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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나이 May 31. 2021

직장인이지만 월급루팡은 꿈이 아닙니다.

직장이 힘들어지는 순간



  최근 ‘N 잡러’, ‘퇴사’, ‘부업’이라는 키워드가 굉장히 핫 하다. 어떤 글을 보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건 바보 같은 일인 것처럼 묘사되고, 직장 내에서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일하는 건 남을 위해서만 일하는 노예근성을 가진 우둔한 사람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이 들은 ‘월급루팡(회사에서 하는 일없이 월급을 축내는 사람)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은 ‘바보’가 아니다. 직장인의 최대 장점은 주어진 시간에 에너지를 쏟는 만큼의 정기적인 보상(월급)이다. ‘주어진 시간’이라는 건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모든 삶을 올인하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엄청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꼭 무대 연출가나 감독이 되어야만 훌륭한 무대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주연, 조연, 단역을 맡은 배우가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기립박수를 받는 무대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리고 무대가 끝나면 '나'의 삶에 집중한다. 무대에서 역할을 해낸 배우의 출연료, 즉 물질적인 보상이 '월급'이다. 따라서 나는 '월급 루팡'이 되고 싶지 않다.

 월급루팡이 되고 싶지 않은 두 번 째이유는 내가 회사에서 쏟는 시간으로 인해 아이들과 함께하는 (남편은 일하는 중) 시간이 ‘기회비용’이기 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 중 하루 8시간을 직장에 할애했다면, 비단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은 다른 시간으로 미루어 두어야 한다. 그래서 1분 1초가 소중한 내가 선택한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다. 물론 나는 직장에 뼈를 묻을 만큼 애사심이 크지 않고, 언젠가 나의 일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지만 만약 내가 그런 이유로 직장 내에서의 생활을 대충 보내게 된다면 그 시간들을 다 버리게 될 것이다.

 


직장인으로 제일 힘든 순간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고객에게 나쁜 말을 들었을 때?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안 풀릴 때?

상사에게 구박받을 ?

음.. 어쩌면 출근길이 지옥철일 때?


많은 순간이 있겠지만 7년 차 직장인인 나의 경우에는 ‘월급루팡’이 되어 버린 것 같은 순간이다. 내가 맡은 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즉, 내가 쏟아부은 시간이 무의미 해지는 순간이며, 동료들에게 일을 떠넘기는 민폐인이 돼버린 것만 같다. (신입사원들도 깨지고 실수하며 배우기 때문에 허락되는 시기라곤 하지만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15개월의 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달째, 라인 가동을 중단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고객은 Open disuccsion(사실 욕먹는 자리?) 요청이 왔다. 내가 맡았던 문제였기 때문에 기술적인 설명을 위해서 콘퍼런스 콜박스를 열었다. 그리고 나는 자기소개 이외에는 한마디도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xxx ㅇㅇㅇ입니다'
'매니저 누구예요? 어디 있어요?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신입사원을 보내요?'


어쩔 수 없이 매니저는 콜박스에 들어오게 되었고, 나는 1시간의 미팅이 흘러가는 동안 팟캐스트를 듣는 것처럼 듣는 것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신입사원... 나의 15개월 공백이 그간 나의 경력을 '제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아.. 내가 다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구나..


 이런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건 단지 업무 공백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아직 기술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은 충분히 존재하고, 직장은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최고의 연구결과를 찾아서 논문을 쓸 수가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고, 내가 선택한 결과로 인해 많이 이 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현타(?) 오기도 한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니? 월급 루팡이 꿈이니?


그런 순간이 올 때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한다.

첫 번째 이보다 나은 선택이 있었나? 있었다면, 다음에 일을 할 때 나은 선택을 떠올려보자.

두 번째 내가 여기서 얻은 건 무엇인가? 10번의 미팅 중 9번을 깨졌어도 얻은 건 있다. 마지막 1번의 미팅이 무엇이 달랐는지는 나만 알 수 있다.


이렇게 ‘월급루팡’이 되지 않기 위해 했던 나의 노력들은 회사 내에서 뿐만 아니라 한 명의 사회인으로 나를 성장시켜 줄 것이다. 언제 간 내가 이루고 싶은 ‘나의 일’을 할 때에도 비옥한 거름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월급 루팡 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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