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을래?
엄마에게.
초등학교 선생님이어서 그런지, 엄마의 관심사는 ‘아동’이었던 것 같은데. 수시로 바뀌던 나의 관심을 쫑알쫑알 엄마에게 말하는 것만 좋아했지, 정작 엄마의 관심은 뭐였을까 생각해 보지 않았었네.
내가 지금은 ‘환경’에 관심이 있다는 거,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어쩌면 뜻밖의 관심사일까? 하늘, 구름, 우주…에 관심이 있어서 야심 차게 NASA에 취직할 거라고 말했던 걸 보면 환경에 대한 관심사가 그때 시작되었던 걸까 싶기도 해. 구름이 하얗게 보이는 걸 두고, 핑크색이나 보라색으로 염색하고 싶다 생각하기도 했고. 아, 뒷산으로 혼자 산책 갔다가 나만의 공간이랍시고 비밀스럽고 소중한 산책로를 만들어 두기도 했어.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고 보니, 어쩌면 환경이라는 분야가 너무 뜻밖의 관심사는 아닌가 봐. 은근히 주변의 환경-자연-에 둘러싸여 있길 좋아하고 알아가길 원했었네.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단순 취미를 넘어 일이 된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지금 프랑스에서 하는 일도 환경과 관련이 있거든. 환경 관련 국제기구 UNEP의 CCAC (Climate and Clean Air Coalition)와 국제단체 REN21 (Renewable Energy for the 21st Century)라는 곳에서 인턴 6개월, 컨설턴트 8개월 계약으로 일하고 있어. 환경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투자 역사가 오래된 유럽과 비교할 순 없지만, 이곳에서 보니 우리나라에 부족한 점이 많이 보여. 유럽이 정답이고 한국은 오답이다-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내리려는 건 아니야. 해외에서 일하면서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것이 사대주의적 시각을 가지는 거잖아.
프랑스란 나라를 통해 본 유럽의 환경 정책- 부러운 점이 사실 많아. 이를테면, 파리에선 참 많이도 걸었어. 자전거도 종종 탔고. 한국에서는 내가 얼마나 걸었나, 자전거는 또 탈 수 있는 여건이 되나 생각해보면 차이가 바로 느껴지지? 파리에선 Ofo라는 중국의 공유 자전거, 그리고 Velib라는 파리의 공유 자전거를 주로 탔어. Ofo의 노란색 자전거가 참 예쁘고 벨리브처럼 반납 장소까지 가지 않아도 되어 쉽게 이용했는데, 어느 순간 파리에서 사라졌더라. 알고 보니 중국에서도 파산위기에 처해 흔적 없이 증발해버렸대. 10유로 이용권을 충전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갑자기 자전거가 사라져서 … 황당하고 억울했어. 그래서 타기 시작한 벨리브는 조금 무겁긴 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내가 정말 파리지앵이 된 느낌이었어. 나 어릴 때 자전거를 조금 타긴 했지만, 정말 몸이 기억하는 게 맞는지 유럽인들 사이즈에 맞춘 커다란 자전거를 잘도 타고 다녔어.
유럽의 다른 나라,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에서 본 자전거 탄 풍경은 정말 인상적이었어. 인상적이란 평범한 단어 말고는 생각이 안 나네.
놀랍고 감탄스럽고 관찰하고 싶고 따라 하고 싶은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은데, 정말 그냥 인상적이었어!
1년에 하루 ‘차 없는 날’을 만들어 온 국민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 영향으로 심지어 석사 학위 논문 주제를 ‘자전거 정책’으로 정했지 뭐야.
우리나라에도 ‘따릉이’라는 공유 자전거가 있어. 도입 초기에 논문 작성을 위해 조사했더니 이용률도 낮고, 지속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응답률도 낮았어. 그런데 지금은 아직 유럽의 자전거 문화까진 아니더라도 따릉이의 인기는 엄청나게 올랐어. 조만간 한국의 자전거 정책도 유럽화가 되지 않을까? 지금 추세를 본다면 너무 허무맹랑한 기대는 아닐 것 같아. 다행히 내가 쓴 논문이 시대에 아주 동떨어진 내용은 아니었나 봐.
엄마,
한국에선 자전거 타는 것도 익숙하지 않지만 조금 걷는 것도 힘들지. 점점 더 잘 안 걷게 되는 기분이야. 그런데 파리는 씩씩하게 걸어지는 곳이야. 내가 걷는 만큼, 혹은 자전거로 이동하는 만큼 탄소 배출이 줄어든다-고 의식하진 않았지만, 한국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도 차로 이동하는 습관과 비교하면 파리에서 나 상당히 친환경적으로 살았었네.
걷는 행위에 대한 예찬은 이미 세상에 가득해. 걷기만 해도 책을 낼 수 있는 시대인걸. 사람들이 얼마나 안 걸으면 그럴까 싶기도 하고. 근데 정말이야. 이해되지 않지만 걷고 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아. 막상 ‘생각 좀 해 볼까’하고 걷기 시작하면, 걷는 동안은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도, 한참을 걷다 돌아오면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문제’가 아니었고, 설사 ‘문제’ 임에 변함이 없더라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달리 생각할 눈이 뜨이더라. 걷기의 마법이지!
파리는 생각보다 작은 도시야. 걸어서 갈 수 있는 정도의 도시. 엄마는 걷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파리에서는 엄마도 걷고 싶어 질걸? 엄마 우리 같이 걷자. 같이 걸으면서 옆으로 자전거 타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도 하고, 센 강변에서 사진도 찍자. 걷다 보면 루브르 박물관도 나오고, 개선문도 나올 거야. 걷다 힘들면 튈르리 공원에서 잠시 쉬자.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걷기의 시간,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