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뒤를 돌아보니 작은 사람 셋이 함께 걷고 있다.
이혼을 결정하고 혼자가 된 첫 주는 정신이 없었다. 그냥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눈을 뜨면 움직였고 눈을 감으면 잠이 들었다. 많은 것들이 빠르게 정리됐고 빨리 정리를 해야만 했다. 정신없던 시간을 함께 보낸, 갑작스러운 아빠의 부재로 나보다 더 상처받았을 삼형제의 마음을 보듬고 보살펴야 할 유일한 어른이었지만 나 역시도 나를 보듬는 시간이 너무 절실했다.
내가 의지하고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도 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도 내옆엔 없었다. 그저 매일 아이들과 부대끼고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시시껄렁한 유튜브 영상들을 보다 지쳐 잠이 드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 시간이 나를 보듬는 시간이 되는 거라 생각했고 지금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인생 중 큰 구멍에 빠진 나 자신을 스스로 건져 올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난 어느 아침에 학교를 가는 큰아이를 배웅하는데 건조기에 돌리고 정리를 안 해 꾸깃꾸깃한 옷과 뒤꿈치가 해진 양말을 신고 한겨울에 크록스를 질질 끌고 학교를 가는 큰아이 모습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평소 깔끔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저 아이가, 저 꼴로 학교를 가고 있으니 본인도 싫을 텐데 분명 엄마한테 불만을 얘기했을 아이인데 자기 연민에 빠진 이기적인 엄마가 끝 모르는 생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간동안 내 아이들은 엄마가 정신을 차리길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학교에 입학하고 첫 1년 산만하고 부산스럽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아들이 이제는 꼬질꼬질하다는 소리까지 듣게 생겼다. 둘째와 셋째를 돌아보니 짝짝이로 입고 있는 내복과 한 손에 들고 있는 빵쪼가리까지 쟤들이 내아들들인가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아이들이 보였다. 아차 싶은 마음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이들을 챙겨야만 했다. 더이상 넋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유치원에 가야 하는 둘째와 셋째를 멀끔하게 씻기고 옷을 입혀 등원을 시키고 너저분한 거실을 정리하고 냉장고 속 쉬어버린 반찬통을 설거지하고 한가득 쌓여 있는 재활용품을 정리하고 나니 큰애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오랜만에 정리가 되어 있는 거실을 보던 아이는 힐끗 엄마를 살핀다.
그렇게 큰애와 마주 앉았다.
- 지금 우리 집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거니? 엄마가 좀 설명해 줘도 될까?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사는 동안 종종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했는데 지난주 너희들이 잠든 밤에 했던 싸움은 화해를 하지 못했어. 너희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집에서 엄마와 아빠가 서로 싸우고 미워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기보단 조금 떨어져서 서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어. 미리 너희들과 상의하고 결정했어야 하는 부분인데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해.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애쓰는 엄마를 가만히 바라보던 아이는 질문을 했다.
- 그럼 이제 아빠는 안 와요? 우리는 아빠랑 같이 안 살아요? 아빠가 우리를 두고 가버렸어요?
- 앞으로 아빠는 집에 오지 않을 거고, 우리는 앞으로 함께 살지 않을 거야. 아빠가 가버렸다기 보단 엄마랑 아빠가 보기 안 좋게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떨어져 살기로 한 거야. 하지만 이 결정은 너희들 때문이 아니야. 그저 엄마랑 아빠가 사이좋게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야. 전부 다 엄마 아빠 탓이야.
하지만 아빠가 함께 살지 않더라도 너희가 학교에 가지 않는 휴일이나 방학 때 아빠와 만날 수 있고,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는 전화를 할 수도 있어. 아빠가 쉬는 주말에는 아빠와 함께 여행을 갈 수 있고 아빠랑 놀다가 자고 올 수 도 있어.
너희를 아빠가 데려가지 못한 이유는 아직은 너희가 어리고 아빠는 많이 바쁜 사람이라 시간의 여유가 있는 엄마가 너희를 잘 보살필 수 있기 때문이야.
- 그럼 이제 아빠는 우리 가족이 아닌 거예요?
- 식구와 가족의 차이를 알지? 아빠와 함께 지내지 않아 식구는 아니지만 아빠는 영원히 너희의 아빠야. 그러니까 가족이지, 그건 절대 변하지 않아.
8살 겨울을 지내던 아이는 알았다는 듯 끄덕이고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나의 어린 아이가 어른스럽게 지금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모습에 난 괜찮으려니, 들쑤셔서 문제를 만들지 말아야지 했다. 더이상의 설명은 그저 현재의 상황을 아프게 되새김질하게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날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큰애는 1년 가까이 아무런 질문이 없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와 학원을 가고 주말엔 아빠를 만나는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냈다. 어린 큰애보다 더 어렸던 둘째와 셋째는 이따금씩 왜 아빠가 집에 오지 않는 건지 궁금해했지만 첫째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듯, 나는 물어보지 않을 거라는 듯 무심하게 모든 상황을 흘려버렸다. 처음 눈치를 챘을 때는 배려심 깊은 아이가 엄마를 배려하느라 궁금해도 참고 내가 이야기해 주길 기다리는가 보다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아빠와 제일 다정했던 큰애라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어른들을 원망하는 마음도 들 텐데 왜 아무 말도 안 할까.
더 늦기 전에, 아이가 혼자서 정리하고 생각 한 후 마음을 닫아버리기 전에 손을 써야 했는데 내가 혼자서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지역 상담센터를 찾아가 등록을 하고 상담선생님을 처음 만나던 날 아이는 오히려 속시원히 말을 했다고 한다. 나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한껏 하고 나온 아이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저 혼자서 내 마음을 추스르고 스스로 경제적 안정을 찾으면 우리 네 식구 모두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난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인줄 알았던 내 뒤에 무려 세명의 내 아가들이 그저 나만 바라보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족한 엄마가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채 허우적 거리는 동안 내 어린 아이는 천천히 아닌 척, 괜찮은 척 병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