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뤘지만 이루지 못했습니다
1. 직업 타이틀을 몇 번이나 바꿔 보았지만 천직이라고 느껴본 건 딱히 없는 것 같다.
여러 직장을 옮겨 다녔지만 평생직장이라는 곳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오히려, 더 오래 남아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상황은 있었다.
직업을 전향한 이유는 무대 뒤의 조력자가 아니라 무대 위의 지휘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고, 직장을 옮긴 이유는 나의 역할이 더 소중하게 여겨질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지구에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온 곳이 UN 국제기구였다. 영어를 전공하여 국제 협력이라는 실체 없이 애매한 분야에서 뒹굴었지만, 나는 세계 무대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2. 국제기구는 사실 문턱이 낮지 않다.
아무리 국가에서 보내주는 국제기구 인턴이나 JPO (Junior Professional Officer)라는 제도가 있지만, 나는 3~4년을 내리 서류에서 탈락했었다. 아무런 인맥 없이, 지원해 주는 곳 없이 직접 채용 공고를 찾고 이력서를 넣었다. 떨어질 때마다 낙담했다. 세상이 나에게만 냉정한 거 아니냐고 풀이 죽어 있었다. 나의 부족한 점만 또렷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기가 안 되었다. 낙담하는 마음 너머로 ‘나는 국제기구에 갈 수 있을 거야'라고 외치고 싶은 끈기가 올라왔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수십 개의 이력서를 넣은 뒤에야 나는 그 높은 턱 너머에 있는 국제기구란 문을 자력으로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인턴으로 시작해야 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내 커리어를 새로 쓰는 그 느낌이 좋았다. 경력직으로 들어갔을 경우 받았을 기대감과 책임감도 없었고, 오히려 실수해도 허용되는 그 신분이 편했다.
결국 나는 국제기구에 진출한다는 목표는 이뤘다. 다만 시간표가 달려 있었다. 일정 기간의 계약이 종료되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없이 끝나버리기에, 꿈을 이루는 길로 가기에는 사실 내가 국제기구에서 근무한 기간은 너무 짧았다.
3. 처음 국제기구를 목표로 하면서 ‘더 큰 무대에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지만, 내가 어떤 기여를 했는지 눈으로 확인하지도 못하고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물론 적극적으로 네트워킹을 하거나 (국제기구에서는 인맥이 중요하다!) 다른 국제기구에 이력서를 넣어보며 잔류하기 위한 시도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소극적이었다. 아니, 적극적으로 거절하고 있었다. 단지 ‘국제기구에서 일하기 위해 국제기구에 있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거부했고, 내가 정말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곳을 계속 찾고 싶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를 찾기 원했다.
그곳이 국제기구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또 동시에 국제기구 밖의 세상을 상상하기도 했다. 분명 내가 쌓아온 경험이 사용될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문장의 온도 중)
4. 이제는 천직이라는 것,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많이 유연해지고 있는 시대이다. 한 우물만 파던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여러 우물을 파서 다양한 물 맛을 알고 있는, 한 우물에 물이 부족하면 다른 우물로 언제든지 옮겨 가 물을 길어올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의 경험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발견하는 탐색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회사 밖의 세상, 어쩌면 더 큰 무대일 수 있는 세상으로 다시 도약할 준비를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