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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eunpa Nov 07. 2024

안전불감증은 현재진행중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89년 12월 1일 강남 한복판에 초호화백화점인 삼풍백화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삼풍백화점은 당시 단일 매장 기준으로 소공동의 롯데백화점 본점에 이어 전국 2위 규모를 자랑했고, 1994년에는 외관 전체를 분홍색으로 도색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삼풍백화점의 소유주는 삼풍건설사업의 회장 이준이었습니다. 그는 건설 사업에 뛰어들기 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창설 멤버로 활동했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죠. 그는 중앙정보부를 나온 뒤 건설 사업에서 굵직한 공사를 따내며 부를 축적했고, 중정 때의 인맥과 정보를 바탕으로 1974년 강남 서초구의 땅을 사들였습니다. 그가 땅을 구매한 후 ‘기가 막히게도’ 강남 개발 열풍이 몰아쳤고 이준은 더욱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어요.


1990년대 들어 지속 증가하는 국민소득에 맞추어 한국의 재벌들은 백화점 설립에 열을 올렸고, 이준 역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백화점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백화점을 올리려 했던 부지는 본래 주거용 부지로, 백화점을 지을 수 없는 땅이었어요. 이준은 땅의 용도를 억지로 변경하기 위해 담당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었고, 그렇게 용도를 변경한 땅 위에 삼풍백화점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시작부터 삼풍백화점은 잘못되었던 것이죠. 


삼풍백화점은 건설 초기부터 개장 이후까지 부실과 불법의 연속이었습니다. 운영사인 삼풍건설사업은 애초에 4층으로 설계되었던 건물의 매장 규모를 늘리기 위해 5층으로의 불법 증축을 시공사에 요구했고, 시공사가 붕괴 위험성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자 계약을 중도 파기한 뒤 삼풍건설사업이 직접 시공에 나서 이를 강행했습니다.


문제는 불법 증축만이 아니었습니다. 삼풍건설사업은 건축 비용의 절감을 위해 기둥의 지름을 25% 정도 줄이거나 심지어 일부 기둥은 없앴으며, 철근 숫자를 줄이고 천장과 기둥을 연결하는 지판의 두께 역시 원래보다 줄이는 등 이미 건설 당시부터 총체적 난국이었음이 붕괴 이후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어요.


건물 안전에 치명타를 날린 것은 옥상의 에어컨 냉각탑이었습니다. 삼풍백화점의 에어컨 냉각탑 무게는 냉각수까지 도합 87톤에 달하는 무게였어요. 이는 옥상이 견딜 수 있는 하중의 4배를 훌쩍 넘기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개장 초기부터 건물은 미세한 진동과 물이 새는 현상이 지속 발생했습니다. 불법적인 용도 변경, 부실공사와 관리 소홀 등이 겹치며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개장 이후 5년 동안 계속 진행 중이었습니다.


결국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경, 삼풍백화점의 A동 건물이 순식간에 지하층까지 완전히 붕괴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8개월 전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 사건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 번의 대형 참사가 일어난 것이었죠. 이 사고로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부상, 6명이 실종되어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 사고로 기록되었습니다.

처참한 모습을 드러낸 삼풍백화점 붕괴현장(1995.6.30)_사진) 서울역사편찬원

붕괴가 있기 전 이미 심각한 징후가 곳곳에서 있었습니다. 식당가 전체에 균열이 생기거나 건물 전체가 서서히 기울었고, 5층 바닥은 서서히 내려앉기까지 했다고 전해요. 사고 당일 오전, 5층에서 또다시 심각한 조짐이 발생하자 백화점 경영진은 대책 회의를 열었지만, 손해를 우려한 나머지 영업을 강행하면서 보수공사를 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됩니다. 사고 이후 회장 이준은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 등으로 징역 7년 6개월, 아들인 사장 이한상은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고, 백화점을 지을 당시 뇌물을 받았던 공무원들은 사법 처리되었다.

왼쪽) 삼풍백화점 붕괴현장 정리와 구조활동(1995.6), 오른쪽) 삼풍백화점 사고 피해자를 찾는 벽보(1995.6)_사진) 서울역사편찬원

 현재 삼풍백화점 자리에는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 있고, 사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탑은 사고와 전혀 상관없는 양재 시민의 숲 구석진 곳에 세워졌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사고 이후 ‘재난관리법’,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건설사업 기본법’ 등 관련법의 제정, 긴급구조구난체계의 개선 등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사진전(1996.6.24 시청지하도)_사진) 서울역사편찬원

지난 2021년 6월 9일, 광주의 한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지며 시내버스를 덮쳐 승객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최근엔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시공한 아파트 22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 문제가 확인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죠.  


대형 참사가 언제 있었냐는 듯 사회 곳곳에서 안전불감증은 여전히 만연한 듯합니다. 사고는 사람을 가려서 일어나지 않죠. 언제 어디서 내가 겪을지, 내 가족이 겪을지 모를 일입니다. 금전적 이득에 앞서서 상식과 원칙이 선행되는 사회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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