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UN에 일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UN이 아니어도 좋으니 내 일이 세상에 기여되는 곳에서 일하고 싶은 건가?
이 질문을 놓고 꽤 오래 고민을 했었다.
분명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오랜 기간 마음고생을 하며 실패를 마주해야 했다. 결국 솔직하게 인정하면 되었던 것을, 미련이 남은 마음에 내가 질질 끌려다녔던 셈이다.
UN이라는 국제기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결국에는 국제기구여야 했었던 것이다.
내가 하는 일, 일을 통한 가치 실현보다 우선 세상 속에서 번듯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애써 외면했던 건, ‘국제기구면 다 OK’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가졌던 내가 스스로에게도 비판적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2. 그랬던 내가 국제기구가 아니어도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하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곳이면 된다고 기준을 새롭게 두기 시작했다. 국제기구를 다니면서도 피하지 못한 ‘현타'가 온 것이다.
애초에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가지 않았던 이유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에도 나는 CEO 1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명확한 그림도 없었지만, 뭔가 세계 사회를 위하거나 대의에 기여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막연한 마음을 따라갔고, 그렇게 국제협력팀에서 애매한 제너럴리스트의 포지션을 밟게 된 것이다.
시작은 그랬던 나였는데,
사회생활 n년차가 되면서 점점 가시화가 되는 급여 수준의 차이에 어느덧 내 기준은 흔들렸다.
국제기구에 진출하면서 잘 될 것 같았고 내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는데 왜 성장을 못하고 있는 것 같을까.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지고 경험치도 높아져 가는데 왜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이러다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현타가 오면서 내 꿈이 무엇인지 다시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3. 프랑스의 국제기구 생활을 접고 귀국해서, 국제 업무를 지속할 수 있는 국내 기관으로 이직하여 커리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현타가 왔다고 해서 당장 이직할 순 없었다. 스타트업과는 달리 잦은 이직이 반갑지 않을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또 이직을 하자니, 단지 이직을 위한 이직이 되진 않을까 점검하게 되었다. 성장이 아닌 도망으로서의 이직이거나 혹은 눈에 보이는 급여나 지위를 위한 이동일뿐, 정말 나의 가치와 비전을 담을 수 있는 변화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가치 실현이라는 꿈을 이루도록 만들어 주는 회사를 못 찾는다면 내가 스스로 해 보자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일상이 반복되면서 그 끝이 너무나 분명히 보일 때면 두려웠다.
회사가 나의 전부는 아닐 텐데, 회사 이후의 인생에서 난 무엇이 되어 있을까.
미래를 위해 나는 지금 어떤 투자를 하고 있나.
4. 가만히 시간을 들여 돌아보니 제너럴리스트로서 다양한 현장에 투입될 수 있었던 작은 경험의 조각들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쌓이지도 않고 녹아버린 눈송이 같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살펴보니 조각난 경험들이 모여 구슬이 꿰어졌다. 녹아서 없어진 눈송이 같은 경험이 아니라, 흡수된 비료가 되어 단단하게 뿌리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 경험들을 사용하여 회사 밖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 보면 어떨까?
사이드 프로젝트를 설계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런 생각이 이어지자 지체 없이 실행에 옮긴 나는 퍼스널 브랜딩 강의(마케터 혜윤님의 Class101 회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나를 브랜딩하며 독립적으로 일하는 법 강의)를 듣고, 유튜브 영상 제작 (패스트캠퍼스 올인원 프리미어프로 영상편집 첫걸음 시작하기)과 기획 (주언규PD의 Class 101 가장 빠르게 돈 버는 유튜브 채널 만드는 방법) 강의를 들었다. 비즈니스 모델 설계를 위한 교육과 훈련의 경험이 된 지원사업 (카카오 제주 임팩트 챌린지)도 시작했다.
나의 사이드 n잡 도전은 실무적으로도 업무를 보는 눈을 키워주었고, 다른 조직으로 이직을 고려할 때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덕분에 내가 해 왔던 일 그 이상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었고, 사이드로 만난 사람들과의 교류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으며, 무엇보다 회사 안에서 성장이 고팠던 내가 회사 밖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다.
5. 국제기구, 국제협력에 있다 보면 자꾸 스페셜리스트만이 정답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 흐름에 유연히 올라타고, 그 파도 위를 쓸모 있게 즐기기 위해서 제너럴리스트도 절대 부족하지 않다고 믿는다.
오늘날 성공은 전문가의 길을 걷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탁월한 사진작가가 되려면 사진 기술보다는 스토리텔링의 기술을 더 익혀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글쓰기, 말하기, 커뮤니케이션, 프레젠테이션 능력 또한 키워야 한다.
(타이탄의 도구들 p.120)
제너럴리스트에서 벗어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겠다고 아예 본인의 길을 바꾸신 분도 계신다. 하지만 나처럼 관심사가 너무 다양해서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없는 사람도,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성장을 직접 만들어갈 수 있다. 원래 선택이란 건 내가 만들어나가는 거니까.
1등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너럴리스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2등에게 1등 자리를 빼앗겨 버릴 수도 있는 체계 속에 살지 않는다.
나 역시 하나의 정답이 아닌 여러 질문을 파고드는 쓸모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나의 질문이 세상을 변화하는 도구로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창업가이자 투자자이자 작가이자 크리에이터이자 아티스트다. 한 우물을 판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타이탄의 도구들 p.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