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스를 기억하며
퇴근 후 집에 들어와 밥을 욱여먹고 이불속에 누워 노래를 듣던 중이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바람바람바람, 허공..
조용필의 꿈으로 시작된 알고리즘은 연달아 이런 종류의 노래를 물고 왔다.
나를 이불속으로 이불속으로 더 파고들게 만드는 노래들.
새해의 겨우 넷째 날을 그냥 이대로 로그아웃하고 내일을 맞이하는 게 낫겠다 생각하던 그 순간,
스피커의 노래가 멈추고 곧바로 휴대폰 진동이 소리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액정에 뜬 이름은 본부장님. 한 달쯤 전에 퇴임한 나의 보스였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그의 첫마디였다.
나는 그 뒤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회사에 두고 온 물건이 있나, 퇴직금 정산과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나.
하지만 그런 말은 없었다.
그게 다였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순간 당황한 나는, 뒤늦은 새해 인사를 속사포같이 화답했다.
보스와의 통화는 매우 짧고 어색했지만
통화를 마치고 나는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다.
잠들어 사라질뻔한 시간을 나를 깨운 그를 위해, 그를 오래도록 기억하는데 쓰고 싶어서.
우습게도 나는, 그가 퇴임하는 날 그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다음날이면 사내 인트라넷에서 그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자각한 날, 나는 그날에서야 그와 손톱 끝이라도 닿아 있고 싶어서 그의 전화번호를 저장한 것이었다.
아쉬움과 존경심이 뒤섞여 뒤늦게라도 이 인연의 실을 붙잡고 싶었던 것이었다.
3년간 보스를 모시면서 초반에 단 둘이 밥을 먹을 기회(?)가 몇차례 있었다.
점심 약속이 없던 날, 좀 이따 샌드위치나 사 먹어야지, 하면서 사무실에 앉아 있었는데
마침 약속 없으셨던 보스는 내게 "점심 같이 먹으러 가자." 했다.
단 둘이 먹을 불편한 식사와 어색한 정적에 관해 생각을 해 보기도 전에 내 입은 본능적으로 이를 회피하는 대답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저 지금 나가려고 했어요."
아마 몇 차례 이런 적이 더 있었던 것 같다. 이후 보스는 더 이상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퇴임하는 날 놓쳐버린 점심들을 후회했다.
하필 나는 왜 그 즈음에 머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져서 작은 불편함 정도를 참으려 하지 않았을까.
입사 초에는 상사 건 선배건 가리지 않고 하릴없는 웃음과 실속 없는 이야기를 쉬지 않고 했던 내가
하필 왜 밥 사 주겠다 먼저 말하는 저 높디높은 보스가 귀찮아질만큼 대범 해졌던 걸까.
나의 보스는 경남의 작은 어촌마을 출신이었는데 간혹 여럿이서 밥 먹는 자리에서 고향 얘기를 해 주셨다.
낚시를 좋아하는 팀장님이나, 같은 경남 출신의 선배님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할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산골 출신에다가 남에게 관심 없는 기질로 인해 보스에 관해 많이 알지도 못했다. 대화를 이어갈 소재도 부족하고, 타인에 대한 관심도 없는 나를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였던 것 같다. 나에 대한 자신감 부족. 그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의 보스는 소탈한데 카리스마 있는 성품이었다.
알아야 할 만큼만 질문했고, 빠르고 적절하게 판단을 내렸다. 몇 년간의 회사생활 동안, 이렇게 일하기 수월했던 적은 없었다.
그는 아침부터 이어지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매일 소화했다. 보스의 방 앞에 있는 의자에는 그를 만나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안에서 찾는 사람보다 밖에서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모르긴 몰라도 퇴근 후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낮에 본 사람들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낮에는 차 마시며, 밤에는 술 마시며 사람들을 만나는 그를 보며 사람들 만나는 것을 피곤하게 여기는 나는 속으로 '나는 돈 주고 시켜도 못하겠다.' 싶었었다.
또 나의 보스는 아는 것이 많았고, 많은 지식들을 짧고 명료하게 전달할 줄 알았다.
우리끼리 k팝 열풍에 대해 얼마나 커질까, 혹은 언제 식을까 얘기하고 있는데 보스가 18세기 일본 미술이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우키요에 등 에도시대의 일본 미술이 반 고흐의 그림에 녹아 있다며 앞으로 우리나라가 18세기 일본처럼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시절 일본을 동경하고 일본에 매료됐던 유럽인들처럼 한국의 위상이 그렇게 될 거라고, 상상 해 본적 도 없는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 넣어 주었다.
보스는 기사나 비서도 직원들과 똑같이 대했고, 경조사는 물론 명절마다 주변사람들에게 사비로 상품권을 하사했다.
젊었을 때부터 함께 일 해 온 연예인들, 매니저들, 선후배들이 모두 보스를 따랐고 심지어 회사 앞 식당 주인도 보스를 좋아했다. 보스는 지위고하 막론하고 모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했던 일화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보스의 이러한 자질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으리라 생각된다.
나이가 오십이 넘은 보스는 주위 사람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했다며 아직 고향에 계신 여든 줄의 그의 어머니가 음식들을 보내올 때마다 우리 부서 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하루는 회사 근처 식당에 모여서 보스의 어머니가 고속버스로 올려주신 싱싱한 키조개 샤부샤부를 배가 터지도록 먹었었다. 잘 먹는단 얘기를 그의 어머니가 들으셨던지 며칠 후 키조개가 또 올라왔다.
이번엔 소분해서 직원들 집에 들려 보냈다.
나는 그날 나의 보스가 그랬듯이 동생들을 불러 모아 샤부샤부를 해 먹였다.
그의 노모는 아셨을까. 당신의 정을 이토록 많은 사람이 나눠 먹었다는 것을.
몇 달 전. 보스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빈소는 그의 고향, 경남의 바닷가 마을에 차려졌다고 했다.
나는 조의금만 대신했지만, 직접 조문을 다녀오신 팀장님의 말에 따르면 조화를 놓아 둘 자리가 부족해서 리본만 뜯어 벽에 붙였는데, 사방의 벽이 꽉 찼더랬다.
그에게 밥톨 하나라도 얻어먹은 사람들이 그리도 많았던 것이었다.
나의 보스는 가오도 대단했다.
잘 못하는 술이 몇 잔 들어가면, 시발 시발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지만 나는 그 시발이 참 멋있게 들렸다.
어느새부턴가 나는 그가 시발이라 하는 건, 시발할 만한 일이었으리라 생각했다.
퇴임을 앞둔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른 본부 보스가 퇴직금에 영향을 준다며 사장에게 퇴임일자를 며칠만 미뤄줄 수 없냐고 물었다고 했다.
우리 보스는 동생 같았으면 한대 쥐어 패고 싶었다고 했다.
피식하고 웃으면서도 나는 그가 내 보스임에 자랑스러웠다.
퇴직금 운운하는 다른 보스가 내 보스였다면, 아마 난 이런 글을 쓸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
허세는 끔찍이도 싫지만, 보스의 가오는 이리도 멋있게 느껴졌다.
나의 보스는 회사를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퇴임 의사에 대해 몇 번 재고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는 "여기 계속 있으면 근손실 날 거 같아요." 하며 고사했다고 한다. 안정적인 우리 회사에 있다보면 도전도 변화도 귀찮아질까봐 그는 뜨뜻한 구들방 대신 눈비 내리는 마당으로 걸어나간 것이다.
그리고 조촐한 짐만 챙겨서 회사를 떠났다.
그의 방에는 책이 수없이 많았는데, "책 가지고 오면 와이프한테 혼난다." 라며 모두 두고 떠났다.
나의 보스는 이렇게 이별도 새로운 시작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육십을 코 앞에 둔 사람이 이렇게 겁 없을 수 있을까.
생뚱맞게도 아주 예전에 읽었던 '남자의 향기'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대략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혁수'였다는 것과 밑바닥 인생이었던 그가 조폭 두목이 되기까지의 이야기 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읽은 책 제목이 아직도 기억날 정도로 혁수는 매우 멋있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었고, 그때 난 남자의 향기가 이런 것이구나 아득하게 느꼈었다.
그리고 오늘 나의 보스의 전화를 받고 다시 카리스마에 대해 생각한다.
나같이 말단 부하에게까지 먼저, 그것도 손수 전화로 새해 덕담을 건네는 그.
그가 혁수였다면, 나 역시 그를 위해 목숨 바치는 그의 부하가 되었을 것 같다.
나의 보스가 조폭이 아닌 것에 감사하며, 또 그의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내며 나는 그의 카리스마를 오래오래 기억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