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1년, 처음으로 아들의 생각을 들은 날
그렇게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선생님께도 말을 안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달리, 놀이를 통한 상담은 아이의 닫혀있는 마음을 열어주었다. 아주 추웠던 때였는데 일주일에 두 번 학교가 끝나고 센터에 가는 길 아이랑 참 많은 얘기를 했다. 학교 친구 중에 맘에 드는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 선생님은 다정하지만 칭찬에는 인색한 것 같다는 이야기. 공부를 잘하고 싶지만 문제집은 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오랜만에 아이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상담을 하면서 내가 몰랐던 아이의 감정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괜찮아 보이던 아이는 심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고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나 감정이 소화된 것은 아니며, 사랑하는 아빠가 갑자기 사라진적 있기 때문에 엄마도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엄마말을 잘 듣고 착한 아들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도 엄마말을 안 듣고 동생들은 맨날 싸운다고. 아무래도 엄마가 곧 사라질 수도 있겠다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제일 궁금했던 이혼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 없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을 듣는 건 약 한 달간의 상담을 진행한 후였다.
상담을 마치고 온 어느 날 저녁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여유롭던 시간에 큰애가 말했다.
- 엄마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엄마가 해줬던 설명을 다 이해했어요. 엄마와 아빠가 싸운 거랑 화해를 하지 못했다는 거,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다 같이 모여 살지 않는다는 거.
우리도 맨날 엄마아빠가 싸우는 것보단 지금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난 화가 나요. 우리한테는 항상 싸우지 말라고 하고 싸우면 화해하라고 해놓고선 왜 어른인 엄마아빠는 싸우고 화해하지 않아요?
말문이 턱 막혔다.
- 미안해, 살다 보니 엄마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는데 엄마에게 이번일이 그랬어. 네가 이해할 수 있게 공감할 수 있게 설명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전부 엄마 잘못이야.
자녀가 있는 가정의 이혼은 쉽지 않다. 어떤 이혼이 쉽겠냐마는 내 인생 중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었다. 이혼을 하기 전 엄청 많은 고민을 하고 머릿속으로 이혼을 했다가 화해를 했다가 다시 싸우는 걸 반복했다. 고민은 끝났어! 고고!!라는 시점에 결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전에선 몇 년에 걸쳐서 했던 고민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었다. 차라리 그저 아이처럼 투정 부리고 떼를 부렸으면 나에게는 더 쉬웠으리라. 내 작은 아이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생각이 자라 버려 내가 꿈에도 생각 못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난 너무 당황해서 미안하다 사과하고 같은 설명을 반복해서 하고 자리를 피했다. 또 비겁했다. 이혼을 하고 나서 난 아이들에게 자주 비겁한 엄마가 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엄마의 간장종지만큼 작은 속보다 몇 배나 큰 그릇의 마음을 가지고 나를 보듬는다. 특히 큰아이는 정말 큰 그릇의 대인배였다.
그 후 또 다른 날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는 시간에(우린 자꾸 저녁시간에 뭔가 생긴다.) 6살 둘째가 엄마 왜 아빤 안 와?라는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6살이 알아듣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큰애가 소시지를 먹으며 담담히 말한다.
- 엄마 아빤 이혼했어. 작년에 우리 자는 동안 엄마아빠랑 시끄럽게 싸웠던 날 기억하지? 그때 싸우고 화해를 못하고 따로 살기로 했대. 근데 걱정하지 마, 우린 주말에 아빠 쉬는 날마다 아빠를 만날 수 있고 함께 살지 않지만 아빠는 우리 아빠야. 그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엄마 내 말이 맞지?
- 아 그랬구나, 알겠어.
9살이 설명했고 6살이 알아들었다. 37살 엄마는 말문이 또 막혔다. 그러고 보면 우리 4 식구 중에 내가 제일 말을 못 하나 보다. 말문은 나만 막힌다.
그래 너는 그렇게 소화시켰구나, 엄마가 말해준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소화시켰어. 정말 감사하다. 난 복 받은 엄마다!!
한차례 폭풍 전야 같던 시간과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거친 후 아이들과 나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