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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Apr 26. 2021

남줌마들의수다

이제는 나를 위해 다르게 살기로 했다_8


 

내가 마음을 열고
 미풍처럼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면
 그들도 나에게 마음을 엽니다.
 내가 마음의 문을 닫는 순간
 나는 돌멩이가 되어
 다른 사람이 피해야 하는 존재가 됩니다. 
 
 - 정말지 수녀의《바보 마음》중에서 –



삶의 숨구멍을 마련한 이에게


‘수다’라는 단어는 여자에게만 어울리는다는 생각은 편견과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보통 우스개 소리로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이 있잖아. 여자들이 수다로 인해 접시가 깨질 정도로 시끄럽고 요란하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때로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40대를 넘은 남자들에게도 해당된다면 믿어질까? 이 말이 40대 남자에게도 꼭 들어맞는 말이기도 해. 접시야 깨지지 않겠지만 말이야.


보통 수다라고 하면 쓸데없고 의미 없는 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은 여자들은 수다를 잘 떤다, 혹은 말이 많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지. 당신을 포함한 여자들의 통화를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곤 했지. 수다는 단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소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이 있었으니까 


그런 수다가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 같은 중년의 남자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올 줄은 나도 몰랐으니까. 얼마 전 나와 동갑인 친구 2명 중에 한 명이 갑자기 ‘번개’를 쳐서 저녁을 먹기로 했어. 퇴근 후에 모여서 저녁을 먹고 이어진 곳은 호프집이 아닌 카페였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3-4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거야. 와, 남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참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게 하던데. 여자들도 이런 기분에 자주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브런치 모임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던데. 이제는 조금이 아니라 충분히 공감과 이해가 될 뿐 아니라 이런 모임을 적극 지지하게 계기가 되었어.




확실히 30대 때는 남자들끼리 모여서 저녁을 먹고 커피숍에 가는 경우도 드물지. 혹시나 가더라도 데면데면하게 할 이야기들이 없이 서로 얼굴만 보거나 의미 없는 이야기를 잠깐 하다가 헤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지. 시간이 흘러 회사에서는 리더급으로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참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마음속에 많이 담아두고 있었던 거야. 보통 남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술자리나 회식자리가 아니면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드물지. 보통 남자라고 하는 수컷 동물은 자신에 대한 허풍을 떠는 것이 많은 것 같아. 아니면 같은 경험을 했던 군생활이나 회사 생활에서 위에서 까이고 아래에서 치받쳤던 일들을 자조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아마도 회사에서 회식자리를 하더라도 내가 신입사원 때는 선배들에게 이런 고민, 저런 고민을 이야기를 하던 때가 있었지. 내 업무를 도와준 사수 선배나 내가 직속으로 데리고 있던 부사수 후배 사원이라고 하면 그들과 진솔된 이야기는 몇 번 했던 기억은 있었지. 그렇다고 마음속에 있는 시시콜콜한 이야기하기보다는 술자리에서 술김에 이야기를 한 것이 전부였던 것 같아. 


이번에 우리 세 명이 모여서 이야기한 주제는 실제로 우리가 지금 부딪히고 있는 이야기들이 주내용을 이루었던 것 같아. 직장 내에서 자신의 위치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회사에 더 다닐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이런 이야기를 누구하고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같은 나이에 비슷한 사회경험을 한 동갑내기들은 일부러 코드나 주제를 정한 것도 아닌데 마치 맞춘 것처럼 코드가 잘 맞는 것 같더라고. 그리고 집안에서 가장으로서의 역할,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어떻게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아이들과 관계는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야. 주고받는 이야기가 서로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다 보니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 전혀 부담이 없었고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롭고 놀라웠지. 그러다 보니 3-4시간이 획 지나가는 거야


아쉬운 모임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거야. 오랜 회사생활을 하면서 회사 내에서 쌓인 감정들과 가정에서 당신과 두 녀석과의 관계, 그리고 앞으로 걱정하는 미래, 노후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할 시간과 상대를 갖지 못했던 것이 후회로 남게 될 것 같았어. 오직 회사생활과 가정과 교회와 같은 울타리에 있어 다른 경험을 한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아. 같은 경험과 고민을 가진 중년의 친구들이 서울 한자리에 모여서 지나온 이야기와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은 어느 시간보다 더 좋았던 것 같아. 물론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범위를 좁혀서 남자들끼리 수다를 떠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은지 몰랐던 것 같아. 이런 경험으로 인해 자꾸만 만나는 것 같아. 이제는 번개를 치는 순서도 서로가 돌아가면서 자기가 할 이야기가 있거나 답답한 이야기가 있으면 전화를 걸어 만나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친구를 가졌다는 것이 사소한 일상의 행복으로 자리 잡는 것 같아.


이런 재미를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도 있어. 아마도 중년의 남자들이 퇴근하면서 술을 파는 카페나 주점에 가는 이유가 비슷한 욕구 때문이 아닐까 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고 그것이 해결책을 아니더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있다는 것 말이야. 물론 당신을 포함한 아내들은 그것을 아내한테 이야기를 하면 되지 굳이 밥값을 써가면서 모르는 사람에게 넋두리를 하느냐고 하겠지.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때로는 아내보다는 모르는 사람이나 아니면 동병상련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당신도 아는 나의 대학 동창 Y라는 친구를 알 거야. 이 친구와는 대학 1학년 때 만나서 아직도 만나고 있으니 20년이 훌쩍 지난 친한 친구야. 아마도 서로 군생활을 빼놓고는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가까울 수밖에 없지. 아마도 그 친구를 만나는 것은 특별한 목적이 없어. 문득 일을 하다가 퇴근을 안 했으면 저녁을 먹기 위해서 모이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아파트 전세는 어떻게 하는지,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그리고 앞으로 뭐해 먹고살까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 딱히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수다를 떨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나만 이런 고민을 안고 사는 것은 아니구나. 나도 힘든데 너도 힘들구나. 우리 힘내어 잘 살아보자.’ 하는 그런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아마도 그 친구와 가까운 거리에서 같은 회사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계속될지 모르지만 그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서로 다른 인생길을 가면서 같은 코스를 걷거나 비슷한 풍경을 보고 서로의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에 대해서 수다를 떨면서 서로의 고민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아줌마가 아닌 남줌마들의 수다는 어뗜 면에서는 힐링 수다, 힐링타임이라 할 수 있어. 그렇게 수다를 나누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노하우나 요령을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여보, 아마도 이런 수다는 건강한 수다가 될 것 같아. 이런 모임을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을 한 두 명씩 더 모아봐야 할 것 같아. 서로의 사회적 위치나 돈이나 배경이 주된 이야기가 아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욱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당신도 물론 수다 모임이 많겠지만 같은 동갑내기나 한 두 살 차이가 나는 서로가 부담 없이 속내와 나에 대한 불만 사항과 아이들에 대한 고민 등을 흉물 없이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수다모임을 만들어봐. 아마도 인생이 좀 더 재미나고 흥겨울 겨야


그래야 같은 인생길에 길동무가 되고 세상에 소풍 나온 친구들과의 수다로 인해 우리의 삶은 더욱 깊어지고 농도가 진해질 거라 생각해. 아줌마와 남줌마들의 열렬한 수다 만세!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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