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상 의사, 조선 총독부 투탄 의거
지난 9월 또 한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18세 때 바느질 공장 취업을 위해 친구와 함께 중국으로 갔다가 일본군 '위안부'로 피해를 입으셨다고 해요. 할머니는 해방 후에도 바로 귀국하지 못했고, 2000년대 초반에야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중 생존자는 이제 단 여덟 분에 불과합니다. 생존자 평균 연령은 95세라고 해요. 2023년 11월 서울고등법원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등이 낸 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2억 원씩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여전히 이행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79년이 지난 지금도 일제의 그림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어요.
지금으로부터 103년 전인 1921년 9월, 조선총독부청사 2층의 비서과와 회계과 두 곳에 각각 폭탄이 날아들었습니다. 청사가 큰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한 사나이가 유유히 현장을 떠났어요. 바로 투탄 의거를 감행한 김익상金益相이었습니다.
김익상은 1919년 만주에서 결성된 의열단義烈團의 단원이었습니다. 의열단은 다른 독립운동단체들의 미온적이고 타협적인 독립운동노선을 배격하고 무력 투쟁을 통한 독립의 쟁취를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였어요. 그들은 조선총독 이하 고관·군부의 수뇌부·매국노·친일파 등을 암살대상으로 지목했고, 조선총독부·동양척식주식회사·경찰서 등의 식민통치기관 및 관련 기관의 폭파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김익상의 총독부 투탄의거 이전에도 부산경찰서 폭탄투척의거,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거 등이 의열단에 의해 행해졌죠.
김익상의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당시 신문자료나 재판자료 등을 통해 서울에서 1895년경 태어났음을 추측할 뿐이죠. 그가 의열단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20년입니다. 몸 담고 있던 직장에서 중국으로 발령 난 것이 그의 인생에 일대 전환점이 되었어요. 북경에서 의열단 단장 김원봉金元鳳을 만났죠. 당시 의열단은 부산경찰서 폭파, 밀양경찰서 폭파에 이어 식민통치의 중심인 조선총독부 폭파를 계획하고 있었고, 그 시점에 김익상과 김원봉이 만난 것이었습니다.
김원봉의 뜻에 감화된 김익상은 의열단 가입 후 조선총독부 폭파를 결심하고 1920년 9월 11일 권총 2정과 폭탄 2개를 지닌 채 귀국했고, 이튿날 조선총독부로 향했습니다. 그는 전기수리공으로 변장한 채 태연히 총독부 청사로 들어간 뒤, 2층의 비서과와 회계과에 차례로 폭탄을 던졌습니다.
비서과로 던진 폭탄은 불발이었지만 회계과로 던진 폭탄은 성공했고 청사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일제 헌병들이 몰려들었고, 김익상은 2층으로 올라가려는 헌병들에게 ‘2층은 위험하다’고 알리며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어요. 영화의 한 장면 같죠? 그가 남다른 담력과 임기응변의 소유자였음을 보여주네요.
일제는 범인을 잡으려 혈안이었지만, 김익상은 평양을 거쳐 9월 17일 북경에 무사히 도착하여 김원봉에게 의거를 보고했습니다. 총독 사이토 마코토 암살에 실패한 김익상은 이듬해 3월,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 암살 임무를 맡아 중국 상해에서 실행에 옮겼으나 거사는 실패로 끝나버렸고 동료와 함께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그의 기개는 꺾이지 않았고, 당당한 태도로 재판정에서 일제의 침략을 비난했습니다. 재판 결과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어떤 연유에선지 20년 징역으로 한 번 더 감형되었어요.
출옥 후 김익상의 최후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옥고를 치르고 나온 그를 일본 고등경찰이 연행해 갔다고 하며 이후 행적이 묘연해진 것을 통해 일제에 의해 암살된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혹은 연행 중 한강에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정부는 그의 뜻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으나, 여전히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많지는 않은 듯합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독일은 전후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여러 번 피해자들에게 진정으로 사죄의 뜻을 밝힘으로써, 주변국이 인정하는 유럽의 선도적 위치에 다시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일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죠.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의 경구로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사죄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마라.
Forgive. but not forget.
*1)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일제가 감시 대상으로 삼은 인물들의 신상 카드로, 일제 경찰이 제작했습니다. 이 카드에는 사진과 함께 출생일, 출생지, 주소지, 신장 등의 기본 신상 정보와 각종 활동 기록, 검거 기록 등이 기록되었어요. 이 카드에는 한용운·유관순·안창호·이봉창·윤봉길 등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들을 비롯한 다수의 민족 운동가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민족 운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일차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