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그녀가 "커피 한잔 하실래요?" 했다.

그녀에게 커피한잔은 삶을 나눈다는 의미였다.

by Choi

<사진출처: pintrest>

그녀가 말을 건넸다.
"항상 혼자 다니시죠?"
"에? 아... 네..."
"저랑 커피 한잔 할래요?"
"아.. 네, 그~러죠?"

<사진출처 pinterest>

그녀는 긴 단발에 약간의 주근깨가 있다. 그녀가 나에게 커피를 한잔 하자했다. 그녀는 듬직한 체격을 가졌다. 한두 번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어느 날 팔 한쪽에 담이 걸린 것 같다고 해서 '파스'를 권했다. 집에 갖가지 종류별 파스를 구비하고 있는 나였기에 망설임 없는 제안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오~ 고마워요~'라고 인사를 하고 휘리릭 사라졌다.


두 번째는 도서관에서 나와 아파트 쪽으로 걸어가는 그녀를 보았다. 다음날 요가원에서 '어제 도서관 다녀왔죠?'라고 내가 물었다. 그녀는 도서관에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지나치다 보지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냥 넘어갔다. 그녀도 매일 온다. 그녀는 추운 날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요가원을 온다. 모자에 털 부츠까지 신고 어기정 어기정 걸어서 오는 나와 달리 양말조차 신지 않고 올 때도 있다. 그녀는 덩치가 나보다 크다. 혈색도 맑다. 건강미가 넘쳐난다. 항상 병든 닭처럼 골골 비실비실 하는 나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다.


요가 선생님이 강의 중인 대학교가 방학식을 했다. 2주 전 선생님과 요가녀들이 차를 한 시간가량 마신적이 있다. 난 아이 방학이 겹쳐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 그때도 그녀는 '왜 안 오셨어요?'라고 나에게 물었다.


우리는 이렇게 각자의 존재를 무의식 속에 인지를 하고 있었다. 호호 아주머니나 백발 단발 아주머니처럼 화려하게 인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지는 않는다.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 관심이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그냥 서로 눈인사만 했다. 알듯 모를 듯. 마치 썸 타는 그런 비슷한 관계였을까? 여자끼리?


남편이 가끔 쉬는 날이 있다. 때 마침 그날이었다. 아이도 방학이고, 남편이 쉬는 날!!! 에헤라 디야~~ 오늘은 어차피 집에서 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 그런 날. 반 강제적으로 무조건 놀아야 하는 날. 책도, 글도, 청소도 할 수 없는 날!! 가족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 날~ 주말과 같은 날이지만 요가는 쉬지 않는 날.


오전에 요가를 마치고 전투적인 10분 샤워와 3분 열탕에 몸담금 대신 오랜만에 느긋하게 따땃한 물속에서 몸을 풀고 싶었다. 그래서 전날 남편에게 아이 아침밥을 부탁했다. 남편은 주로 계란 "숑숑밥"을 해서 먹인다. (계란, 참기름, 간장을 넣고 비빈다음 참깨를 숑숑 뿌려 우리 집에서는 "숑숑밥"이라 부른다. 아이가 어릴 적부터 남편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밥이 이 '숑숑밥'이다. )


헌데!!!!!!!! 다음날 아침 느닷없이 생리현상이 비췄다. 에잇! 망했다. 호르몬제를 먹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종종 있다. 한 끗 여유를 부리며 룰루 랄라 하며 전날 샤워 가방 안에 이리저리 뒹굴던 샴푸, 린스, 바디젤을 꽉꽉 채워놨는데...


요가를 마치고, 매트를 정리하고, 양말을 신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보단 주로 계단을 이용한다. 단발에 주근깨가 있는 그녀가 뒤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얼떨결에 우리는 무인커피숍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수다를 떨었다. 아니 수다라기 보단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오랜만에 남의 나라 이야기가 잼났다. 브런치와는 달리 육성으로 얼굴을 보며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낯선 그녀의 삶 속에 난 초대 되었다.


대인관계에 있어 좋은 사람역할은 진작에 포기했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름을 진작에 인정했고, 누군가를 만날 때 더 이상 그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는 분별과 판단은 거두어들인 지 오래되었다. (이 생각 때문에 브런치글을 읽은 후 댓글을 잘 못 단다.) 어쩌면 그래서 홀로인 시간이 더없이 소중했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지도, 사람이 그립지도, 그렇다고 고독한 시간이 외롭지도 않았다.


그녀는 직장을 다니면서 아들 둘을 양가의 도움으로 함께 양육하고 있었다. 한국은 맞벌이 부부가 생각보다 참 많다. 그녀는 쉬지 않고 그녀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들 둘 이야기, 원래는 직장을 다녔는데 지금 휴직 중인 이야기, 섬세한 남편이야기, 친정과 시댁 이야기, 도서관 이야기, 책 이야기.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난 그녀가 신기했다. 어떻게 스스럼없이 모든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나에게 다 해주지? 뭐 숨길 이야기도 아니지만 나와는 참 다른 그녀였다. 난 사람과 만났을 때 나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듣는 쪽을 택한다.


또, 사실 난 남의 이야기를 아주 잘 들어주는 재능을 타고났다.(그래서 지칠때가 참 많다.) 공감도 곧 잘한다.


오랜만에 인간과 인간이 만나 인간들의 삶이 비슷비슷하구나라고 진하게 느꼈다. 홀로 고독한 삶을 선택해서 살아가나 서로서로 부대끼면 살아가나 별 차이를 못 느꼈다. 크게 보면 획일적으로 비슷비슷한 공동체 같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아등바등 아이 키우고, 나이 들어서는 노부모 챙기다 우리도 함께 늙어 가는 삶. 그나마 좀 정신 차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면 이미 50에서 60대. 인생의 시작은 마치 50 이후부터라는 슬로건을 마음속으로 의지하며 아직은 젊다는 트렌드와 의식을 꾸역꾸역 머릿속에 집어넣은 채 남은 생에 박차를 가해 곱게 늙는 게 꿈이다, 혹은 귀여운 할머니, 지헤로운 할머니, 요가하는 할머니(나의 꿈)등을 마음속에 품는다. 현실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도 하지 못한 채 그 모토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고 살아가는... 뭐 대충... 그런 삶. (요즘 젊은 친구들은 출산도 잘하지 않으니 어쩌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겠다.)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그녀가 막내아들을 놀이터에 잡으러 다니는 이야기를 듣는 중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 열심히 살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휴직기간 중 그 일 년의 시간이 너무 아까워 하루동안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요리도 청소도 후다닥 해치운다 했다. 도서관에 매일 가는 이유는 책을 읽고 바로 그 자리에서 반납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게 좋다고 했다. 일 년밖에 시간이 없어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무얼 할지 몰라 책을 읽는다고 했다. 나 역시 하루하루 삶이 너무 소중해 딱 3분~5분 열탕 몸담금, 전투적인 샤워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의 책 읽는 습관도 들려주었다.


우린 서로 격하게 공감하며 나에게 주어진 '하루'와 그녀에게 주어진 '일 년'이 별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 후 서로 깔깔 거리며 웃었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로서 항상 미안함, 부족함을 마음에 품고 있는 현시점, 우리가 처한 상황도 비슷해서 고개를 끄덕 끄덕이며 그녀 이야기를 들었다.


육아, 양육, 한 인간을 기른다는 또 다른 나이 든 인간 = 엄마. 온전하지 못한 인간 = 엄마.

뭐 홀로 집까지 가는 길이 묵직하다. 난 어떤 마음으로 지금 우리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지 돌아봤다. 일하는 엄마는 아니지만 난 왜 이렇게 바쁜 거지?


미안함, 부족함, 죄책감을 가진채 아이를 양육하고 싶지 않아 시작한 '마음 챙김'. 그런데 잘 모르겠다. 지금 난 어떤 엄마인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뭐가 옳고 그릇 된 건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감사함은 조금 알 것 같은 그런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나저나, 요가를 하다 얼떨결에 사람을 만났다. 커피까지 마셨다. 그녀 이름조차 물어보지 못했다. 이런...

지금 와서 고백하는데, 커피 한잔 마시자는 말에 난 무척 당황했다. 그렇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얼떨결에 마신 커피 한잔에 그녀 삶과 나의 삶이 별반 다름이 없음에 난 위로를 받았다. 나도 그 힘든 평범한 삶을 매일 살아 내고 있음에 감사함.


저기 아들 둘 엄마, 고마워요~

먼저 말 건네줘서.

시간 내줘서.

삶을 나누어 줘서.

감사해요.


by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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