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을 위한 선택은 내려두기
엄마에게,
파리는 여전히 아름다워.
특히 노엘(Noël)을 맞이해서 거리마다, 상점마다
반짝이는 설렘을 느낄 수 있어.
엄마도 기억하지?
내가 겨울나무에 달린 반짝이는 조명 장식을
어릴 때부터 정말 좋아했던 걸.
그런데 체제 가능성에 따라 바뀌는 나의 신분 때문에 이렇게나 반짝이는 파리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조금 달라졌어.
언제까지나 파리에 있을 것 만 같았는데
비자에 찍힌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어.
난 파리에서 체류를 연장할 수 있을까?
본심은 성공적으로 이직해서 파리 생활을 연장하고 싶어.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거리가 될 이 날들을
조금 더 즐기고 싶은 욕심에.
그 욕심이 얼마나 강하고 달콤했냐면
내가 왜 파리에 있는지, 여기서 뭘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도 못하게 만들더라.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사람인데
‘나’라는 아이덴티티를 버리고서라도
수단이나 방법을 찾아보게 만들더라고.
Paris라는 도시여서 더 그런가 봐.
국경을 넘나드는 자유를 포기하고서라도
파리에 머물고자 무비자 불법체류를 강행하는 사람들. 혹은 권하는 사람들.
학생 비자로 꾸역꾸역 연장해서 거주하는 사람들.
혹은 현지에서 애인?을 만나는 사람들…
실낱같은 가능성, 그 어떤 기회라도 찾아내기 위해선 사실 그곳에 있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멀리서 기회를 찾는 것보다는
파리에 있으면서 그 사회 속에서 나에게 주어질 기회를 찾는 것이 더 수월할 거야.
내가 다녔던 국제기구의 인턴도 90%이상이 파리의 Science Po 출신인 것만 봐도, 기회가 얼마나 차별적으로 집중되는지 알 수 있었어.
파리에 살았던 1년 6개월.
그 시간 동안 파리는 나에게 어떠한 길을 열어주었을까? 이곳에서 배운 일, 삶의 경험, 맺은 인연은 어떤 가능성과 기회로 발화될까?
혹은
1년 6개월의 시간을 조금 더 연장시켜서
확실한 길이 바로 여기, 파리에서 열릴 수 있도록
내가 스스로 찾아 나서봐야 할까?
아니면
나의 비전과 꿈을 실현하기에 더 적합한 곳이 있다면, 파리를 포기해야 할까?
이런 어른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엄마가 있었다면
주변 사람의 말 보다 엄마의 말 한마디로 용기를 내어 결정할 수 있었을 텐데.
파리에 남을까
한국으로 돌아갈까
잣대질을 하고 있는 가운데
내 맘은 서서히 모양을 잡아가고 있어.
어떻게 보면 파리는
너무 좋은 곳이라, 나에게 과분한 곳이라
조금 긴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였을 뿐.
이젠 그 꿈같은 여행으로부터 돌아와
일상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만 잘 나가는 미래보다는
함께 잘 살 수 있는 미래를 위해 내가 가야 할 곳이 있지 않을까?
예술을 좋아하는 소녀 같았던 엄마라면
파리에서 누릴 수 있는 귀한 문화 예술적 혜택을 놓치기 아까워했겠지만,
또 엄마는 여리고 공감력이 뛰어났지.
파리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그 경험을 잘 살릴 수 있는, 더 필요한 곳으로 가라고, 그래서 남에게 유익이 되는 삶을 살아라고도 했을 것 같아.
그래서 엄마.
내가 가는 길에서
많은 유혹과, 부러운 사람들과, 새로운 가치관의 충돌이 있겠지만
나 혼자가 아닌 함께 할 세상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결정을 이어나갈게.
선택은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엄마가 나의 선택을 보고서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살아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