서둘러 마시려고 하면 뜨겁고 쓴맛만 나지만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음미하며 느낌으로 마시면, 풍부하고 깊은 오묘한 맛과 부드럽고 깔끔한 뒷맛이 일품이다.

일 아침 커피 한잔을 여유롭게 마시며 문득 생각에 잠긴다


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아왔는가?

대단한 답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저 오늘 하루라도 내가 좋아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은 것이다. 휴일의 아침이 주는 여유는 결국 나에게 ‘온전히 나답게’ 살라는 작은 메시지 같다....


밖 단풍나무에 절반에 약간 못 미치지만 아직 떨어지지 않은 단풍잎이 제법 남아있다 그들이 겨울에 떠 밀리는 가을을 붙들고 있는 듯하다...

계절은 이미 겨울이라 주장하지만 나무에 매달려 있는 단풍잎은 아직 가을임을 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의 쓸쓸함이 비치는 것은 그 안에 이미 새로운 계절을 받아들이려는 담담함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는 커피 잔을 쥐고 바람에 실려 떨어지는 낙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한 장의 낙엽이 떨어지는 데에도 시간이 있고, 방향이 있고, 이유가 있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어느새 커피는 절반이나 비워졌다. 잔을 두 손으로 감싸 본다. 아직 채 식지 않은 잔에서 전해지는 열기가 따뜻하다, 그 따뜻함이 마음속까지 스며든다.


자 커피를 마시며 느끼는 이 평온함이 좋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대화도 좋지만, 커피 한 잔과 나만 있는 이 조용함은 언제나 특별하다..


가을의 휴일,

아침 햇살과 함께 여유롭게 마시는 커피 한 잔.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하루가 아닐까?


피가 식어 가는 동안 나의 가을은 느릿느릿 떠날 채비를 하고 나는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커피를 마시며 떠나가려는 가을의 소매 깃을 가만히 잡아본다....


雲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