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작가]06.놀이 : '수포자'는 훌륭한 독자가 될 수 있다(A)
수학자 출신의 루이스 캐롤 덕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다말고 잠시 논리게임에 푹 빠졌다. 토끼를 쫓듯 캐롤의 책 <논리게임(The Game of Logic, 출처:iBooks)>을 붙잡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쳐다만 봐도 숨막히는 전공책으로 논리학을 처음 접했던 탓에 ‘수포자(수학포기자)’ 문과생이 글로 논리를 배웠던 고충은 상상이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명제논리인데 전건긍정이니 특칭부정이니 모순이니, 대반대, 소반대니 학술적 용어 때문에 지레 겁 먹고 책을 덮었다 폈다만 반복했는데, 알고나면 앨리스와 동물 친구들처럼 말장난 하면서 놀 수 있다. 끈기와 포기하지 않는 정신만 갖고 있다면 단언컨대, “어떤 ‘수포자’는 (캐롤의) 훌륭한 독자가 될 수 있다(B).”
명제논리를 찬장(cupboard)에 빗댄 것도 그렇고 <논리게임> 서문에 독자를 위해 남긴 그의 옛 주소지 ‘29, Bedford Street, Covent Garden, London.’ 를 보고 있으면 논리학 입문자를 위한 그의 배려와 동시에, 후대 평가를 차치하고 어린이를 향한 그의 남다른 애정이 엿보인다. 지금이라도 당장 캐롤에게 편지를 쓴다면, “진리값 F(False)와 부정 표현을 구분 못해 헤매는 어떤 한국인 독자가 있는데 왠지 답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어요.”라고. 여기서 퀴즈 하나. 부제(A)가 참일 때, 문장(B)의 진리값과 이 둘 관계를 캐롤의 찬장(Cupboard)그림을 이용해 설명할 수 있는 독자라면 아래 작가의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혼자 놀기의 진수’는 체셔 고양이와 앨리스의 만남부터 시작된다. 논리와 놀이의 경계를 오가는 탓에 캐릭터의 대화를 읽다보면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지만, 체셔 고양이와 앨리스의 대화는 참거짓 진리값 찾기 놀기의 서막을 알린다. 미친 걸 증명하라는 앨리스의 질문에 체셔는 “개는 안 미쳤어, 그건 인정해? 개는 화가 나면 으르렁대고 기분 좋으면 꼬리를 흔드는 건 알지? 난 기분 좋으면 으르렁대고 화가 나면 꼬리를 흔들어. 그러니 난 미친거지.” 어린이용 동화라고 긴장을 늦추다간 잠시 뇌에 쥐가 날지도 모른다. 연필을 집어들고 후건부정 논법을 따져야할지도 몰라서.
말장난 절정은 7장 미친 다과회(A Mad Tea-Party)인데 제정신이 아닌 모자장수와 삼월토끼가 앨리스에게 던지는 질문과 대답을 반대로 받아들이면 앨리스가 두 캐릭터에게 화를 내는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논리게임>에서 논리 좀 안다고 자랑하다가 있던 친구도 잃을 수 있다는 캐롤의 경고가 새삼 떠오른다. 일상 생활에선 자제하길. 무엇보다 모자장수가 물어보는 “갈까마귀와 책상이 왜 비슷하게?(Why is a raven like a writing desk?)”라는 수수께끼는 지금까지 회자되는 유명한 질문인데 구글링 결과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가 책상 위에서 갈까마귀에 대해 쓴 점, 둘 다 평평하고(flat), 노트(note: 음조, 기록)를 만든다는 점, 거꾸로 뒤집을 수 없다는 점(raven을 뒤집으면 nevar, never와 발음이 비슷함)이 가장 유력하다.
언어추리나 논리논증이 법학과도 관련 있다보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마지막 챕터가 재판장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과일 파이를 훔친 증거로 이름 없는 편지가 나오자, 왕은 죄인을 향해 “만약 이름이 없다면, 뭔가 나쁜 짓을 할 뜻이 있었던 거지. 그렇지 않으면 떳떳하게 네 이름을 적을 테니까.”라고 반박 논증을 펼치는 것도 재밌고,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흰 왕비는 “거꾸로 사는 게 다 그래. (중략) 벌을 받고 재판이 열리고, 죄는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짓는 거야.”라던가 가시에 찔리기도 전에 엄살을 피우는 장면은 선후관계를 무시하는 대목이라 맥락이 비슷하다.
역자해설에 따르면 원작 주인공은 캐롤의 친구인 헨리 리들의 딸인 앨리스 리들을 모델로 삼고 있는데다, 출간 후 원작 판권이 소더비 경매에 부쳐지는 등 작품 연보가 다소 복잡하지만, 1865년 원제 <앨리스의 땅속 모험>이 가장 먼저 출간되고, 이듬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1871년에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이 출간됐다. 부지런한 독자라면 캐릭터를 창조한 삽화가 연보(캐롤-존 테니얼-아서 래컵-머빈 피크)를 따라 작가들이 상상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비교해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역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무논리 말꼬리 잡기 하면서 투닥거리다가도 다시 놀고 또 놀고, 규칙없이 무난하게 굴러갔던 지난 시간이 잠시 그립다. 이제라도 캐롤을 이해하면서 편하게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루이스 캐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