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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고양이)의 마음

둘째 중성화 수술

by 고은유 Mar 10. 2025

둘째의 소변 실수로 골머리를 썩이던 중 둘째의 이상행동을 발견했다.


갑자기 바닥에 딱 붙어서는 뒷발만 제자리걸음을 하듯이 반복해서 내딛으며 가만히 있는것도(?) 안 있는 것도 아닌(?) 의아한 모습이었다.


다리를 다쳤나? 하며 관찰 중이었는데 몇주간 생각해 왔던 소변 스프레이와 함께 불현듯 한 단어가 정수리를 따악 때렸다.


'고양이 발정기 행동'


둘째는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오래 뒹굴었다. 틀림없이 평소와 다른 행동이었다. 가을이가 우리집에 온지 3주 정도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2kg가 넘었고, 5~6개월 추정이라 중성화 수술을 할 시점이긴 했다.


첫째 그림이는 예방접종 완료와 동시에 최대한 빠른 날짜에 중성화 수술을 했지만 가을이는 우리집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응기를 지나고 한달 쯤 되는 시기에 수술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 시점이 빨리 온거다.


중성화 수술은 성별에 상관없이 생식기 관련 질병을 예방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발정이 오기 전 수술을 하면 예방확률이 아주 높아지기 때문에 보통 2kg 정도가 넘으면(마취에서 깨어나는 것과 관련 있다고 들었다.) 일찍 하는 게 좋다고 알려져 있다.

 

주말 예약은 모두 마감되었다고 해서 다음날 점심시간에 수술을 하고 마취가 깨기를 기다렸다가 퇴근 후 가을이를 데려오기로 했다.  


가을이를 데리러 가니 선생님이 가을이를 데려오시며 말씀하셨다.


"가을이는 더 착해요. 가만히 안겨있고 가까이 가면 꾹-꾹-하고 너어무 예뻐요."


우리 가을이가 예쁘다고 하신다. 그렇죠? 우리 가을이 정말 예뻐요.




집에 돌아온 가을이는 그림이 때처럼 조금 비틀비틀 거실을 걸어 다녔다. 그림이는 기력을 되찾는 데 이틀 정도 걸렸고 그동안 잠을 많이 잤는데 가을이는 집에 온지 30분도 안돼 뛰어다니고 점프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텐션 정말 높구나. 나 좀 나누어주련?


수술을 위해 배 쪽 털을 깎아 드러난 통통한 배가 귀엽다.


가을이는 그림이를 쫓아다니고, 또 쫓아다녔다.


그림이는 넥카라를 하고 있는, 평소와 달리 조금 힘이 없어 보이는(집에 온 지 얼마 안 돼서는 그랬다.) 가을이 주변을 맴돌며 여기저기 가을이 냄새를 맡았다. 어딘가 조금 이상해 보이는지, 걱정이 되는지 가을이를 살폈다.


가을이가 덤벼들어도 평소보다 약하게 방어하는 듯 보였다. 가을아 너 안 아프니, 조금만 가만히 있자.


가을이는 수술상처도 하루가 다르게 금방 아무는 듯하다. 상처 봉합부위의 그루밍을 막기 위해 보통은 넥카라를 일주일 가량 착용한다. 그림이는 일주일이 지나도 상처가 그대로 있어 2주간 했었는데 가을이는 넥카라 착용 표준기간(?)인 일주일을 따라도 될 듯하다.


그림이는 중성화 후에 좀 더 느긋해졌고 차분해졌다. 가을이도 조금은 그러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는데, 뛰어다니는 걸로 봐서는 과연... 점잖은 청소년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두 고양이와 놀아줄 때면 이제 그림이는 멀찍이 물러나있다. 그림이가 놀자고 불러서 시작한 사냥놀이인데 장난감을 꺼내자마자 가을이가 엄청난 속도로 뛰어와 그림이 장난감을 뺐는다. 그러면 그림이는 저 멀리 가서 우리를 지켜본다.


나도 첫째라 왠지 그림이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된다. 그 마음은 더 어린 생명에게 자신의 것을 양보하는 마음일까, 아니면 포기하는 마음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제 물려서 줘버리는 마음일까.


라떼(?)의 교육으로서는 한살이라도 많은 이에겐 양보가 미덕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첫째는 서럽다. 얼마 차이도 안 나는데 첫째라 모든 걸 양보해야 하고 참아야 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양보면 모르겠지만 학습된, 혹은 강요된 양보는 왠지 부작용이 있을 듯하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둘을 비슷하게 대하려고 한다. 한 고양이와 교감을 하고 있으면 다른 한 고양이가 어김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 아이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분리된 공간에서 각자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놀아주는 게 가장 좋을 듯 하지만 한편으론 바깥에 혼자 있을 다른 아이를 생각하면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차선책으로 나는 가을이와 한바탕 신나게 놀아준 다음 가을이가 조금 쉬고 싶어하면 한손에 가을이를 안고, 그제야 그림이가 내게 다가오면 그림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꺼내 열심히 흔들어준다. 주말에 다이소에서 산 2000원짜리 낚싯대는 그림이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이다.


그림이는 간만에 기분좋은 채터링을 하며 뛰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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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닮아가는 그들이다점점 닮아가는 그들이다
귀가한 집사를 맞아준다 기지개를 켜며 반가워해준다귀가한 집사를 맞아준다 기지개를 켜며 반가워해준다
가을이에요가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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