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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아빠 Jan 18. 2023

열심히 안 해도 돼요. 그냥 해요 우리.

죽었다 깨어도 안된다면.

저는 천성이 게으른 사람입니다. 


저는 뇌리에 번쩍이면서 동기가 솟아나지 않는 한은 잘 움직이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습성을 알고 있었지만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외면하는 편이였습니다. "나는 하려고만 하면 어디선가 동기가 솟구쳐 나와 불꽃같이 일을 하게 될 거야. 하지만 지금은 동기가 솟구치지 않아서 그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야." 라면서 말이죠.

게으른 주제에 하고 싶은 것은 많았습니다. 웹툰도 그려보고 싶었고, 강의도 해보고 싶었고, 책도 써보고 싶었고, 앱 도 만들어서 출시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게으름 덕분에 저는 이런 것들을 위해 1mm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요. 동기가 솟아나서 저를 의자에 앉힌 뒤에 열정적으로 뭔가를 하는 것을 기대만 하는 날만 정처 없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던 2020년 어느 날. 저는 환절기 때마다 부비동염으로 고생하는 것을 끝내고자 수술을 결심했고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전신 마취 수술을 그래도 꽤나 경험을 해봤던 터라 마취 전 잘 부탁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한 뒤에 눈을 감았습니다.


얼마쯤 지났을 까요 무언가 처를 세게 내리치는 느낌을 받고 저는 눈을 떴습니다. 회복실이겠거니라고 생각한 그곳은 제가 예상했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손과 발이 침대에 묶여 있었고 저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중환자실이었습니다. 의식이 없는 저를 깨우기 위해 간호사 선생님이 계속 자극을 주려고 제 몸을 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내가 왜? 아니 뭘 하다가? 몸은 멀쩡한가? 그리고 손 끝 부터 발 끝까지 움직여 봤습니다. 다행히 모두 잘 움직였습니다. 몸이 잘못된 곳은 없었지만 상황은 많이 잘못되고 있음을 그 때서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수간호사님 처럼 보이는 분이 오셔서 상황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저는 전신마취로 진행했던 수술을 잘 마치고 인공호흡기를 떼고 회복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자가호흡을 하지 못하고 의식이 없는 상태라 수술방에서 그대로 다시 인공호흡기를 꼽고 조치를 취한 뒤 중환자실로 왔다고 했습니다. 의식이 있는데 인공호흡기를 꼽고 있는것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제 인생 40년 중 정말 괴롭고 힘든 것으로는 손에 꼽히는 순간을 수 시간 동안 보낸 뒤 산소수치가 정상으로 되자 인공호흡기를 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순간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병원에서 나가자마자 정말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살아가기로 다짐했습니다. 


퇴원을 하면서 저는 많은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못 일어났다면 그대로 죽는 것이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는 볼 수 없었을 것이며 5살 쌍둥이와 제 아내는 가장이 없는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내 가족에게 절대 그런 슬픔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저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행복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비참한 죽음 같았습니다. 

지금껏 해본 적 없는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나가는 순간부터 운동을 해서 건강해질 것이고 자기 계발을 통해서 나를 더 성장시켜 많은 돈을 벌겠다고 말이죠.


집에 돌아왔을 때 오랜 병원생활로 제 몸은 좋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 오랫동안 누워있었고 진료를 볼 때도 아내가 휠체어를 끌어줬던 터라 운동은커녕 몸을 움직일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 굳게 다짐했던 것들을 할 수조차 없는 형편없는 체력이었죠. 그러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마땅히 없던 저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2002년부터 20년 넘게 방송 중인 장수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다큐멘터리 영상이 제 유튜브 추천 영상으로 올라와서 저는 한 편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10cm 보폭 넓혀 걷기' 편이었습니다. 그 영상에는 건강이 안 좋았던 분들이 걷기 운동을 해서 회복하고 건강을 되찾는 과정과 걷기 운동에 대한 효과를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장 보폭 넓혀 걷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천성이 게으른 사람입니다. 


걷기 운동을 해야 하는 동기는 있었으나 이 간헐천 같은 동기가 언제는 솟구치고 언제는 잠잠할지 몰랐습니다. 게다가 퇴원을 하고도 시간이 꽤 지나서 설상가상으로 의욕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내일이 되고 다음주가 되고 다음 달이 되면 나의 동기는 분명히 더욱더 차게 식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있지만 막상 집에오고 몸이 편안해지니 게을러지기 시작한 저의 천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신님이 한번의 기회를 더 주셨는데도 게으름을 이기지 못해 다시 이전의 생활로 돌아간다면 이대로 죽어도 가족을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죽다 살아났는데 정말 내가 이것 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정신차리고 살아가라는 명확한 메시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게으름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게으른 천성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게으른 천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무언가를 할 동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아이언맨의 아크원자로 같은 동기원자로 같은 게 있으면 참 편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과거에 봤던 한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찾아서 보았습니다.

2017년 Letters Live에서 진행했던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설입니다. 워낙 유명한 영상이니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것입니다.

그 연설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한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핑계 대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그냥 해!"


연설을 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억양이나 목소리가 연설에 더 빨려 들어가게 하는 역할을 했는지 그 연설은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Just Do!!!" 라고 할 때에는 저에게 정신차리라고 하는말 같았습니다. 

영상을 다시 보면서 무언가를 할 때 과정을 생각해서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냥 해보는 것으로요.


"오늘은 무릎도 아프고 컨디션도 안 좋으니 내일부터 할까?"라는 생각조차 나지 않게 저는 컴퓨터를 끈 뒤 바로 옷을 입고 나갔습니다. 저를 방해하는것은 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을 최대한 줄이고 몸을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무릎은 정말 아팠습니다. 하지만 걸었습니다. 

3바퀴쯤 걸어보니 이제 보폭을 어느 정도로 해야 10cm를 더 걷는 것인지 감이 왔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평소에도 혈압이 높은 편인데 안 하던 운동을 갑자기 하니 심장이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2km를 채웠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쓰러지듯이 눕고 한참 후 에야 일어났습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어제의 통증이 생각나기 전에 저는 바로 옷을 입고 다시 나갔습니다.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2km를 걸을 때까지 머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저의 운동 목표는 4km를 걷는 것이었지만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2.5km만 돌고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일주일을 계속했습니다.

일주일 뒤에 저는 아파트 단지가 아닌 집 앞 공원을 크게 돌며 4km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무릎 통증과 두통도 제법 많이 줄었습니다. 내 체력이나 통증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일주일 동안 걸었더니 저는 일주일 만에 보폭 넓혀 걷기로 4km를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게 되었을 때는 걷기 운동을 조금이라도 늦게 나갈 때 몸이 그렇게 찌뿌둥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몸이 운동에 적응을 했고 제 몸도 건강을 향해 넓은 보폭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게으름에 몸부림 치던 제가 매일 주기적으로 하는 행동이 생긴것이였습니다. 바로 루틴이였습니다.


퇴원 후 시작한 "그냥 하기"는 걷기 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할 때 가장 좋은 연료는 생각을 줄이는 것 이고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냥 하기 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비우고 그냥했을 때의 결과들.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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