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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씨 Mar 29. 2023

나는 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죽고 싶던 어느 밤 갑자기 깨달은 나의 진심

나는 술을 좋아한다.

시원한 맥주도 좋고, 달큼하게 넘어가는 소주도 좋다. 달달한 하이볼도, 향긋한 고량주도 너무너무 좋아한다.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것도 좋고, 멋진 어른들과 함께 마시는 술도 좋다. 제일 좋아하는 건 조용히 가만히 마시는 혼술이다. 그리고 취해서 팔랑팔랑 흔들리는 나의 눈에 담기는 모든 것과 움직임, 모든 발걸음이 다 좋다.


하지만 나는 이혼 후 술을 안 마셨다. 끊었다기 보단 많이, 아주 많이 줄였다.

술을 마시면 괜히 다운되는 기분에 혹시라도 아이들 앞에서 추태라도 부릴까, 그렇잖아도 내 걱정 많은 지인들에게 전화로 주정이라도 부릴까 싶어서 좋아하던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사실은 술을 마시고 깨어있을 누군가를 붙잡고 어떤 말이라도 떠들고 싶었던 날에 누를 전화번호가 없기도 했다. 그게 너무 서러워서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혹시라도 피곤한 일상에 맥주라도 한 캔 마시고 싶던 날에도 우울한 마음이 생겨난 날엔 처다도 보지 않았다.

재미없고 신나지 않은 일상에 유일하게 숨 쉴 틈이 되어주던 맛있고 재미난 술 한잔이 사라지니 마음속의 우울함이 쌓이고 쌓여서 곧 터져나갈 풍선같이 팽팽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루에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이 힘듦과 괴로움은 내가 죽어야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멀쩡히 밥을 먹다가도,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아닌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는 것에 대한 공포보다 내가 없는 세상에 남겨질 아이들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어쩌질 못하던 시간이었다.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온 가족 동반 자살 같은 거는 마지막까지 이기적일 순 없다는 나의 양심 덕에 참아졌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참아줄 수가 없어 또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도 매일과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6시 반쯤 눈이 떠졌고, 삼형제의 아침을 준비했다. 알람소리에 맞춰 삼형제를 깨우고 어제와 비슷한 정도의 잔소리를 쏟아내고서야 삼형제는 등교를 했고 난 출근을 했다. 적당히 바빴던 오전 업무와 그저 그랬던 점심식사, 오후 내내 이어지던 업무를 마치고 별일 없이 퇴근을 했다.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꺼내 별거 없는 저녁을 먹고 어제와 비슷하거나 혹은 몇 마디 더하는 잔소리로 삼형제의 하루를 마감하고 재웠다.

시끌벅적한 하루를 마감한 조용한 밤 가만히 앉아 있는 세상이 너무 조용했다. 이런 날엔 맥주라도 한잔 마시지 않으면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맥주를 마시다 보니 너무 자연스럽게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죽어야 모두가 다 편해질 것 같았다. 지금의 피곤함도 괴로움도 시끄러움도 모두 내가 죽어야 끝나겠구나 싶었다. 남겨질 사람들의 불행함은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명확한 결론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났다. 세상이 도대체 왜 이렇게 고단하고 피곤한지, 뭐가 이렇게 할게 많고 생각할게 많은지 왜 난 이런 생각들에 파묻혀 화를 내고 있는 건지 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눈물의 끝엔 하루종일 머릿속을 비워주지 않았던 내가 죽어야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진짜 죽는 거 말고는 답이 없는 건가 싶은 순간 나는 대체 왜 죽고 싶은 거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둥실 떠올랐다. 정말 느닷없이 자연스럽게. 내가 죽으면 다 편해지겠구나, 그런데 왜? 내 기억에 있는 어린 시절부터 40살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왜 죽어야 하지?라는 질문이 점점 커졌다.


- 아, 나 진짜 잘 살고 싶구나. 내가 진짜 잘 살고 싶은데 방법을 못 찾아서 자꾸 죽고 싶구나.


고작 맥주 한 캔에 취기가 돌았는지 아니면 나도 몰랐던 내 진심에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이 하염없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애들이 깰까 봐 숨죽여서 한참을 울었다. 숨죽여서 우는 걸론 답답한 마음이 해소가 되질 않았다.

모질게 뒤돌아서 나가던 전남편의 모습에도 몇 년을 고민한 이혼서류를 내고 온 밤에도, 마음이 무너지는 삼형제와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문 닫힌 작은방 구석에 앉아서 이불을 한 아름 끌어안고 목을 놓아 울었다. 엉엉 울고 있는 나 스스로가 민망할 때까지 울고 나니 모두 다 괜찮아졌다. <답답하던 머릿속이 맑아졌다.>라는 문장의 뜻이 단박에 이해가 될 정도로 마음이 맑아지고 소란스럽던 머릿속은 차분하고 조용해졌다.


내가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진심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맞이한 절망감이 그런 생각을 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인데 인생 처음으로 절망감을 느끼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직 시작도 못해본 청춘의 결론을 실패로 정해놓고 나니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도 잊었었나 보다. 해소도 해결도 되지 않는 문제들이 나 스스로 소화가 되지 않아서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나를 계속 사랑하며 잘 살고 싶어서 그렇게 아등바등 죽을힘을 다해서 살고 버텨내고 있었던 건가 보다.


우연한 순간 삶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정말 너무너무 힘들어서 아이고 죽겠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날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모든 순간이 버거운 날이 있다. 그런 날엔 나를 응원하는 말을 한다. 둘도 없이 사랑스러운 나를 위해 나를 응원하는 말을 한다. 오글 거리긴 하지만 네가 하지 않는다면 내가한다. 단순한 나에겐 꽤 잘 먹히는 해소법이 되었다.


- 아이고 오늘 참 잘 살았다!


이런 김새는 하루가 모여서 일상이 되고 있다.

전 직장 출근 첫날, 초면인 사수님과 퇴근길에 급 들어가 마셨던 맥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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