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의 관점에서 바라 본 좋은 맥주, 나쁜 맥주

by 고첼

먹방이 대세다. 채널을 돌리면 여기저기서 먹고 마셔댄다. 좋은 식당과 음식을 맛있게 먹는 노하우를 소개하는 유익한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많이 먹으면 건강을 해칠 만큼 자극적인 음식을 폭식하거나 검증되지도 않은 음식점을 맛집으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먹방 중에서 두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수요미식회'와 백종원 씨의 '골목식당'이다

unnamed.png 언젠가 저 두분이 한 프로그램에서 설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ㅎㅎㅎㅎㅎ 생각만 해도 흥미진진하다.

내가 이 방송을 좋아하는 이유는 방송의 내용 때문이 아니다. 두 프로그램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푸드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와 백종원 대표를 좋아해서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있으면 두 사람이 추구하는 음식의 방향성이 다소 차이가 있다.


전자는 가격이나 대중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좋은 재료로 재료 본연의 맛을 내는 음식을 좋은 음식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후자인 백종원 대표는 대중들이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가격대와 푸짐한 양 그리고 요리사의 진정성이 담긴 음식을 좋은 음식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음식에 관해선 둘째가라면 서러울 두 사람이다. 한국을 넘어 세상 산해진미란 진미는 대한민국 사람 그 누구보다 많이 먹어봤을 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전문가가 말하는 ‘좋은 음식’에 대한 취향이 엇갈린다.


누구의 말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저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백종원 씨의 주장에 마음이 조금 더 기울어진다. 그의 가치관에 크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백종원 씨가 추구하는 미식관이 좋다 그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호기심이 생겼다.


만약 백종원 대표가 맥주 전문가라면 과연 그는 좋은 맥주의 기준을 어떻게 정의할까? 나는 이점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백종원 대표로 빙의해서 그가 말하는 좋은 음식의 기준을 빗대어 좋은 맥주를 정의해보고자 한다.



unnamed (1).png 그럼 재밌게 봐주셔유~
본격 백종원 빙의 버라이어티!
백종원이 말하는 좋은 맥주 감별 기준!!



*가격과 맥주의 품질이 일치하는가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그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장님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장사의 기본이 되는 청결과 음식의 맛 그리고 가격까지 식당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수많은 변수를 조합해서 각 식당에 맞는 최적의 운영 방법을 이끌어 낸다. 식당 운영의 마에스트로라고 칭해도 결코 과찬이 아니다.


그는 식당 사장님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그래서 얼마에 팔 거에유?” “그 가격이면 저는 안 사먹어유” 유독 가격과 직결되는 질문이 잦다. 그만큼 손님은 가격과 음식의 가치를 본능적으로 비교하기 때문이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음식이라면 가격은 좋은 음식을 판가름 짓는 가장 중요한 잣대 중에 하나다. 즉, 가격이란 비교군이 있어야 비로소 좋은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구분 지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은 음식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어머니가 자식에게 만들어주는 음식이다.


세상 모든 어머니는 돈이 아니라 자식의 건강을 바라며 음식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어미니의 음식엔 결코 비교할 기준이 없다. 그래서 어머니의 음식은 절대적으로 훌륭한 음식인 것이다.

(뜨시~갑자기 엄마가 끓여 주시는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판매를 염두에 둔 맥주 또한 마찬가지다.

판매 가격과 맛, 패키지의 디자인, 브랜드 등 많은 것을 고려해야만 좋은 맥주인지 아닌지 판가름할 수 있다. 무조건 싼 맥주가 나쁜 맥주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고가의 맥주가 언제나 고품질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며 맥주를 양조하는 어머니는 없을 것이기에 이 세상 모든 맥주는 절대적으로 좋거나 나쁘지 않은 것이다.


가격에 따라 개인의 입맛에 맞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좋은 맥주가 될 수 있다.


맥주집에서 8천 원짜리 아사히와 4천 원짜리 카스 중 어떤 맥주가 좋은 맥주인가? 비교하기가 힘들다. 두 배 이상 가격 차이가 난다고 해서 두 배 이상 품질이 좋은 지도 불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런 비교는 고객의 선택 문제다.


누군가는 8천 원짜리 아사히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이에게는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으로 비싼 가격이다. 이런 상황은 3천 원짜리 카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카스는 4천 원을 줘도 아까운 맥주라고 여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카스는 확실히 대중적인 맥주이다.


만약 백종원 대표가 맥주 전문가라면 카스는 훌륭하진 않아도 충분히 가격에 비해 좋은 맥주라고 말할 것이다.


*스타일 대로 특징을 지녔는가.


정통 오사카식 타코야끼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젊은 사장에게 백종원 씨는 사기에 가까운 홍보라며 그를 비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코야키인데 타코(문어)를 쓰지 않고 대왕 오징어를 쓰고, 오사카식 타코야끼에 들어가는 초생강을 빼는 등, 그가 말하는 정통성과는 너무 다른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 젊은 사장님이 이것을 의도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말하는 타코야키가 정통 오사카식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11.jpg


다운로드.png 겉모습이나 이름만 갖다 붙인다고 정통이 아니다. 맥주도 마찬가지다. *출처:SBS 골목식당

맥주도 마찬가지다. ‘프리미엄 오리지널 라거’ ‘벨지안 휘트에일’ ‘미국 정통 프리미엄 라거’ 등 뭐 만하면 프리미엄이고 정통이고 맥주로 유명한 지역을 욱여넣는다. 그런 명칭을 사용하려면 그에 합당한 맛과 품질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우리나라 맥주를 보면 특히 그렇다. 2천 원짜리 맥주에 프리미엄 라거, 1500원짜리 발포주에 100% 아로마 호프 첨가, 등 가격은 저가인데 내용물은 프리미엄이라는 아이러니를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타코야끼를 만들 거면 문어를 넣어 문어의 식감을 즐겨야 한다. IPA(맥주 재료인 홉을 다량 넣어 만든 스타일)를 만들 거라면 홉을 많이 넣어서 홉의 쓴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맥주를 넣어야 한다. 그런데 IPA 스타일이 해외를 비롯해 국내에서도 큰 유행을 하니까,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맥주들이 IPA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먹어보면 홉의 특징이 크지 않다.


밀맥주도 마찬가지다. 밀맥주의 특징은 발효과정에서 발생하는 정향이나 바나나 향 그리고 흩뿌연 색감으로 즐기는 맥주인데 (모든 밀맥주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특징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통 밀맥주를 자처하는 맥주가 많다.


이런 맥주는 결단코 나쁜 맥주에 속한다.


좋은 맥주의 기준이 수만 가지라면 나쁜 맥주의 기준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계획한 스타일대로 맥주가 적절한 특징을 갖추지 못했거나 너무 희미해서 의도된 스타일 맥주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때, 그리고 가격에 비해 맥주의 품질이 너무 낮을 때 우리는 이런 맥주를 나쁜 맥주라고 불러도 좋다.



*화려한 마케팅 이전에 맥주 기본기를 갖추었는가


백종원 대표는 식당 초보 장사꾼들에게 외적으로 보이는 인테리어나 다채로운 레시피보다는 기본기를 먼저 강조한다. 해방촌 원 테이블 식당 사장님들에겐 '간지나는 음식' 이전에 기본적인 요리 실력을 강조했고 타코야끼 사장님에게는 눈에 보이는 일본풍 인테리어 이전에 청결과 복장 그리고 타코야끼의 기본기를 강조한다. 이런 기본기를 갖추기 이전에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마케팅 이슈만을 쫓는 맥주 브랜드도 너무 많다.


가령 해당 지역에서 양조하는 것도 아닌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역명을 맥주 이름으로 내세우는 맥주회사들이 있다. 해당 지역의 어떤 특성을 살려서 맛을 표현하고 싶은 건지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맛이 훌륭한 것도 아니고 패키지에서 직관적으로 해당 지역의 멋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생각엔 지역명을 단 몇몇 맥주 브랜드들이 보였던 일련의 성과를 바탕으로 펼치는 상술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또한 지나치게 이슈를 짜 맞추는 브랜드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란 거대 인사를 이용해서 '대통령이 선택한 맥주'라는 카피를 사용해서 홍보를 한다. 청와대 만찬 주로 사용되었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선택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것은 명백한 거대 권력의 이권 개입이다.


우리나라 맥주 산업의 부흥을 위해서 이바지한 국내 모 맥주 기업을 격려하는 차원이었다. 그런데 만찬 이후, 마치 청와대와 문 대통령이 해당 맥주를 평소 좋아해서 청와대 만찬 주로 선택한 듯 뉘앙스를 풍기며 홍보를 이어가는 것은 조금 지나친 홍보가 아닌가 싶다.


이런 화려한 마케팅 기법으로만 브랜드를 만드는 기업은 앞서 말한 기본기는 둘째고 있어 보이고 화려함을 쫓는 초보 장사꾼들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기본기에 충실하지 않은 맥주 회사가 소비자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좋은 맥주를 만들 리 없다고 확신한다.



*판매가 다가 아니다. '잘' 파는 게 중요하다


백종원 대표를 보고 있으면 음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음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래서 본인만 잘 먹고 잘 사는대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볼 땐 골목식당이란 프로그램은 자칫 잘 못하면 무조건 백종원 대표의 손해다. 리스크가 큰 프로그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나서서 골목 상권을 살리고 초짜 사장님들을 교육하는 것은 자신의 부나 명예만을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좋은 음식을 적정한 가격에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하자'

라는 자신만의 미션이 아닐까 싶다. 그럼 국내 맥주 브랜드는 어떨까?


나는 국산 중 하이트의 맥스나 수입제품 중 하이네켄을 제외하면 (이마저도 대대적으로 홍보하진 않는다) 생맥주의 청결이 맛과 위생 면에서 얼마큼 중요한지 강조하는 브랜드를 본 적이 없다.


맥주가 흐르면 닿는 생맥주 기계의 모든 부분을 청결하게 관리해야 한다든지 잔을 어떻게 보관하고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충분히 교육하지 않은 채 맥주를 납품한다. 판매만 많이 하면 그뿐인 것이다. 그러나 판매만 한다고 다가 아니다.


보통 우리나라의 맥주 유통 구조는

맥주 제조사-> 맥주집->소비자 로 이어진다.


제조사는 맥주를 판매하는 사장님에게 자신들의 맥주를 소비자가 최적의 상태로 마실 수 있게 할 의무가 있다. 맥주를 파는 사장님 역시 자신이 파는 맥주에 애정을 갖고 공부를 해야 한다. 맥주를 관리하고 청소하고 맛있게 따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맥주 제조사들은 백종원 대표처럼 사장님들에게 제대로 된 맥주 교육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회사가 만드는 맥주는 좋은 맥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무리 짓자면 백종원 씨가 좋은 음식이라고 강조하는 점은 이렇다.


|가격 대비 맛과 양

|스타일에 따른 특징이 잘 나타나는가

|기본기를 갖추었는가

|'잘' 판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가


이런 관점에서 맥주를 바라본다면 그것이 백종원 대표가 말하는 좋은 맥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맥주도 음식이기 때문에 이런 관점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판매하면서 위생과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요리실력은 등한시하고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플레이팅 그리고 SNS로 이슈만 끌면 된다고 생각하며 장사를 하는 우리 주변의 식당 사장님들에게 백종원 대표는 철퇴를 휘두른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엔 그런 맥주가 너무 많다. 맥주계의 백종원이 나와서 그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