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데는 한계가 없다
엄마에게.
엄마는 한국 땅을 한 번도 벗어난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딸에게는 세상을 보라고 가르칠 수가 있어? 어떤 자극이 있었길래, 스스로 경험하지 못한 부분의 가치를 이해할 수가 있어? 인터넷도 없던 시대를 살았으면서, 어떻게 현재 살아가고 있는 공간의 바운더리를 넘어서는 시각을 가질 수 있었을까.
어린 딸에게 스테이크 써는 법을 가르치고, 일본 NASA 캠프를 보내고, 영어를 가르치고… 엄마 덕분에 나는 지구본과 세계지도를 보며 미래를 꿈꿀 수 있었어. 안주하지 않고 모험하게 되었고, 평범하기보단 특별한 사람이 되길 바랬어.
근데 우리나라에서 교육 과정을 마친 사람으로서는 나 같은 사람이 많이 없더라고. 주변을 보면 튀지 않고 묻어가며 사는 법을 익히고, 적성을 찾고 꿈을 꾸기보단 이미 입증된 ‘돈 많이 버는 길’을 찾아가고 있더라. 엄마가 심어줬던 ‘가능성’이라는 열린 문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나에게도 닫혀가는 게 느껴졌어. 그때 나에게 세상이란, 엄마가 펼쳐 보여 줬던 세계 지도 속 넓은 가능성이 아니라, 1년에 두 번 돌아오는 대기업 공채 시즌이란 좁고 평범한 갈래길에 불과했던 것 같아.
그래도 엄마. 엄마 덕분에 내가 ‘영어’를 삶의 무기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 있었고, 결국엔 그 무기를 사용하여 남들과는 조금 다른, 가능성을 선택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어. 지금까지의 내 삶을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릴 순 없겠지만, 난 아직도 꿈과 목표가 있어. 엄마 딸이 지금도 자랑할 수 있는 건, 내가 거쳐온 모든 장소와 시간에 대해 후회가 없고, 과거의 많은 결정들로 인해 현재 더 다양한 가능성과 미래가 열려 있다는 점이야.
유난히 우리나라에서 ‘차이’에 대해 엄격하고 ‘차별’에 대해 무심한 것 같아. ‘다르다’에 대한 관용은 부족한 반면 ‘틀리다’에 대해선 너무 쉽사리 판단해버리는 것 같아. 20대 중반이 되면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후반에는 취업을 하고, 30대 초중반에는 결혼을 하고. 이런 사회적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는 ‘다름’ 혹은 ‘차이’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나에게 꿈이 있다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더라고.
프랑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언제 결혼을 할지 보다 내가 무엇을 꿈꾸는지 더 관심을 보였어. 프랑스의 3대 가치 중 하나가 Tolérance, 관용이잖아. 그래서 그런가, 상대방과의 다른 점, 차이를 지적하지 않더라. 다르다는 점이 차별의 원인이 되지 않고, 그렇기에 틀린 답이 아니더라고. 내가 생각하는 가치가 그대로 존중받고, 그 가치대로 살기 위해 삶을 계획하는 모습을 인정해줬어. 프랑스 내에서도 나름 뿌리내린 사회적 관습이 있겠지만, 개인이 그 관습에 맞춰져야 한다는 논리는 없었어. 그렇다고 이곳이 무질서한 사회가 될 것 같진 않아.
엄마.
다양성을 자꾸 보고 접하는 환경이라면 자연스럽게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에 대해 민감해질 수 있는 걸까. 심지어 도로 위 자동차와 자전거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안전하게 운전하는 모습도, 자동차들이 자전거 도로를 무심히 침범하는 우리나라와 괜히 비교되어 다양성에 대한 시각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어.
그 어떤 점도 차별의 원인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해. 삶의 모양이 다르다는 게 틀리다는 건 아니니까. 원치 않은 질병을 얻고, 마음의 병을 가지게 되고, 남들보다 조금 불편하게 살아간다는 것도 단순히 다른 거라는 걸, 난 외국에 나가 살아보고 나서야 뒤늦게 보고 배우게 되었네. 아직 엄마가 보여준 만큼의 지혜를 가지려면 한참 멀었지만, 나에게 세상을 보게 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