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탕속에서 피어난 인간관계

오뎅탕 꼬치럼 몸을 웅크리고 빽빽히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by Choi

<대문사진 출처 : Pintrest>


매일 오전 10시 5분에서 10분 사이 샤워수건을 둘둘 말아 아라비안 나이트머리를 하고서 들어온다. 그녀는 큼직한 눈과 각진 얼굴형을 하고 있다. 비록 알몸이지만 얼굴에서 카리스마가 넘쳐난다. 난 그녀를 볼 때마다 약간 '프란시스코고야'의 '각진 마야 부인'이 연상된다. 한편으로는 부동산 복부인 같다. 그녀는 낯선 이다. 요가수업도 듣지 않는다. 어림잡아 80대 초반에서 중반 같다. 그녀와 난 열탕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이러했다.


Black Duchess, Duquesa de Alba


'스포츠 센터 샤워시설은 어느곳와 동일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수영장을 운영하는 스포츠 센터라 복잡할 것 같았다.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었다. 굳이 그곳에서 샤워를 할 필요성도 못 느꼈다. 내가 하는 애매한 요가는 땀도 거의 나지 않았다. 약간 옷이 젖는 정도였다. 샤워용품을 바리바리 사들고 다니기 귀찮았다. 휴대용 샴푸, 린스, 샤워젤, 스킨, 로션....... 등등.... 아우~ 생각만 해도 '귀찮음' 그 자체였다. 젖은 긴 머리를 말리는 시간 역시 오래 걸렸다. 이 부분이 제일 번거로웠다.


일단 스포츠 센터에서 샤워를 한다는 자체가 나에겐 에너지와 시간 낭비였다. 요가 후 레깅스차림으로 마트도 잘 다녔다. 은행 볼일도 다니고 도서관에도 자주 갔다. 모두 걸어서 이동이 가능한 거리였다. 특히 해가 좋은 날은 레깅스를 입은 채로 하늘 한 번 보고서 '나 운동하는 뇨자~' 티를 팍팍 내며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사실 호찌민에서는 운동 후 레깅스를 입고 하루를 마무리한 적도 많았다.)


언제나 가볍게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간소화되었다. 처음 엔 에코백을 들고 다녔지만 이마저도 귀찮았다. 핸드폰 하나, 핸드폰 뒤에 신용카드 한 장. 그게 끝이었다. 물통도 들고 다니지 않았다. 목이 마르면 그냥 정수기 물을 마셨다. (적고 보니 남자가 따로 없네.. )


뭐 여하튼 가방하나 없이 가뿐하고 즐겁게 다녔다.


그랬는데...


요가수업 중 ‘호호아주머니’ 덕에 이곳 샤워시설이 특별하다는 것을 되었다.


역시 사람은 정보가 중요해~ 중요해~


집 근처 10분 거리 아울렛 매장을 두고서 1년 동안 30분 넘게 걸리는 아울렛을 다닌 내가 아닌가.... 이곳 스포츠 센터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듣고 세 번 수업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얌체처럼 딱 요가만 하고 후다닥 교실을 빠져나갔다. 여러 해 동안 함께 요가라이프를 보낸 그들 사이에서 난 이방인과 다름없었다. 사실 인간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혼자가 항상 편한 나였으니까..


그러다 매일반을 등록한 뒤 매일 보는 그들과 겨우 인사를 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안면이 트였다.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은 인간관계가 저절로 형성되 버렸다. 그런데 요즘 그 인간관계 덕분에 살맛 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난 그들을 붙잡고 통증을 호소했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조차도 일 년 넘게 요가를 한 분들이라 통증에 있어서는 달인이 따로 없었다. 마사지볼, 파스, 폼플러 이용법 등등 그리고 하나같이 요가 후 온탕, 열탕 또는 사우나에 들어가면 좀 풀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호호아줌마는 요가수업 전에도 탕에 들어가서 몸을 따뜻하게 한 뒤 수업에 참여한다고 했다.


다들 요가수업에 진심인 사람들만 있는 듯했다. 그만큼 나이가 들수록 허리, 무릎 등 아픈 곳이 많았다는 이야기 이기도 했다. 그러다 이 중년 남자 요가와 선생님을 만나 꾸준히 재활한다는 기분으로 요가를 한다고 했다.


그들은 통증완화에 좋은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전문가였다. 또 혹시나 했던 부상의 두려움도 말끔히 사라졌다. 새로운 곳이 아플 때마다 무서웠다.


난 호호아줌마가 정말 부지런하다 생각했다. 수업 전에 목욕탕까지 다녀온다는 말이 아니던가. 그리고 주변에 목욕탕이 어디에 있는지도 궁금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새로운 목욕탕을 알게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물었다.

"그럼 요가전이나 후에 목욕탕을 가시나요? 근처에 목욕탕이 있나요?"


이 질문을 마치자마자 다들 의아해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한분은 눈을 찌푸리듯 미간이 좁아졌고, 다른 한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다른 분은 도대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되돌아온 질문은 이러했다.


"자기야, 여기 스포츠센터 샤워장 안 가봤어? 한 번도?"


아... 그랬다.

여기 스포츠 센터는 오래전에 지어졌다. 요가 선생님이 20년 넘게 이곳에서 가르치고 있으니 대략 그 정도 된듯하다. 이 스포츠 센터에는 열탕, 온탕, 냉탕 그리고 사우나가 있었다.


말도 안 돼!!!! (한국 스포츠 센터 아직 잘 몰라요.)

그럼 이곳은 목욕탕이 아닌가? 샤워시설만 있는 곳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탕'이 있는 곳이었다. 호찌민에서도 꾸역꾸역 찾아다녔던 ‘목욕탕’!!!


매일반을 등록하고서야 알게 된 일급기밀. 이곳 스포츠 센터에는 열탕이 있다. 사우나까지 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도 이야기해 주었다. 남편도 놀랬다. '열탕, 온탕, 냉탕에 사우나가 있다고?' 우리 부부는 목욕탕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남편도 일일 헬스 회원권을 끊어 주말에 한번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는 지극히 운동 보단 '목욕탕'이라는 개념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즉 스포츠 센터에 있는 '열탕'에 몸을 담그고 싶다는 뜻이었다.

다음날 당장 그 귀찮은 샤워준비물을 바리바리 챙겼다. 배낭에 갈아입을 속옷과 샤워 후 레깅스 대신 입을 바지 그리고 간단한 스킨로션까지 꽉꽉 구겨 넣어 빵빵한 가방을 짊어지고 요가를 하러 갔다.


요가수업시간 내내 탕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업되었다.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요가를 더 열심히 했다. 아파도 따뜻한 탕에서 풀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게다 서늘한 늦가을 날씨까지 찾아왔다. 따뜻한 탕이 그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통증에 좋다는 말! 절실했다.


처음 가본 탈의실. 사람들이 입구에서 얼굴을 갖다 댄다. 안면인식이다. 난 입장이 안된다. 접수처에 가서 안면인식을 등록했다. 드디어 입장!


오래된 건물다웠다. 똥색 나무 옷장에 열쇠구멍 있는 사물함도 있었다. 탈의실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이 옛날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었다. 난 운동 후 잠깐 몸만 담그고 싶었다. 이 정도면 훌륭했다


그날 열탕 안에서 열심히 허벅지 뒤쪽을 주물렀다. 손가락에 쥐가 날 만큼 두들리고 문질렀다. 다음날 아침 놀라울 정도로 다리통증이 줄어들었다. 몸도 가벼웠다.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불면증이 치유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듯 몸이 많이 뭉친 날에는 무조건 다녀왔다. 단 시간을 정했다. 머리 말리는 시간까지 30분 안에 마친다. 열탕에서 5분~7분만 머문다. 그렇지 않으면 오전 나의 시간이 허공으로 날아가버리는 끔찍한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 좀 틀어도 되지요?"


그리고 그녀를 이곳 열탕에서 만났다. 그녀와 난 무슨 인연일까? 아라비안 나이트머리를 한 그녀는 열탕 마니아였다. 수영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거려서 목욕탕보다는 어수선한 분위기다. 수영 시작과 끝 시간에는 사람들이 우르를 몰려들었다 빠져나간다. 바닷가 밀물과 썰물처럼.


그러다 보니 열탕 온도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온탕은 미지근한 편이다. 난 열탕만 이용한다. 이 '고야부인'이 열탕에 들어오면 항상 뜨거운 물을 콸콸 틀었다. 그럼 은근히 사람들이 서서히 뭉그적 뭉그적 빠져나갔다. 반대로 난 몸을 더 깊숙이 담갔다. 속으로 기뻤다.


그녀는 항상 묻는다.


"물 좀 틀어도 되지요?"

"네~ 그럼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때 그녀는 나에게 " 아우~ 웃는 눈이 참 이뻐~" 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빈말이건 아니건 나 역시 기분이 참 좋았다.


그렇게 그녀와 매번 열탕에서 미리 약속한 연인처럼 같은 시간에 거의 매일 만났다.

우리는 열탕 안에서 항상 바빴다. 난 다리를 주무르고 그녀는 두 다리로 자전거 타기를 하듯 물속에서 노를 저었다. 항상 5분에서 7분 정도만 앉아있다 나가는 나를 그녀는 매번 붙잡았다.


"아이, 좀 더 있다가~ 너무 뜨거워서 그래?"

"아니에요~ 저 거의 10분 있었어요~"

웃으며 항상 먼저 열탕을 나왔다. 그리고 신의 손놀림으로 급속 샤워를 마쳤다.


집에 가면 할 일이 줄줄이 사탕처럼 밀려 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그런 그녀가 안 보인다. 한 열흘 동안 보이지 않았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그녀가 걱정되었다.

'웬 오지랖이지?'

'내가 이토록 오지랖이 넓은 여자였던가?'

'아니면 알몸을 서로 맘껏 내보이더니 저절로 열탕 안에서 정이 들었나?'


오늘도, 내일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왜 보이질 않지?' 잠깐 어두운 생각도 들었다.

'연세가 있던데, 어디 아프가?'


늙음과 죽음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지는게 인간이 아니던가. 마음이 쓰였다. 많이...


'왜 그녀가 마음 쓰였을까?'


어쩌면 참으로 오랜만에 모르는 누군과와 그 어떤 이해타산 없이 그저 정으로 말을 섞어서일까?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그리워서? 난 외할머니와 일하는 아주머니 손에 번갈아 가며 자랐다. 아직도 가끔은 할머니가 그립다.


열흘정도 후!!!

그토록 기다리던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활짝 이빨까지 드러내며 웃어버렸다.


"어머~ 그동안 어디 다녀오셨어요?" 밝고 경쾌한 목소리까지 나왔다. 나 스스로 말을 뱉고 나서도 놀랬다.

그녀도 나를 보자마자 지긋이 웃었다.

"어쩜 그렇게 웃는 모습이 이뻐~ 눈웃음이 참 예뻐~"

"에이~ 이쁘게 봐주시니 그렇지요~"

"집에 마룻바닥이 일어나서 그거 공사하느라 한동안 못 왔어~"

"아~~ 그러셨구나~ 공사는 다 마무리되셨고요?"

" 응~ 대충 했어~"


그녀는 다시 뜨거운 물을 틀었다.

열탕물이 콸콸 넘친다. 그녀는 여전히 다리를 자전거 타듯 굴리며 물을 이리저리 섞는다. 허전했던 열탕이 오랜만에 다시 꽉 찬 열탕이 되었다. 오늘도 내일도 그녀가 열탕에 물을 콸콸 털어 주었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동안 말이다.


오늘도 날 보자 마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눈 많이 내려?, 미끄러워?" 라고 물었다.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모르는 사람과 말도 별로 섞지 않는 내가

많은 말 하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원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가고 있다.

아니면 원래 나의 모습인가?

불교 용어중 '무아'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라고 할것이 없다는 뜻...

그런가?


좁은 교민 사회에서 '이깟 인간관계 그만하자'라고 결심하고 포기했던 인간관계를 다시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생각해 보니 교민사회 인간관계와 한국에서 만나는 한국사람은 좀 다른 것 같다. 그곳은 치열했다. 주재원, 자영업, 교민, 중소기업. 마치 계급이 나누어진 교민들이 서로서로 끼리끼리 어울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리로 몰려다니는 활동에 염증이 나 있었다.


그런 내가 다시 요가하는 사람들과, 오뎅꼬치처럼 빽빽이 앉아있는 열탕 속에서 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져 있다.


올 겨울은 얼떨결에 따뜻한 겨울이 되어버렸다.

애매한 요가 너 때문에...


by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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