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혼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통화를 하는 친구가 묻는다.
- 혼자서 아등바등 애 셋을 어떻게 키우냐, 그러지 말고 전남편이랑 재결합하는 건 어때?
입 밖으로 실소가 터져 나온다.
사실 저 질문에 대답할 가치를 부여하고 싶지도 않은 심정이지만, 질문의 바탕에는 나에 대한 걱정이 깔려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답해야 한다. 다만 다시는 저런 질문을 내 앞에서 꺼낼 수 없도록, 본인이 하는 말이 얼마나 실례되는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명확하게 대답해주어야 한다.
- 오늘 아침으로 뭘 먹었길래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만 나를 걱정하는 너의 그 희한한 마음은 사양하겠어. 앞으론 부디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은 좀 하지 말아줄래?
라고 생각하지만 날 선 대답에 나를 걱정하는 고마운 마음을 상처 입힐 순 없으니 고민해 본다.
솔직히 생각해 보자, 10년 가까운 결혼생활동안 동안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고 달님보다 별님보다 귀하고 반짝거리는 삼형제가 내 품에 왔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아이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소중하지 않은 기억과 소중하지 않았던 때가 없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힘들었던 순간도, 잊고 싶고 괴로웠던 순간도 너무 많았다.
없는 집안끼리의 결혼으로 풍족하지 않은 생활이었고, 자존심 센 그 남자는 내 자존감 도둑일 뿐이었다. 그런 시간이 모여 나를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떠들기 좋아하던 내가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사람 만나는 게 불편해지고 혼자서 웅크리는 날들이 많아졌다. 세상 해맑아 푼수라는 말을 듣고 살던 내가 혀끝에 비수를 담고 공격을 담아 쏟아내는 부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함께 잘 살아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작은 다툼에도 헤어지자 그만하자는 그 남자를 내가 먼저 노력하고, 이해하고, 변하면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바보 같은 희생과 이해보다 그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내가 그를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그 남자는 나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했다고 했다. 본인은 희생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당연했던 일상이 그 남자에겐 너 때문에 한 크나큰 희생이라고 했다. 마지막에 그가 버린 끈을 다시 들어 올리지 않은 것은 나였다. 폭풍같이 휘청거리던 결혼생활을 고요하게 마무리했다.
그가 내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치 떨리는 분노의 기억. 말 한마디의 가시를 듬뿍 담아 던지던 그의 얼굴. 절대 지지 않고 두배로 돌려주던 나의 독기 어린 기억. 두 사람 모두 치열하고 공평하게 주고받았다.
- 친구야 나는 너에게 힘들다 말한 적 없고, 어렵다 내색한 적 없는 것 같은데, 오늘따라 나를 과하게 걱정하는 걸 보니 네 눈에 내가 힘들어 보였나 보다. 나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되고 보니 나의 이혼은 그와 나 둘 중 한 사람의 잘못이라기보단 두 사람의 잘못된 선택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하거든.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기회를 박차고 나선건 그였고,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알려주지 않은 건 나였어. 내 주변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어떤 것보다 확실하게 재결합은 없어.
하지만 난 진심으로 그가 잘 살아줬으면 좋겠어. 삼형제의 근사한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떳떳하고 멋지게 늙어갔으면 좋겠고, 우습지만 내가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인생의 후반부를 잘 살아갔으면 좋겠어. 이 감정을 굳이 단어로 표현하자면 사랑이겠지, 하지만 이건 미화된 아주아주 작은 기억들이 마지막에 남겨둔 희미한 감정이고, 이미 멀리 지나가고 있는 감정이니까 이런 기억과 감정에 헷갈려서 재결합을 하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선택을 하진 않을 것 같아.
사랑이면 사랑이지, 그럼 좀 사이좋게 잘 살아보지 굳이 쌈박질을 하고 애들 맘에 상처만 남겼다고 마지막까지 속을 뒤집는 소리를 하는 친구를 차단 목록에 살포시 추가해 주었다.
그런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숙려기간이 끝나고 이제는 진짜 부부가 아니라고 행정 문자를 받은 날 밤 아이들의 친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전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그지 같은 아들성격 받아주며 수더분하게 살아가는 네가 참 고맙고 좋다고 하시며 내가 하는 짓궂은 장난과 말장난도 유쾌하게 받아주시던, 내가 참 많이 의지하고 살았던 어른.
그 고단했던 10년 동안 친정엄마보다 더 미주알고주알 터놓고 살았던 다정한 어른이었다.
- 얘야 그동안 고마웠다, 다정다감하고 살갑던 네가 내 둘째 며느리라 참 좋았다. 네가 잘 살아보려고 많이 노력한걸 내가 다 알고 있지, 넌 충분히 많은 노력을 했어. 너희 둘의 인연이 여기까지인 것은 어쩔 수 없고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지만 그래도 살면서 맺은 귀한 인연이니 너와 나는 가끔씩 생각나면 전화도 하고 안부도 묻는 그런 친구로 지내면 어떻겠니?
후회와 원망이 결국은 미움으로 변해 온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했던 내 결혼생활 중에 맺은 귀하디 귀한 인연이었다. 요즘도 예전에 해주시던 맛있는 반찬의 레시피를 물어보고자 삼형제의 자라남을 이야기하고자 종종 통화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그런 부질없는 주절거림을 받아주는 따뜻한 어른이다. 진심으로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스펙터클 블랙버스터급 이혼도 있겠지만 나같이 잔잔하게 마무리하는 이혼도 있다. 사랑은 식어빠지고 미움과 원망이 남아 이혼을 한 터라 처음엔 괴롭기도 했고, 머리끝까지 열이 뻗쳐 잠을 못 자기도 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기도 했고, 아이들과 통화하는 그 목소리에도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올라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5년쯤 지나니 사랑도 미움도 원망도 희미해진 감정만 남았다.
그저 그도 나도 삼형제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잘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이런 이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