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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영어를 해야 하는 이유

읽기 위주의 영어교육의 문제


어릴 때 외국으로 나가 한국말보다 영어가 익숙한 두 명의 조카가 있다. 큰 녀석은 내내 대만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대학을 갔고, 작은 녀석도 캐나다로 대학을 진학했다가 군대로 인해 들어왔지만 제대하고도 코로나로 인해 국내에 묶여있다. 큰 조카도 결국 코로나로 인해 최근 한국에 들어왔다.


딱히 할 것도 없는 두 아이에게 아르바이트 겸해서 큰 조카는 근처 사는 사촌동생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로 했고, 작은 조카는 내게 영어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우리 두 아이는 이미 집에서 엄마표 영어를 하고 있고, 원어민 수업을 하고 있으므로 필요치 않았다.



엄마표 영어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의 영어실력은 바닥이었다. 당연히 듣지도 못했고, 말할 수 없었고, 읽을 수는 있었으나 정확한 뜻은 알지 못했으며, 생소한 단어는 발음을 내기도 어려웠다. (특히 복모음) 지금 생각해보면 가진 것도 없이 마냥 용감했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내 엄마표 영어의 목표는 아주 소박했는데, 단지 아이가 단어 몇 개라도 먼저 알고 가면 수업시간에 덜 힘들지 않을까 정도였다.


엄마표 영어 5년 동안 진행하면서 아이들 들을 때 같이 옆에서 듣다 보니 익숙한 문장과 단어는 잘 들린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제법 원어민이 하는 말이 대략 무슨 뜻인지는 알게 되었다. 여전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읽는 것도 해석 능력도 시간이 갈수록 늘어갔다. 가끔은 어른인 나조차도 이런 발전이 있는데 하물며 언어천재라는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게 될까 싶기도 했다.


조카와의 첫 수업에서 조카는 내게 '듣기'는 잘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상대의 말은 알아듣는데, 그에 대한 대답은 유아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조카아이가  내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은 이것이었다.


"이모, 이모가 말한 것은 문법상으로는 맞아. 하지만 원어민들은 그렇게 안 쓰지. 뭔가 이상하니까. 그렇게 쓰는 경우는 없어."


영어는 참 어렵다. 단어를 안다고, 단지 문장만 만들 줄 안다고,  '제대로 소통'하는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엄마표 영어의 목표가 어디까지인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문법에는 맞지만, 그 나라 사람들이 쓰지 않는 영어는 가르치고 싶지 않다.


국내 전집보다 원서를, 국내 시리즈물에 영어 더빙을 붙인 것보다는 영미권 TV시리즈를 선호하는 이유도  사실 이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이 쓰는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 나라의 문화까지 흡수하는 과정이니 단지 영어로 되어 있다고 해서 다 좋은 영상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수준의 영상을 보고 그 소리를 듣고,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의 생생한 표현을 외워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인풋을 쌓는 과정, 그것이 엄마표 영어이고, 그것은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닌 오랜 인풋만이 가능한 일이다.


조카의 루션은 이랬다. 문법공부가 내게는 필요하다는 것과 미드를 계속 시청할 것, 그리고 이디엄을 공부할 것  이 세 가지였다. 미드를 시청하는 것은 실생활에 자주 쓰이는 표현을 그대로 익히는 과정이었고, 이디엄은 그런 미드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미리 배워서 알아둬야 하고 아는 만큼 들린다는 것이다.



※이디엄이란?  둘 이상의 단어들이 합쳐져 그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뜻 외에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말들 (관용구, 숙어, 관용어)



아이들이 엄마표 영어를 하고 있으므로, 나는 아이들이 읽는 책들을 한 번씩 읽어 볼 때가 있다. 실제로 이런 이디엄은 챕터북에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고로, 각각의 단어를 조합하여 간신히 문장을 해석하기에 급급한 아이들은 챕터 정도만 가도 남들이 웃을 때 웃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리더스나 주야장천 읽혀서 단순 문장 해석만 가르친다고 영어책이 줄줄 읽어지는 것이 아니란 얘기이다.


아이들은 영어 그림책에서, 디브이디를 통해서 다양한 표현들을 경험한다. 단어를 습득하는 것은 물론 에피소드 안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지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문화까지 습득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영어를 배울 때에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쓰거나 만든 것이 정석이다.



1학년부터 이모표 영어로 영어를 함께한 10살 조카가 있다. 읽기를 가르치고 난 후, 집중 듣기 방법을 알려준 후,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근 1년 정도 집에서 집중 듣기를 한 결과 이 아이의 리딩 능력은 향상되었다. 물론 아는 단어도 많아졌다. 미국에서 들어온 조카 J는 그 아이를 가르치기로 했다.


J는 수업을 마치고는 내게 말했다.

"이모, 난 너무 혼란스러워. 읽을 수 있고, 심지어 단어 하나하나를 짚으면 그 단어의 의미는 아는데, 왜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여러 가지 문장이 있으면, 주르륵 읽다 보면 위에 읽었던 내용은 다 까먹고, 마지막 문장만 기억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어. 게다가 설명하기 난감한 걸 물어보기도 해. 예를 들면, a, the 같은 경우는 미국인들은 그냥 쓰는 건데. 그걸 애한테 어떻게 설명을 해? 어쨌든 굳이 설명을 하긴 했는데, 그걸 얘가 알아들었을까는 잘 모르겠어."


나는 J의 말에 필히 엄마표 영어를 시켜야 하는 이유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10살짜리 조카를 이모표 영어로 시키면서 할 수 없었던 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영어 그림책 읽어주기였고, 또 하나는 수준별 디브이디를 틀어주는 일과 소리 노출이었다. 그것은 일주일 겨우 두 시간이라는 한정적인 시간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만나서 리딩만 연습시키기에도 바빴고, 집중 듣기를 통해서 집에서도 혼자 할 수 있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중 듣기를 통해서 읽기 능력은 향상되었으나, 문제는 제대로 독해가 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읽어내는 속도만 늘어났다는 것 문제였다. 게다가 직관적인 단어들은  습득이 되었지만 그 외에 유추를 해야 하는 단어나 문장들은 10살 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a.. the.. an 등등, 이런 것들에 대한 궁금증도 마찬가지다.

엄마표 영어를 오래 한 아이들은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건 원래 그런 거니까. 그렇게 쓰지 않으면 어색하다고 느끼니까. 한국어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그만큼 익숙할 때까지 들었고, 보았고, 읽었으므로...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영어책을 빌리러 온 조카에게 몇 권의 책을 권해주며 불현듯 이 아이가 책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한 페이지의 내용을 읽어주고, 내용을 물어보았다.


Everyday the ant looked for food.


"Everyday는 매일이란 뜻이고, ant는 개미고, food는 음식이니까 이 얘기는 '매일 개미는 음식을 보았어요' 아니에요?"


look for :  찾다, 구하다. 기대하다.


혼자서 집중 듣기를 했던 아이는 'Look'이라는 뜻을 동사의 원형인 '보다, 바라보다'라는 의미로만 인식을 하고, 다른 형태로의 변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전체적인 흐름은 파악할 수 있었을 지라도 정확한 표현을 인지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만약 이 아이가 영어 그림책을 통해서 다양한 Look 동사의 쓰임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영어로 된 동영상을 보거나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런 부분은 충분히 개선이 된다.


각각의 문장들을 일일이 한국말로 해석한 후 전체의 내용을 파악하는 방식은 우리가 어렸을 때 배웠던 방식이다.(여전히 이런 학원들이 있다) 만약 아이가 여전히 그런 식의 리딩 연습을 하고 있다면 제대로 읽기가 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없다. 엄마표 영어를 오랫동안 하게 되면 읽는 순간 그것이 한글 문장처럼 바로 이해가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알고 있는 단어가 많아야 함은 물론  다양한 형태의 문장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충족시키는 행위는 영어 그림책을 다독하여 다양한 문장 경험을 쌓아주는 것이다.  그런데 10살 조카에게는 그 부분을 충족시켜주지 않았으니, 알고 있는 단어는 많았으나 그것을 연결하는 방법은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것이다.


이 아이에게 집중 듣기는 단순히 읽기 연습용에 지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단어를 쌓는 정도의 인풋은 있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의 결과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고로 진짜 실력이 들통이 나고 만 것이다. 스스로도 주르륵 읽을 수 있으니 영어를 잘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3학년 교과의 영어 수준은 그야말로 베이비 수준이라 할 만큼 쉬우니, 심지어 하품이 나온다는 얘기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이런 사례는 많을 것이라고 본다. 읽는 것, 읽는 행위에만 집중해서 아이를 끌고 가는 엄마표 영어에서 범하기 가장 쉬운 실수일 테니까. 내용을 알고 이해하며 읽는 것인지 소리만 만들어서 내는 것인지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관건이나, 지금껏 제대로 인풋을 쌓아준 경험이 없다면(그림책, 디브이디 등) 어차피 까 봐야 속이 비어있을 가능성이 자명하다.


그림책을 읽어주기는 힘들고, 집중 듣기를 끌고 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워서 선택한 방법이니, 속이 비어있더라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책들에서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 그림책 읽기 이건만, 쉬운 것만 골라해 놓고 똑같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겠는가.



이전 05화 언어 습득의 비법은 '반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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