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덕수궁

벚꽃이 흩날리는 덕수궁을 달리다.

by GoGo자형

어느덧 4월이 왔다.

3월의 꽃샘추위도 물러간 4월이 되자
덕수궁 돌담길엔 벚꽃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덕수궁 복원공사 현장에 회의가 있어서 가는 길인데

그런데 괜스레 마음이 산책 나온 듯 가볍다.

이래서 나는 문화유산을 지키는 내 직업이 참 좋다.


돌담길의 벚꽃이 너무 이뻐서
'내일 아침엔 덕수궁을 한 번 뛰어볼까?'
슬며시 마음을 먹는다.


덕수궁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작고 단아한 궁궐이다.

경복궁, 창덕궁처럼 웅장하진 않지만,

석조전 같은 근대 건축물과 전통 궁궐 건물이 어우러져

모던한 궁궐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풍경에 더해진 벚꽃.

봄날의 덕수궁 돌담길

그 자체로 짧은 시(詩) 같다.


회색 담장 위로 흩날리는 연분홍 꽃잎들.
햇살에 반짝이는 기와지붕.

그 위로 한 걸음 한 걸음 찍히는 내 발자국.


오늘은 속도를 내지 않기로 한다.
도심 한복판을 달리지만,

마음은 1900년대 거리의 모던걸처럼
천천히, 계절의 결을 따라 시간의 결을 따라 발을 옮긴다.


대한문 앞을 지나 돌담길을 따라 달리고,

평성문을 지나 영국대사관 앞으로 오면

잠깐 덕수궁 안을 볼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


짧은 구간이지만,

덕수궁 안을 살짝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도 고마운 경험이다.

하긴 과거의 나는 어디 궁궐 담장을 뚫냐고

엄청 반대를 했었더랬다. 하하.


덕수궁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대한문으로 오면

약 1.1km

거리가 짧아 몇 바퀴 더 돌아야겠다.

제법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서, 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문득 생각한다.

덕수궁이 일제강점기에 훼철되지 않았으면

덕수궁 한 바퀴는 훨씬 더 길고 풍성했을지도 모르겠다.

덕수궁의 지금 모습이 본래 규모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을까 마음이 쓰인다.


덕수초등학교 앞에 복원 중인 선원전 영역이 완성되면,

지금보다 더 넓고 깊은 덕수궁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겠지.

그런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회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아직 약간은 쌀쌀한 공기,
봄빛이 가득한 덕수궁.


러닝은 오늘도
나를 지금 이 계절로, 이 공간으로 데려다준다.

덕수궁 석어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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