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품은 하늘
엄마에게
오늘은 프랑스 파리가 아닌 제주에서 보내는 편지로 엄마를 불러봐. 여권조차 없었던 엄마에게는 제주도가 마치 외국 같았을까? 신혼여행지로, 또 어린 나를 데리고 갔던 여행으로 제주도를 갈 때마다 좋아했던 엄마. 파리에서 살던 기간 중 잠깐 2개월이란 시간이 비어 입국했는데, 나도 제주도가 너무 좋아 입국하자마자 바로 제주로 날아왔어.
제주도가 좋은 이유는 아마 다 다르겠지만 또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인공적이지 않은 천연의 자연, 깨끗함, 여유로움.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왠지 기이하고 신비로운 백록담.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말과 소가 보이고, 고즈넉한 돌담길이 난 작은 골목.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하늘이 더 크고 넓어 보이는 곳. 빛 공해가 없어 정말 깜깜 해지는 밤, 그 적막한 고요함. 난 늘 도시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또 제주도에 오면 금세 도시 여자 티를 벗어버리고 너무 좋다-를 연발하게 되더라.
그런데 내가 간 날, 제주도에 처음으로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되었어. 한 품에 안을 수도 없이 유난히 크게 보이는 제주의 하늘이, 내가 기억하던 파란 맑은 하늘이 아니더라.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나 대기오염 문제가 있을 줄로만 알았지, 제주에서도 회색빛 하늘을 봐야 한다니. 세상이 변해도 이렇게 변했나 싶었어. 처음엔 안개가 꼈나, 구름이 가득한 날씨인가, 했는데 제주도민들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미세먼지였다고 알려줬어.
왜, 그런 말이 있잖아.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 얼굴로 드러난다는 말.
그럼 먼지를 머금고 있는 하늘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또 쓰레기를 품은 바다는? 그 바닷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물고기들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왔길래
우리의 하늘과 바다가 그토록 오염되고 있는 걸까…?
자연은 거짓말하지 않는 것 같아.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 그대로 우리가 자연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린이들의 순수한 모습에서 진실을 느끼는 것처럼,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인공적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통해 우린 활력을 찾고 또 살아갈 힘을 회복하는 게 아닐까. 지금, 오염과는 거리가 멀 것만 같았던 제주도의 변화된 자연환경을 통해 우리가 어떤 마음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돼.
제주도에서든, 서울에서든, 혹은 파리에서든 우리의 삶은 치열하고 여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야. 그래도 어쩌면 우리보다도 더 열심히 살았던 엄마 세대의 자연이 훨씬 깨끗했다는 점은, 도시화로 잃어버린 순수성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돼.
엄마,
제주의 하늘은 다시 맑아졌어. 엄마의 기억 속에 자리한 제주도의 하늘도 이처럼 파랗겠지! 소녀 같은 엄마의 마음을 닮아 더욱 예쁠 엄마만의 제주도. 혼자 하는 이번 제주 여행이 끝나면 어딜 갔었고 무엇이 좋았는지 다 말해줄게. 나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주는 여행자가 되어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