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으려, 잊을 수 없는
해가 바뀌자마자 여행을 떠났다는 건 지난해에 힘들었기 때문이다. 매해 함께하던 친구들과 여행할 시간도 없었고, 내내 떠나 있었지만 자의가 아니었던 탓에 여행이 몹시 고팠다. 떠나고 싶고, 새로운 공간에 가고 싶었다. 언젠가 이 곳에 또 쓰겠지만 모든 것이 두렵던 스물셋의 군산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때는 하루 종일 신났으나 여행 내내 마음 한편 두려웠다. 나이를 먹었고, 삶이 고되더라도 두렵지는 않았던 이 날. 그때 나는 삼례에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근대의 건물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종교적인 건물보다 삶의 흔적이 남은 건물들이 좋아서 더욱 그런 편인데,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럽다. 일본식 가옥과 그 거리들은 모두 수탈이 시작되었고 고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날 삼례의 문화촌을 보면서 가슴 아픈 한 편 얼마나 신기했던가. 거대한 농협 건물의 시작은 양곡 수탈의 중심이었고, 이 완주 지방의 농업회사들 모두 수탈의 친위대였다. 삼례에서 거둔 곡식들은 기차를 타고 군산으로 향했던 것이다. 이제는 미술관이 되어 그때의 고통을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고 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1월 2일. 누군가가 찾기에는 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른 날이었다. 살짝 눈이 내렸고, 카페에도 미술관에도 남은 발걸음이 별로 없었다. 언젠가는 가득한 사람들 저마다 다른 이미지를 남기겠지만. 이 건물의 시작만큼은 기억해주었으면. 나도 잊지 않았으면.
그 빈 공간 중 일부가 책과 관련된 박물관이 된 것도 나는 좋았다. 많은 책들이 디지털화되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기록은 남고, 누군가는 쓸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영원성이 있는 이미지가 공간에도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그저 이미지를 소비하듯 불행했던 역사를 무심코 넘긴 그 무심한 잘못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에야 이 여행을 돌아보며 이런 얘기를 하지만 나는 이 여행이 좋았다. 오랜만에 좋은 친구들과 떠드는 것도 좋았고,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았고, 이제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빈 철길 위를 걸으며 석양을 보는 것도 좋았다. 이 여행을 따라 전주와 군산을 거닐며 그때의 끔찍한 역사 아래 남은 우리의 빈 공간을 애써 메워놓은 예술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얼마 전 프로그램을 보는데 가해자는 지난 역사는 물 흐르듯 보내라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도 물 흐르듯 보내자고 비겁하게 말할지도 모른다. 먹고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용서는 오늘의 몫이 아니고, 그때 그 고통받은 모든 사람들의 몫이다. 그 시간은 서서히 스러지고 용서받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용서 혹은 지나가는 것을 강요하는 현대의 우리도 방관자이며 가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어리석게도 다시 이 풍경에 돌아가면 공간을 즐기겠지만, 처음 마주한 순간만큼은 잊지 않고, 과거에 대해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일월에 잘 어울리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