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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하 Oct 15. 2022

비탈릭 부테린의 DAO 철학 엿보기

<DAO, 조직 문화를 바꿔다오!> 12편



이번 글에서는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이 최근 논문과 인터뷰에서 밝힌 DAO 철학을 소개하고자 한다.

(비탈릭 부테린은 올해 9월 20일 <DAO는 법인이 아니다>라는 논문을 발표했으며, 10월 1일 뉴욕타임스의 '에즈라 클레인(Ezra Klein)' 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DAO를 이해하려면 비탈릭 부테린의 생각을 들여다봐야 한다. 연재 글 1편에서 다뤘듯, 비탈릭 부테린은 2013년 이더리움 백서에서 처음으로 DAO라는 개념을 쓰기 시작했으며, 2016년에는 투자자가 주도하는 벤처 펀드 '더 다오(The DAO)'를 출범시켰다.


비탈릭 부테린은 2015년 DAO를 통해 초합리적 협력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여기서 초합리적 협력이란, 죄수의 딜레마를 깨는 방법으로, 모두가 협력하면서 동시에 합리적 결과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윤리적인 사람과 비윤리성을 숨긴 사람이 협력하는 경우다. 현대의 중앙 집중화된 조직들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속일 수 있도록 허용하기에 초합리적 협력은 점점 어려워진다. 비탈릭 부테린이 그 해결책으로 DAO를 제시한 것이다.


"다오는 거버넌스 알고리즘이 완전히 공개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독특한 조직이다. 중앙 집권화된 투명한 조직에서도 외부인이 조직의 기질을 대략 파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다오는 외부인조차 조직의 전체 소스코드를 실제로 볼 수 있다. (중략) 조직의 소스코드를 통해 참여자가 누구든 간에 특정 목표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들 수 있다."

(출처: 『비탈릭 부테린 지분증명』, 비탈릭 부테린 지음/블리츠랩스 옮김/2022년, 85p)


"다오 모델에서 조직들이 자신들의 구조를 탈중앙화시키는 이유는 결국 다른 이들이 서로를 더 믿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이며, 스스로 탈중앙화시키기를 실패하는 단체들은 이런 신뢰의 순환에서 오는 경제적인 수혜를 놓치게 될 것이다."

(출처: 『비탈릭 부테린 지분증명』, 비탈릭 부테린 지음/블리츠랩스 옮김/2022년, 87p)


이때의 부테린은 DAO로 어떤 실익을 얻을 수 있는지 소개하는 데 그쳤다. DAO가 개념으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그동안 '더 다오' 해킹 사태가 발생했고, 헌법이나 국보를 사들이기 위한 DAO가 조성되기도 했으며, 전쟁 피해자를 돕기 위한 DAO도 나왔다. 그런 과정에서 DAO는 여러 질문에 봉착했다. 질문 중 하나는 "꼭 DAO로 그 목표를 이뤄야만 하냐"는 것이다.


부테린은 <DAO는 법인이 아니다> 논문을 통해 DAO가 필요한 상황을 ▲Concave 환경에서 더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한 탈중앙화 ▲검열 저항성을 위한 탈중앙화 ▲신뢰할 수 있는 공정성으로서의 탈중앙화 총 3가지로 제시한다.


Concave(오목한)는 타협이 가능한 의사 결정을, Convex(볼록한)는 동전 뒤집기로 둘 중 하나의 제안만 선택해야 하는 의사 결정을 의미한다. 비탈릭 부테린은 "이더리움 생태계는 Concave, 비트코인 생태계는 Convex 하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부테린은 비트코인 생태계는 탈중앙화인지 아니면 중앙화인지 양 극단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Concave 한 결정에서는 집단 지성에 의지하는 편이 더 좋은 답을 줄 수 있다. 이런 경우 다양한 의견들이 반영되는 DAO의 구조가 많은 의미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Concave 한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탈중앙화의 필요성을 더 높게 볼 가능성이 크다."


부테린은 논문에서 '우크라이나 다오가 꼭 DAO여야만 하는지'를 다룬다.


그전에 우크라이나 다오에 대해 첨언하자면, 부테린은 우크라이나 다오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우크라이나 다오의 취지(우크라이나 군인을 돕고 전쟁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논외로, 그 거버넌스 구조가 독특해서다.


우크라이나 다오는 상위에 '핵심(Core)'를, 하위에 실무 그룹인 '팟(Pods)'을 둔다. 팟에 기능을 분산시킨 것이다. 거버넌스 코어가 팟을 생성할 수는 있지만, 한 번 생성된 팟은 자체 리더를 두고 다소 중앙화된 방식으로 작동한다.


부테린은 '우크라이나 다오가 전통적인 다층 계급 사회를 리브랜딩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면서도 1) 팟에 대한 높은 수준의 자율성 2) 고도로 탈중앙화된 코어 거버넌스 등을 이유로 우크라이나 다오가 기업과는 다른 방식의 조직이라고 진단한다.


"(우크라이나 다오에) Concave vs Convex 모델을 적용하면, 상위 계층(코어)은 Concave, 팟은 Convex 방식의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개별 팟에서는 결정을 위해 명확한 의견을 안내하는 편이 더 낫다."


부테린은 '거버넌스 토큰은 DAO에서 탈중앙화를 구현하기 위한 필수 장치'라는 통념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그는 뉴욕타임스의 '에즈라 클레인' 쇼에서 다음과 같이 우크라이나 다오를 언급한다.


"우크라이나 DAO는 거버넌스 토큰이 없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가상자산 업계의 많은 사람들은 탈중앙화가 되기 위해서는 거버넌스 토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누구나 그 토큰을 살 수 있어야 하고, 그 토큰으로 투표를 해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우크라이나 DAO의 공동 설립자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우크라이나 DAO의 탈중앙화 모델은 홀라크라시(holacracy; 권한과 의사 결정이 상위 계층에 속하지 않고 조직 전체에 걸쳐 분배된 조직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다.


개별 팟이 매우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그 팟들은 핵심(코어)으로부터 자원을 얻는다. 코어는 팟보다 좀 더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거버넌스 토큰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러시아 정부나 다른 곳이 거버넌스 토큰의 30%를 쉽게 사들이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버넌스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점점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다오 거버넌스 구성도. 출처=비탈릭 부테린의 논문


그렇다면 DAO 거버넌스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기존 법인의 지배구조를 본따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부테린은 DAO 거버넌스는 오히려 정치학을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논문에서 미국 철학자 커티스 야빈의 "우리는 1차 조직(통치 성격의)보다는 2차 조직(계약 성격의)을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 DAO를 설계할 때는 정치학이 아닌 기업 지배구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DAO는 그 위에 통치자가 없고, 통치자에게 보장된 서비스(통화 및 중재)에 종사한다는 점에서 기업 지배구조가 아닌 통치자의 설계(정치학)에서 배울 점이 많다."


이는 DAO가 국가에 저항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라 때때로 국가 기능 중 일부를 떠안을 수 있는 조직이라는 부테린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급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기업 지배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접근 방식은 설립자가 축(Pivot)을 조정하는 식으로 미리 만들어진 패턴을 제공하기에 더 나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로마 공화국에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임시로 독재자를 선출하는 관습처럼 정치 체제의 역사 또한 이 상황에 잘 맞는 패턴을 제공한다. 또한, 위기가 끝났을 때 어떻게 다시 분산 모드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겐 기업 지배구조보다는 정치학에 나온 구조를 본 딴 소수의 DAO만 필요하다."


DAO가 정치학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또 다른 이유로는 '승계 문제'를 들었다. 이는 슬로베니아의 정치학자이자 비스마르크 애널리시스 대표 사모 부르야(Samo Burja)가 제시한 개념으로, 초기 그룹이 은퇴하고 다른 그룹이 이를 이어받을 때 조직의 연속성이 유지될 수 있냐는 것이다.


"DAO는 승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상자산 초기 채택자들이 부자가 되고 은퇴하는 패턴의 빈도를 고려하면 일부 DAO는 이미 승계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다.


왕정이나 기업 같은 형태는 기관 구조가 특정인의 습관에 깊이 얽매여 있고 이를 물려주기 어렵기에 승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


이와 달리 민주주의처럼 보다 탈중앙화된 정치 형태는 적어도 얼마나 전환을 원활히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론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DAO가 기업 지배구조가 아닌 민주적인 정치학에서 배울 것이 더 많다고 주장하고 싶다."




정리하자면, 부테린은 2015년 DAO가 '초합리적 협력'이라는 실익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그쳤지만, 최근에는 DAO의 거버넌스가 나아갈 방향과 DAO가 적합한 사례도 제시하고 있다.


이번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DAO는 서로 다른 대안을 타협해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Concave 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안건에 적합하다.

-우크라이나 다오는 Concave 한 의사결정과 Convex 한 의사결정이 공존하는 조직이다.

-우크라이나 다오의 사례처럼 탈중앙화를 구현하는 데 거버넌스 토큰이 필수는 아니다.

(부테린은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다오 거버넌스 토큰의 30%를 사들이는 경우를 가정하며, 소울 바운드 토큰(SBT)이 거버넌스 토큰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DAO 거버넌스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아닌 정치학을 참고해야 한다.

-DAO가 '승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정치학 공부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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