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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하 Oct 29. 2022

'완벽한 탈중앙화'는 신기루

<DAO, 조직 문화를 바꿔다오!> 14편


DAO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는 DAO는 무조건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 믿었다. 이는 착각이었다. 생각보다 중앙화된 결정을 내리거나, 중앙화된 조직의 영향을 받는 DAO들이 상당수였다.


그 전에 탈중앙화(Decentralization)가 무엇인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혹자는 그 개념을 '만인이 평등한 상태'로 오해하곤 한다. 그 결과, '부의 재분배를 위해 비트코인이 등장했음에도 가상자산 시장에서 부가 특정 소수에게 쏠린다'라고 비난한다. 이는 옳지 않다.


비트코인 정신이 뿌리를 두고 있는 사이퍼펑크 운동(암호화를 의미하는 '사이퍼(Cypher)'와 '저항(Punk)'을 합친 단어)의 핵심은 정부의 검열과 통제에 맞서는 것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무제한적인 달러 발행을 문제 삼긴 했지만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처럼 조폐공사를 털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자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그간 연준만이 거둬들이던 '주조 차익(시뇨리지)'을 얻으려 했다.  


여기서 주조 차익이란 화폐에 시장이 부여한 가치(시장 가치)에서 화폐로 쓰이는 물건의 실제 가치(내재 가치)를 뺀 값이다. 달러를 예로 들면, 시장 가치는 1425원이지만 내재 가치는 사실상 '0'이다. 달러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나 무인도에서는 땔감으로나 쓸 수 있는 종이 조각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주조 차익을 100% 거둘 수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달러처럼 시장 가치가 내재 가치(실제로는 데이터에 불과하다)를 크게 능가하는 화폐로서 비트코인을 고안했다.   


즉, 정부의 권력을 가져오자는 것이지 부자들에게서 돈을 걷어서 가난한 사람을 돕자는 취지는 아니었다.


다시 돌아가서 '탈중앙화=부의 재분배'라는 인식은 '민주주의=평등주의'라는 인식과 유사하다. 결과적으로 둘 다 틀리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이 결합된 개념이다.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험성은 평등이 자유를 잠식하는 일"이라며 "다수의 의견이 소수에게 동일화의 압력을 가하고, 이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희생된다"라고 지적한다.


탈중앙화는 어떤 면에선 민주주의와 유사하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저서 <지분 증명>에서 "탈중앙화란 일이 처리되는 모든 과정을 통제하는 개체가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낸다. 민주주의도 주권이 소수의 지배자가 아닌 민중에게 있다는 점에서 탈중앙화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우리는 투표를 통해 사회의 방향성을 결정한다.


그는 탈중앙화와 크게 혼동되는 분산과의 차이도 설명한다. 분산의 핵심이 물리적 포인트가 여러 개라는 점이라면, 탈중앙화의 핵심은 주체가 여러 명이라는 점이다. 비탈릭의 설명에 따르면, 분산이 탈중앙화보다 다소 광범위한 개념으로 보인다.

비탈릭 부테린의 중앙화, 탈중앙화, 분산 개념 시각화.




이를 이해하면 '완벽한 탈중앙화' DAO는 불가능하단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구성원이 100% 동등한 크기의 목소리를 낸다면 그 조직은 방향성을 잃게 된다. 괜히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지점에서 한때 비판을 받았던 주노(Juno)의 16번 제안도 다시 생각해볼 만하다. 주노는 코스모스(Cosmos)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활용해 구축된 레이어 1 네트워크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DAO다. 주노 개발자 소수가 프로젝트를 주도하지 않는다. 대신 구성원 투표를 통해 모든 사안을 결정한다. 개발 팀의 거버넌스 보유 비중도 2.5%에 불과하다.


이처럼 탈중앙화를 지향하던 주노가 2022년 3월 '16번 제안'으로 인해 "탈중앙화 정신에 위배된다"며 업계의 공분을 샀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1) 올해 초 ATOM(코스모스) 보유량에 따라 JUNO 토큰을 1:1로 지급하는 에어드롭(무상증자) 진행

2) 이용자 한 명에게 거버넌스 토큰이 과다하게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수령 가능한 최대 물량은 지갑 당 5만 개로 제한

3) 그 과정에서 주소에 관련된 코드에 오류가 있던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음

4) 그 결과, 익명의 이용자가 ATOM을 50개의 지갑에 나눠서 보관했고 결국 50명이 받아야 할 만큼의 JUNO 토큰을 획득

5) 해당 이용자가 보유한 JUNO 토큰은 약 310만 개로 (2022년 3월 12일 기준) 총 발행량 7470만 개 중 3.1%에 달하는 비중

6) 주노 커뮤니티는 해당 이용자가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판단

7) 에어드롭 최대치인 5만 개를 제외한 나머지를 몰수하자는 투표(제안 16번) 진행

8) 전체 구성원 중 40%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서 통과

9) 투표를 통해 누군가의 자산을 앗아가는 행위가 업계에 중앙화된 결정으로 비침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규칙(코드 설계)을 악용하거나 조직에 악의를 가진 사람도 (탈중앙화 거버넌스의) 주체로 봐야 할까? 약간은 결이 다르지만 2016년 '더 다오' 해킹 사태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당시 "코드 오류로 인한 트랜잭션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더리움 클래식 진영)과 "잘못된 거래는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비탈릭 등 현재 이더리움 진영)이 팽팽히 맞섰다. 비탈릭 부테린은 후자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는 블록체인 거버넌스를 물리적인 계층(코드)과 철학/문학/정서에 관련된 계층을 구분하며, 그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짜인 코드에 의해 실행된 일이더라도 그 커뮤니티의 철학에 맞지 않다면 옳지 않다는 의미다.


내가 올해 8월 한국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주노의 공동 설립자 제이크 하트넬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그는 "설계에서 어드레스 부분에 실수가 있었고 이로 인해 (진정한) 자격이 없는 지갑이 수 백만 달러를 벌었다"며 "코드에서 발생한 실수를 커뮤니티 다수가 합의해 고쳤다"라고 강조했다. 주노도 자신들의 철학에 어긋나는 이용자는 '주체'로 보지 않았다는 의미다.




메이커 다오의 최신 사례도 DAO의 탈중앙화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사례다. 올해 재단에서 DAO로 전환을 마친 메이커 다오는 조직을 더 작은 단위로 쪼개기 위한 '엔드 게임(End game)' 투표를 진행했다. 해당 투표는 마감됐으며, 참여자 중 80.22%의 찬성을 받았다.


기존 메이커 다오의 '코어 유닛'을 더 작은 DAO인 '메타 다오(MetaDAO)'로 전환하는 등의 내용이다. 제안서에 따르면, 실무 그룹 성격의 코어 유닛과 달리 메타 다오는 자신만의 거버넌스를 구축하며 거버넌스 토큰인 '메타 엘릭서'를 발행한다. 메이커 창업자 룬 크리스텐슨은 더 강력한 탈중앙화가 규제 리스크를 낮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메이커다오의 거버넌스 토큰의 상당량을 보유한 투자업체 a16z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a16z 가상자산 팀의 딜 파트너 포터 스미스(Porter Smith)는 "탈중앙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보 비대칭이 일어날 잠재적인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며 "(현재의) 코어 유닛만 해도 법적으로 충분히 탈중앙화되어 있다. 코어 유닛의 작동 방식을 바꾸기 위해 '엔드 게임' 계획에 따라 재구성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졌다. 그는 현재의 '엔드 게임' 제안이 법적, 기술적, 경제 시스템 측면에서 모두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탈중앙화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정보 비대칭이나 수익성 저하 등의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고민거리를 업계에 던져준 셈이다.

메이커 창업자 룬 크리스텐슨이 게재한 '메타 다오' 경제 시스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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