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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Nov 18. 2024

어떤 회의

   

“오시느라고 고생들 하셨어요. 다들 직장 일로 바쁘실 텐데 시간에 맞게 와 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님들께서 다 아시겠지만 이번에 우리 반 학교폭력 관련해서 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혹시 서로 나누실 말이 있을까 해서 모이신 것이니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셨으면 해요. 

먼저 제가 간단히 사건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민희와 수연이, 정애, 경미는 우리 반에서 늘 같이 다니는 친구들입니다. 특히 민희와 수연이는 중학교도 같은 곳을 나와서 아주 친하고요. 이번에 고등학교에 와서도 친하게 지냈는데 여름 방학 이후에 서로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그건 다 아시다시피 경미 남자친구와 민희가 친하게 지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경미와 민희 사이가 어색해지자 수연이, 정애, 경미가 연이어서 민희하고 사이가 멀어지게 된 거죠. 친하게 지내던 사이에 멀어지게 되니 민희가 너무 속상해서 세 명에게 카톡방에서 욕을 하게 됐고 그 일로 관계가 더 악화되었어요. 그러다 지난 수요일 점심시간에 세 명과 이야기를 하던 민희가 충격을 받아 쓰러지면서 앞니가 세 개 부러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민희 어머님이 학폭 사건으로 신고하시게 된 겁니다.”



“선생님, 말씀 중에, 아 저는 경미 엄마입니다. 경미 남자친구하고 민희가 친해지게 되어서 이 일이 벌어진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그거는 진짜 오해예요. 경미는 그 남자애랑 친하게 지낸 적이 없어요. 우리 경미는 제가 잘 알아요. 애가 어려서부터 얼마나 깔끔했는데요. 그 남자애가 하도 우리 경미에게 들이대서 몇 번 만나준 게 다랍니다. 그런데 고작 몇 번 만난 애랑 민희가 친하게 지낸다고 애들 셋이 다 민희랑 사이가 멀어질 수 있나요? 저는 그게 일단 이해가 안 가고요. 혹시 민희에게 무슨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것에서 생긴 열등감 같은 거 말이죠.”



“참나. 경미 어머니 입이 뚫렸다고 아무 말이나 막 하시면 돼요?. 지금 경미 엄마 말은 우리 애가 아주 이상하고 문제가 있다는 말인데,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애를 우리 민희가 꼬리 쳐서 이 사달이 났다는 말인가요?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친하게 지내던 애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서로 쌩까니 민희 입장에선 하늘이 무너지는 거죠. 생각해 보세요? 친한 친구들이 갑자기 쌩하게 안면을 바꾸는데 어느 애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요? 특히 수연이는 중학교 때부터 우리 집까지 오가던 친한 사인데, 믿었던 수연이도 그 애들하고 한패가 되니 선생님 같으면 어떤 기분이 드시겠어요? 어쨌든 이번 일에 최대 피해자는 우리 민희예요. 충격에 넘어져서 이가 다 나갔는데 여자애에게 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죠? 그것도 앞니예요. 앞니가 세 대나 부러져서 임플란트해야 한다고요.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서로 발뺌을 하실 거예요?”



“민희 어머니. 팩트만 말씀하시죠. 아니 막말로, 우리 애들이 민희를 떠밀기라도 했나요? 진짜 떠밀기라도 했으면 경찰에 바로 신고하셨겠네요? 점심 먹고 민희가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모여서 얘기하던 중에 갑자기 이마를 잡고 비틀거리더니 넘어졌다는 거예요. 자기 혼자. 누가 옆에서 민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넘어졌다는 거죠. 근데 넘어지는 방향이 하필 앞으로 넘어졌으니 앞니가 나가게 된 거고요. 아니, 애들이 민희가 넘어질 줄 알기나 했겠어요? 예고하고 넘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책임지라는 거죠? 우리 수연이가 그러는데 자기들도 너무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고 하더군요. 저도 이 일이 일어나고 우리 애한테 친구끼리 친하게 지내지 그랬냐고 야단도 쳤어요. 근데 수연이도 중학교 때 민희하고 친하게 지내면서 갈등이 있었대요. 민희가 성격이 강해서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잘 삐져서 맞춰주고 하다 보니 그게 습관이 된 것 같아서 자기도 이번 일에 민희 편에 서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늘 지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애한테 친구들이 언제까지 비위를 맞춰야 합니까?”



“어머니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삼 대 일이잖아요. 그럼, 우리 민희가 거짓말로 넘어졌다는 거예요? 아니, 어느 병신이 자기가 넘어지면 이빨이 다 나갈지도 모르는데 쇼를 합니까? 저는 이번 일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어요. 모든 원인이 아이들이 단체로 민희 한 명을 따돌려서 벌어진 일이고 민희는 그 일의 희생자라구요. 이건 애들이 단체로 한 명을 왕따시키고 정신적, 물리적으로 폭력을 가한 거라구요.”



“저는 정애 엄마예요. 일단 민희 앞니가 세 개나 부러져서 어머니가 속상하신 건 알겠어요. 우리 모두 딸을 키우니 그 입장, 왜 모르겠어요? 하지만 인과 관계는 분명히 해야 하는 게 맞아요. 우리 애들이 민희를 따돌렸다는 증거가 있나요? 우리도 학창 시절 다 지내봐서 알잖아요? 친구끼리 가깝다가 멀어지기도 하는 게 일상적인 일이죠. 천년만년 친하게 지내라는 법이 어디 있어요? 애들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하는 게 다반사지. 단, 도의적으로 민희도 우리 애들하고 친하게 지냈었으니 치료비라도 좀 보탰으면 해요. 물론 민희 어머니가 학폭 신고를 철회하시는 게 전제 조건이긴 하지만요. 생각해 보세요. 민희가 쓰러져 다친 건 맞지만 그것도 역으로 생각해 보면 얼마나 성격이 강하면 그놈의 분을 못 참아서 그런 일이 생기냐고요? 민희도 고칠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죠.”



“어머 어머, 진짜 나오는 대로 지껄이면 다 말인 줄 아시네. 정애 어머니 진짜 웃기신다. 아니, 우리가 치료비가 없어서 이러는 줄 아세요? 우리, 먹고 살 만큼 돈 있어요. 궁짜 들린 집이 아니라고요. 저는 담임 선생님이 이런 자리를 마련하셨다길래 어머니들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그래, 서로 애 키우는 처지에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하며 그냥 넘어가려고 했어요. 사실 이 자리도 어머니들이 우리한테 사과하러 만든 자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 민희 아빠가 이참에 혼쭐을 내야 한다고 했어도 제가 말렸거든요. 오늘 아침에도 변호사 찾아간다는 걸 겨우 말리고 왔는데 근데 이건 아니네요. 아예 작당하셔서 우리 민희를 나쁜 애로 몰아가시니 저도 더는 참을 수가 없네요. 그리고 담임 선생님한테도 서운한 게 많아요. 아무리 점심시간이라지만 애가 다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시간이 5분 이상 되었는데 선생님은 대체 어디에 계셨던 거죠? 애들이 그 난리가 났는데 담임이나 학교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게 저는 너무 화가 나요. 아이들이 저한테 전화하고 제가 119를 불렀으니 그나마 빨리 수습이 되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더 큰 일이 생길 뻔했잖아요. 넘어지다 머리를 다쳤으면 선생님이 다 책임질 수 있어요?”


“네

어머니. 담임으로서 빨리 파악 못 한 건 죄송해요. 근데 수요일은 제 시간표가 오전에만 3시간, 1, 2, 4 교시가 있는 날이에요. 점심시간에 급식 지도하고 식사를 마치니 5교시 시작할 무렵이었어요. 사실, 점심시간이라고 담임도 쉬거나 노는 건 아니거든요. 밀린 상담도 해야 하고 그 사이에 회의도 있고 저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나름대로 우리 반을 위해 노력하는데 어머님이 그리 말씀하시면 저도 좀 서운하네요.”



“아니 막말로 담임이 무슨 잘못이랍니까. 민희 어머니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애들이 담임 선생님 좋다고 얼마나 칭찬하는데 모르셨어요? 솔직히 아이들이 민희랑 멀어진 건 민희의 강한 성격이 한몫했다고 봐요. 우리 정애가 민희가 다녔던 중학교에 아는 친구가 있었는데 민희는 중학교 때도 그렇게 기절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그랬대요. 중학교 때도 자주 쓰러지고 했다는데 어머닌 모르셨어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민희가 그렇게 쓰러지기를 습관처럼 했다면 이번에도 아마 애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연출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요. 그런데 쓰러지는 방향을 옆으로 해야 했는데 의도치 않게 앞으로 넘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지 뭐예요? ”



“아니, 이 여편네가 보자 보자 하니 말이면 다 하는 줄 알아? 지네 셋이 애 하나를 왕따시켜 놓고 뭐가 어째? 애가 계획적으로 넘어졌다고? 나, 이거 절대 그냥 못 넘어가. 선생님, 학폭으로 신고되었죠? 일정 빨리 잡아주시고 저 더는 이 같잖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말이 돼야지. 아니 남의 애를 완전 병신을 만들어도 유분수지. 이런 회의에 나오라고 해서 나온 내가 상등신이네요.”



“누가 계획적이라고 했어요?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니 정황상 그러지 않았을까 추리를 해 보는 거죠. 그것도 안 됩니까? 여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기 생각도 자기 마음대로 얘기 못 해요? 말도 안 되네 진짜. 보자 보자 하니.”



“됐어요. 저도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모든 걸 법대로 하겠어요. 누구 잘못인지 어디 잘잘못을 가려봅시다. 나 원 기막혀서. 애초에 여길 오는 게 아니었어요. 이건 회의가 아니라 자기들 변명하는 시간 아냐. 더 듣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 저 분명히 얘기합니다. 오늘 회의 내용 다 포함해서 학폭 서류에 올려주세요. 학교의 방임과 아이들의 따돌림. 이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봐요. 더는 이런 모임에 나오지 않을 거예요. 상식이 통하지 않는데 이런 회의가 무슨 소용입니까? 각자 자기들 편한 대로 말하고 증거나 감추기 급급하고 말이죠. ”     


“애초에 이런 말이 먹혔다면 민희가 다치지도 않았겠죠. 근데 어머니, 민희도 한 성격 한다는데 정말 모르셨어요? 민희가 앞으로도 사회생활 잘하려면 자기 위주의 성격부터 고쳐야 한다고 봐요. 친구들이 무슨 지 종인가요? 지 뜻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하니 그걸 누가 좋아해요?”   


  

“끝까지 우리 민희 탓만 하시네요? 어디 법정에서도 그게 통하는지 똑똑히 볼 거예요. 저, 인제 그만 가렵니다. 오늘 여기서 받은 수모, 나 못 참아요. 일단 우리 애가 다쳤잖아요? 애가 다친 게 문제고 애가 앞니 세 개가 다 나가서 얼굴이 말이 아닌데 같은 부모란 것들이 이런 말만 하고 있어요? 이게 말이 되냐고요? 선생님한테도 저 유감이에요. 선생님도 진짜 똑바로 처신해 주세요. 누가 잘못했는지 정확히 가리고 중간에서 우왕좌왕하지 말고요. 아시겠어요?”     


민희 어머니의 퇴장으로 회의는 끝났다. 그러나 이후에도 회의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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