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덤덤한 이십대의 마지막을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성차별적 발언이다. 여자가 서른이 되면 끝났다고 하는 선배들이 있었다.(나는 안 웃기고 그들만 웃기던 그런 유머) 어쨌든 불과 6-7년 전에는 그런 이야기가 농담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었다. 지금이면 어림도 없을 얘기지만.
그래서 종종 여선배들은 이십대의 마지막이 우울하다고 내게 말하고는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이십대 마지막날은 너무 정신 없이 지나갔고, 그 날 나는 그저 '해방감'만을 느꼈을 뿐이다. 갑자기 잡힌 긴 일본 출장으로부터의 해방. 가고 싶지도 않았고,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던 고된 출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해외 출장은 내게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줬다. 나는 처음으로 자취를 해본 셈이었는데, 나는 생각보다 음식을 잘하고, 해먹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정리는 혼자 살아도 못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라는 점.
돌아가기 하루 전 가마쿠라라는 동네를 찾았는데, 슬램덩크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다음 날 버릴 이불이며, 식기들을 모두 정리하고 28인치 캐리어 하나만 남은 단촐해진 방을 한번 휘 둘러보니 이상한 감정이 쏟아졌다. 3달 간 머물렀던 내 공간에 그 쓸쓸함을 남겨두고 오랜만의 나들이를 떠났다. 긴 출장 내내 지하철로만 동네 나들이를 했던터라 무척 신났는데, 혼자 기차를 타고 바다로 떠나는 일 자체는 그 언제라도 신나지 않을까.
멀리 바다가 보인다. 엔티크한 디자인의 기차를 타고 적막히 해가 내린 반짝이는 바다를 본다. 평일인데다가 일본이 골든위크 기간인지라 더욱 한적했다. 내일은 꽤 머물던 이 도시를 떠나 집으로 돌아간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처음으로 길게 떨어져 있던 터라 어찌나 보고싶던지. 홀로 구라시키를 걷는 시간 종종 가족을 떠올렸다. 그간 선물 살 일도 별로 없었는데, 이것저것 사도 내일이면 가족에게 전달할 수 있다니 더욱 신났던 것이다.
겨울이지만 제법 따뜻해서 가끔 서퍼가 파도를 탔다. 몸을 움직이는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는 나는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그 대신 흑색으로 빛나는 해변을 따라 걸었다. 이유없이 높인 흔들의자 한 개가 모래에 갇혀 있었다.
이제 출장의 막바지라 일에 대한 부담도 덜고, 잊고 있던 나이에 대해 생각했다. '내일이면 이십대의 마지막날이 되고 정신없이 캐리어를 끌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겠지.' 결국 나의 스물아홉 마지막 날에는 비행기가 연착 되고, 리무진은 놓쳤으며, 경비처리 될지 모를 택시를 집에 가던 중 새해를 맞았다. 그냥 그렇게 나는 서른이 되었다.
가마쿠라의 제일 멋진 풍경은 아마도 기찻길 뒤로 보이는 후지산 아닐까. 나는 앞으로만 걷고 있던터라 이 풍경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한 일본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는 뒤를 보라고 손짓하는게 아닌가. 우리는 서로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영단어와 서로의 언어로 대화를 했다.
이때만해도 벌써 5년 전이라 일본과 불편한 기류는 상상할 수 없고, 그저 골목에서 만난 사람이 몹시 반가웠다. 동네주민으로써 그녀는 관광객인 나를 반가워했고,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라 더욱 반가워해주었다. 아마 한류스타 누구를 좋아하는 듯 했는데, 다음주에 본인도 한국에 간다며 몹시 길게 자랑을 했더랬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갈 곳과 사야 할 것들을 내게 말했는데, 경복궁이나 토니모리같은 브랜드 명 몇 개를 스치듯 들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결국 이 풍경을 보지 못했을까? 아마도 그랬을것이다. 나는 뒤돌아보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그렇게 지나간 일들을 들여다보면 특별한 신호를 받는 일이 가끔 생기는 것 같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서른이 지났어도 나는 매우 많은 일들로 복잡하게 잘 살아가고 있으며, 삶은 지나가고 있다. 가끔은 돌아보고 지난 시간이 아쉽긴 하지만 역시 돌아보는 것보다는 일단 걸어가는 편이 내 삶의 성향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