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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Sep 25. 2021

스페인에 닻을 내리다, 첫 하루가31 시간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_3

드디어 산티아고로 출발하는 날!

여행 전 날까지 여행 가서 쓸 물품을 사러 다니고 밤늦게까지 짐을 싸느라 잠자리에 늦게 들어서 인지 출발 당일날 늘 일어나는 5시 정도에 눈을 떴다가 잠시 묵상(?)한다고 눈을 감고 있는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약 2시간이 흐른 것이다. 눈을 뜨는데 눈을 뜨면서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 아뿔싸 6시 50분이다.  

8시나 8시 30분 둘 중에 공항버스를 타야 수원에서 인천공항까지 갈 수 있다고 어제부터 예상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이런 낭패다. 10시 까지 공항에 가야 하는데.......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일어나자마자 아내를 깨우고 욕실로 가서 면도와 세면과 샤워를 하는 둥 마는 둥 모든 것을 스피드로 해결하고 어젯밤에 못 다 싼 짐을 챙기고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평상 시라면 벌써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고 있을 시간이었는데 여행을 간다고 벌써부터 긴장의 끈을 늦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벌써 여행이라고 내 마음은 어제 잠들 때부터 한 템포 늦게 가도록 지시를 해 놓은 것 같다.

아침에 작은애와 집사람에게 잘 갔다 오겠다고 근사하게 감동 있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이런 부랴부랴 8시 버스를 타려고 캐리어에 어제 산 배낭을 메고 공항버스에 간신히 몸을 실었다. 버스는 예상보다 공항에 일찍 도착했다. 약 40분의 시간을 남을 줄 알았으면 집사람과 작은애한테 여행 잘 갔다 오겠다고 인사나 제대로 하고 오는 건데 하는 후회가 남는다.




모이기로 한 장소 3층 카운터에는 벌써 고도원 님과 아침지기들이 노란 점퍼를 입고 서 계시는 모습이 보인다. 일주일 전 사전 모임 때 노란색이 참 멋있다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공항패션으로도 훌륭한 선택이었다. 다른 여행객들과는 다른 것은  비행기를 몰고 산으로 갈 건지 전부 등산 점퍼와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그건 고도원 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여행자들의 공항패션도 각자 패션감각을 회사 한 옷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여행을 자주 하신 고수분들의 옷차림은 신발만  벗으면 어디서나 잘 수 있는 복장. 12시간 이상의 비행을 내다보신 듯 사전모임 때 뵌 조원들도 계셨지만 아직은 서로가 얼굴을 잘 몰라 여행 일행끼리 앉아 있는 모습.


잠시 후에 백기환 실장님으로부터 각 조 여권과 명단을 받고 각자의 짐을 부치고 탑승시간까지의  자유시간.

오래간만에 오는 인천공항, 변한 건 없지만 공항에 올 때면 난 항상 마음이 들뜬다. 떠날 수 있다는 공간, 그리고 돌아오는 공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과 섞여 있다는 생각이 더욱 기분을 들뜨게 한다. 왠지 공항은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고 그 속에 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흥분되는 경험이다. 실제로는 삶이 공항 그 자체가 아닌가 한다. 공항에는 떠나는 사람, 새로 오는 사람, 잠시 스쳐가는 사람이 있듯이 늘 내 주변에는 떠나는 사람과 새로 도착하여 만나는 사람이 있고 잠시 나를 거쳐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상황이 있는데 공항에 나와서야 여행의 기분을 느끼고 흥분을 느끼는 것은 내가 삶을 여행으로 느끼지 못하고 산지 무척 오래되었고 그걸 망각하고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 중에서 우리네 삶을  '소풍'을 표현한 것을 너무 좋아하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나의 삶이 소풍이자 여행  자체인 것을  충분히 느끼도록 하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출국 심사를 받고 이제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행 마지막 이틀 전에 집사람의 생일이라 같이 있어주지도 못한다는 생각에 무엇을 살까 생각하며 돌아다녀 보지만 뾰족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다. 역시 올해도 현금을 내밀어야 하나? 여행이 끝날 때는 무언가는 사 가지고 와야 하는 왕부담감, 이제 그것도 여행 끝으로 미루어 놓자



이제 지정된 비행기 좌석에 자리를 잡고 장장 12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비행에 대비했다. 읽을 책과 이어폰과 핸드폰 그리고 필기도구.  12시간 동안 할 일을 예상했는데 생각한 대로 될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옆좌석에는 조용한 여자 한분, 그리고 오른쪽에도 조용한 남자 두 분, 서로 통성명도 없이 비행기 중앙통로 네 좌석에  앉은 네 사람  같은 아침여행 일행인지 획 인도  안 하고 쿨하게(?) 나중에 누구신지 말하겠지만 정말로

10시간 이상을 서로 인사도 없이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그냥 갔다. 아무런  말 없이 나란히  12시간 가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인데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대단한 분들이라 생각된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침묵 비행을 하는 걸까? 혹시 순례길을 걷는 동안 묵언수행을 암시하는 걸까?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될까?


혹시 같은 멤버로 귀국 비행기 좌석이 배정이 되어 이 상황을 재연하는 걸까? 비행을 시작한 지 10시간이 넘는 이 시간 한국시간으로는 벌써 밤 10시 30분을 넘어서고 있고 스페인 시간으로는 오후 3시 30분.  두 번의 기내식을 먹고 간식과 음료수를 먹은 이 시간 정말로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간만의 토요일 밤. 평상시 밤이라면 가장 편하게 집에서 나의 모든 연결을 off상태로 해놓고 쉬고 있을 보낼 시간인데... 하지만 지금부터 2주간은 휴대폰도 e-mail도, 그동안 관계된 사람도...

아! 자유다

좁은 비행기 좌석에서 10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있다. 화장실을 한번 갔다 오면서 기지개를 켠 것이 전부. 아직도 2200km을 더 가야 하는 상황. 10시간 이상은 화장실도 안 가고 영화 3편은 계속 낮보고 있다.
여기가 어디쯤인가 확인해보니 지금은 프랑스 상공은 나르고 있다. 야 지구 한번 크다. 시차 적응하려고 잠을 안 자고 있으니 엄청 힘들고 할 것도 없다. 이렇게 주절주절 쓰는 걸 보면 그러고 보니 오늘은 우리에게는 31시간이 주어졌다. 한국 24시간, 스페인 어드밴티지 7시간 하루가 24시간도 힘든데 7시간이 더해진 31시간을 살고 있으니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성경에 나와있는 이스라엘 장군인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과 싸울 때 태양을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그날 하루도 길어진 것을 알고 있는데 오늘은 내가 기도하지 않았는데 7시간의 더 주어졌으니 내 기도빨인가? 아니면 순례 여행에 참가한 다른 분들의 神心인가?


밖은 여전히 밝은 대낮인데 비행기 안은 잠을 청할 수 있도록 어두컴컴하다. 역시 10시간 이상의 비행은
누구든지 지치게 하는 것 같다. 다들의 표정에 매우 힘들어요, 지쳐있다고 적혀있다. 원래의 계획이라면 가는 비행기에서는 책은 읽고 있어야 하는데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있다. 옆에 계신 분들이 주무시고 있는데 조명을 켠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하지만 조금 있으면 발을 디딜 스페인!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기대했던 여행!  그것도 혼자만 가는 여행! 나는 과연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배우고 생각하고 고민할까?

그리고 어떻게 변해서 돌아올까? 어쩌면 나의 생각. 나의 신앙, 생활 그리고 나의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다시 보는 여행이 되길 바란다. 앞으로 스페인에서의 첫날밤을 묶을 호텔을 기대해보며 2시간의 비행을 견디고 있다.




장장 12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스페인 마드리드. 우리가 타고 온 대한항공 비행기에 우리 아침편지
여행팀 말고도 한국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로 많은. 아니 대부분 한국사람이 스페인에 오는 것 같았다. 오히려 스페인 입국 비행기가 아닌 한국 입국 비행기로 착각할 정도이다. 입국심사도 EU(유럽 연합)만 따로 하는데 줄을 선 곳은 EU 국가가 아닌 우리와 같은 한국인 또는 등 양인이고 그들이 대부분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입국심사는 거의 형식적으로 얼굴을 확인하기도 하고 간단히 입국 스탬프만 찍어주는 정도로 진행이 된다. 30분여를 기다려 짐을 찾고 공항에 나와서야 조별로 인원 파악을 하면서 우리 6조 13명의 얼굴은 잠시나마 볼 수 있었다. 여행자들은 스페인에 도착했다는 감흥보다는 12시간이 넘도록 좌석에  맞추어진  몸을 누일 호텔이 얼마큼 떨어져 있는 것이 관심이 크고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은

꽤 클줄알았는대 생각보다 적은 공항. 제주공항과 비슷하게 느껴졌고 우리는 공항 이름이 뭔지, 공항을 둘러볼 틈도 없이 곧바로 호텔로 향하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우리가 도착한 바라하스 공항은 스페인에서 제일 크고 세계에서 10번째 크기로 최근에 건축된 4 터미널은 죽기 전에 봐야 할 건축물이라고 선정되어 많은 기사와 블로그에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더니 사전에 알았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텐데.....

 
버스에 오를 때부터 비가 내리가 시작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고 그 피로를 씻어주기라도 하듯이 빗방울은 우리의 몸과 짐을 조금씩 닦아주고 있었다. 반가운 비다. 도착을 환영해주는 것처럼 느낌이 오고 순례길 동안 피해 갈 수 없는 비라 생각하며 우리는    그 비로 마음에 적시고 있었다. 간단한 인원점검을 끝내고 기다리던 버스 2대에 올라타고 10~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공항 근처의  바라하스 호텔에 도착했다.


버스 안에서도 필요한 것만 전달하시고 방 key까지 나누어주시고 내일의 일정도 간단히 정리하시는 꼼꼼함과 노련미! 그 시간 절약으로 여행자들에게 많은 자유시간을 주시려는 세심한 배려. 역시 여행은 시뮬레이션이 되고 디자인이 되어야 여행의 풍미가 더해진다. 많은 경험으로 아침여행 팀의 노하우로 다져진 반복된 일상이었으리라.


여행객이 하루 묵어갈 바라하스 호텔은 예상보다 넓고 깨끗한 환경이다. 방도 넓고. 모든 것이 가지런하고. 일본이나 중국 호텔처럼 좁거나  작지 않아서 다행이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꽤 피곤할 줄 알았는데 막상 짐을 풀고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려는데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사람은 24시간으로 살게 되어 있나 보다, 31시간이 주어진 여행 첫날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순례 치유 여행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앞으로 펼쳐질 14일이 매우 기대된다. 산티아고로 가는 여정이, 그 길을  나에게 어떤 말을 걸어올까?
나는 길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나에게 육신의 눈과 마음에 눈에 어떤 풍광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산티아고 길을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하나님은 그 길에서 동행하며 어떤 말씀을 주실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하신 것처럼 우리 아침여행 순례자들에게도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린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산티아고순례길

#고도원의아침편지

#중년

#터닝포인트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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