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시작을 달리다

청계천의 발원지를 찾아 달리는 문화유산러닝

by GoGo자형

청계천 시작을 달리다!

3월. 봄이 되어 파릇한 새순이 올라오고 겨울 동안 잠들었던 물소리가 마음에 와닿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이런 날씨엔 시원한 물소리와 푸른 잎을 보면서 달리면 더 상쾌할 것 같아요. 런인문화유산의 첫 개학! go go 자형과 함께 청계천의 시작을 달려보아요!


청계천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사실 청계천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해요. 청계천은 조선시대 지도에서부터 보입니다. 다음 지도를 한번 볼게요.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 아시죠? 김정호가 조선시대 한양을 그린 지도(수선전도)가 있는데 거기에 청계천이 딱! 보이네요. 지도상으로 보니 한양에서 청계천의 위치를 한눈에 알 수 있네요.

지도_1825_수선전도_서울역사박물관.jpg 수선전도(출처: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의 물은 어디서 왔을까?

청계천의 물은 북악산과 인왕산 인근에서 주로 내려옵니다. 그중 가장 큰 원류로 보는 것이 북악산과 인왕산의 연결되는 계곡지이고, 이름은 “백운동천”입니다. 우리는 “백운동천”이라고 쓰인 바위글자까지 달려볼 거예요.

백운동천바위글씨.jpg 청계천의 발원지 중 하나인 <백운동천>이라고 새겨진 바위 글씨(촬영:최자형)

조선시대 청계천

물은 산에서 내려오는데 그 아래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다 보니 청계천의 물이 그다지 깨끗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보면 청계천이 홍수가 나면 넘치고, 평상시에는 악취가 심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거든요. 아래 그림을 보면 영조임금 때에 청계천에 쌓인 흙과 오물 등을 걷어내는 준설 작업을 하는 모습이 나와있네요. 지속적으로 청계천을 관리했던 것 같아요.

준천시사열무도(서울대학교_규장각).jpg [영조가 하천 준설이 마무리된 청계천을 돌아보는 광경을 기록한 '준천시사열무도(濬川試射閱武圖)' 가운데 하나인 '수문상친림관역도(水門上親臨觀役圖)'의 모습. <서울대학교 규장각>


일제강점기 청계천

청계천의 오수와 하수, 이로 인한 악취는 해결해야 할 큰 숙제 중에 하나였습니다. 조선총독부에서는 청계천을 본류와 지류까지 모두 덮는 복개공사를 추진하는 계획을 수립을 했고, 일부 진행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하면서 한반도에서 일본은 철수하였고, 공사는 중단되었습니다.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곧이어 발생한 한국전쟁 이후 청계천 주변은 판자촌의 대명사가 되었어요. 한강에서부터 물을 따라 계속 달리다 용두역 인근을 지나다 보면 옛 판잣집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어요.


판자촌의 대명사 청계천

청계천변_판자집_철거당시_모습(1965년)(서울역사박물관).JPG.jpg 청계천 변에 들어선 무허가 판자촌의 모습(출처:서울역사박물관 소장)

1970년대 청계천 복개공사와 청계 고가도로 설치

일제가 시행하려다 만 청계천 정비는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어요. 천변 판잣집에 살던 사람들이 있어서 마냥 쉽지는 않았어요. 청계천의 상부를 콘크리트로 덮어서 주변 보도와 평평하게 만드는 복개공사가 195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공사는 약 20년간 진행되어 1976년에 마무리됩니다. 청계천을 콘크리트로 덮어서 도로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다리를 더 세워서 청계고가를 만들기도 하였죠.

청계천_고가도로_연장공사.jpg 청계고가 공사 중의 모습(출처:서울역사박물관 소장)


2000년대 초반 청계천 복원공사

청계천을 콘크리트로 덮었지만 청계천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어요. 도로 아래 청계천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생긴 곰팡이와 오물로 악취가 진동하고, 심각하게 오염이 되었습니다. 오염된 가스가 청계도로 하부 공간에 가득 쌓이게 되고 시민들의 안전도 위험한 상황이었죠. 게다가, 청계고가 역시 안전 상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어요. 이명박대통령이 서울시장이 되면서 청계천을 다시 복원한다는 공약을 내걸고 본격적으로 청계천 복원공사가 추진하였고, 지금은 서울 한가운데서 물을 느낄 수 있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죠. 가끔 발 담그고 맥주 한 캔 마시고 싶은 마음인데 음주는 안된다고 합니다.


청계천의 문화유산

[오간수문]

청계천의 물이 외부로 나가도록 만든 5개의 수문입니다. 도성 내 물길을 관리하고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는데요. 현재는 청계천 벽면을 따라 재현(?)되어 있어요.

KakaoTalk_20250316_234453225.jpg 청계천 벽면에 재현된 오간수문(촬영:최자형)

[수표교]

조선시대 때 청계천이 자꾸 범람하니까 세종이 강물이 불어나는 정도를 알 수 있도록 수표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재료가 나무다 보니 썩게 되어서 나중에 돌로 다시 수표를 만들었고, 수표의 옆에 만들어진 다리가 수표교입니다.

수표와_수표교(서울특별시).jpg.png 수표교 옛 사진(출처:서울특별시)

[광통교]

광통교에 사용된 이 석재들은 첨부터 광통교를 만들기 위해 준비된 돌들이 아니었어요. 이 돌들은 바로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의 무덤에 사용되었던 돌입니다.

KakaoTalk_20250316_234104434_01.jpg (1).png 청계천 내 광통교 원경(촬영:최자형)
KakaoTalk_20250316_234104434_03 (1).jpg 광통교 석재(촬영:최자형)


청계천 이젠 조금 알 것 같아.

어때요? 2시간 남짓 한강에서부터 청계천의 발원지까지 달리고 걸어보았는데요. 청계천과 조금은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되셨을까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유홍준 교수가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런인문화유산과 함께 한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청계천에 대해 조금 더 알고, 눈여겨보고,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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