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서 한 시간만 더 일을 해도 어깨가 결려서 죽을 것 같다. 의자 높낮이를 조정해보고 쿠션을 갖다 대 봐도 요가만 한 게 없다. 요가 매트에 올라선 순간 '아 오늘 정말 힘든 선생님 수업이다, 잘못 왔나 봐' 하는 후회 반 그래도 제시간에 왔다는 안도감 반. 어깨를 펴고 열고 다리를 찢는 동작이 반복되는 와중에 문득 거울 속 나와 다른 사람들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럴 여유가 생긴 건 첫째, 동작이 편해진 만큼 몸이 조금은 나아진 것이고, 둘째, 내 안에도 나와 타인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 거라는 반증일 것이다.
나는 늘 내 몸이 별로였다. 또래에 비해 훌쩍 큰 키, 삐쩍 말랐는데 어깨는 굽고 얼굴은 크고 동그란, 게다가 안경까지 쓴, 비율이 따로 노는 미니온 같았다. 보름달 같은 내 얼굴만 보고 동네 어른들은 수군댔다. '어린애가 벌써 저렇게 비만이어서 어떻게 해요?' 대여섯 살 때부터 가만히 앉아 책 보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는 나. 어릴 때 할머니 품에 안긴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 표정이 어둡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따라가면 나는 자신감도 자존감도 없어서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었던 아이였다. 내가 없어져야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이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낄 것 같아서 그렇게 '혼자' 가출했다가도, 해 저물면 무서워서 조용히 꼬리 내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춘기 즈음되어 나를 좋아한다는 사내애가 생기면 나는 늘 그게 의아했다. "나를? 왜 굳이?" 사람이 사람을 좋아해 주는 마음이 고마운 줄 모르고 항상 무시했다. 그러면서 항상 내 마음속에는 짝사랑하는 남자애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대부분 돌이켜 보면 나는 만화 '슬램덩크'에 나오는 서태웅 같은 스타일을 좋아했다. 눈매 매섭고 날카로운 만능 스포츠맨에 여자 팬이 많은 남자애들을 가슴에 품었다. 이뤄질 확률이 낮으니, 당연히 행복했을 리 만무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아니더라도 굳이 상관없을, 좋아하다 그만해도 상처 안 받을, 안전한 남자애들만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현실에서의 연애가 무서웠다. 다 자라지 않은 마음에 큰 가슴을 가진 여중생은 수영 수업이 있는 날마다 갖은 핑계를 대서 체육 선생님을 곤란하게 했다. 학기말 시험은 봐야 해서 수영장에 들어갔는데 남자애들이 그렇게 괴롭혀댔다. 내 몸에 닿은 감촉들은 소름이 돋았지만 물 자체도 무서운데 그 안에서 누가 그랬는지 봤을 리 없다.
어쩌다 보니 위 사건 같은 이유는 아니었으나, 나는 중고등학교를 다섯 번이나 전학했다. 모두 남녀 공학이었고, 전학 오고 갈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면 반드시 어떤 신체적 변화가 나타났다.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고, 갑자기 살이 10킬로그램 이상 빠지고, 환경에 적응하는데 힘든 것들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몸이 못 견뎌서 내는 비명 같은 것들을 많이 겪었다. 친해진 친구들을 떠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야 하는 외로움 속에서, 나는 굳이 내 몸에 관심 갖지 않고, 나를 나라는 아이 성격 그대로 받아주는 나랑 잘 맞는 이성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하지만 겁이 났다. 내가 사귀었던 첫 남자 친구는 내가 부모님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시시콜콜 종알종알 해대던 반 동창이었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내게 입 맞추는 걸 좋아했다. 나는 그를 많이 믿고 좋아했기에 그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는 한 학기가 지나 내 존재를 묵살했다.
나는 공부하는 걸 좋아해서 다행히 좋은 대학교에 갔지만, 내가 싫어하는 소위 '쓰레기' 같은 남자들이 종종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교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사수는 정장 입은 날 보며 '너 수영복 입으면 잘 어울리겠다'라는 말을 하고도 뻔뻔했고, 지나가는 예쁜 여자를 보면 그냥 확 덮쳐버리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과 선배도 있었다. 언어는 마음의 거울이고, 평소에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면 이성관을 알 수 있다. 특히 술자리에서 나오는 습관을 보면 열에 아홉은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나를 아주 세 보이는 '언니'로 포장했고, 술을 엔간히 마셔도 취하지 않게 보이려고 했다. 내 몸을 노리고 나한테 접근하려는 사람들과, 진짜 나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다가오는 사람들 사이에 구분도 서지 않았던 때였다. 그제야 얼핏 나는 내 몸을 진짜 사랑했던 적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몸이라는 걸 어떻게 다루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Yes와 No를 말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있었던가?
대학 졸업반이 되어 면접 보러 가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문대를 졸업한 여대생이 취업하기는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출판사 대표는 자기 피알을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내 허벅지에 자신의 손을 터억 얹는 거였다. 순간 외쳤어야 하는 건 '왜 이러세요?!'였지만 그 말은 가슴속에서 공허하게 메아리쳤을 뿐 나오지 않았다. 비굴한 순간이었다. 나만이 겪었을 것 같지는 않은 일들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또 이 세상에서는 비교적 어린 친구들에게 아주 많이 일어났을 거고, 또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그때 즈음 내 친한 친구에게는 LGBT 커뮤니티의 친구들과 애인이 있었다. 이성관이 straight인 나도 그중 한 명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을 때 잠깐 궁금해해 본 적이 있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잘 알기 때문에 만지면 더 기분 좋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손만 잡아도 느낌이 전달된다는 건 어떤 의미지?'
그건 얄팍하게 몸을 섞는 행위가 아닐 것 같았다. 서로의 몸에 대한 '존중' 일 것 같았다. 지금 세대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삼십여 년 전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존중받는 이성관계가 몇 % 나 되었을까? 불행히도 추행이나 강간을 당했거나, 성경험이 있는 채로 결혼했던 여성들은 과연 결혼 후에도 행복하게 살았을까? 그 시절 센세이셔널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기억해 보면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 '두려움 없는 사랑' 같은 작품들이 생각나는데, 성폭행을 당해도 입증하기 쉽지 않았던 시기, 피해자가 유부녀이고 가해자가 전도유망한 청년이라는 설정 때문에 무죄로 풀려난다는 어이없는 사회 분위기를 그린 것에 어린 나는 그때도 분노했던 것 같다. 배우 고현정이 출연해서 유명했던 드라마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고 들어와 행복한 그녀에게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몸 망치고 들어온 딸 뭐가 예뻐서!'
나는 그때 화면에다 대고 이렇게 외치고 싶었을 것 같다. "아니요, 그녀는 브라운관 속 연인인 최재성과 행복해 보였다고요. 그녀가 원하고 사랑해서 동침한 그 남자는 아침에 꽃을 들고 왔어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요."
아직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여성인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니던가? 나이와 신분 여하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의 신체는 존중받아야 하고,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서도 자신이 원하고 원치 않는 순간 Yes와 No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아직도 성범죄가 이렇게 얼토당토 하게 낮은 형량을 받고, 나영이 사건의 범인 조두순이 출소하는데 법으로는 그걸 멈출 수 없는 건지, 국민들이 청원으로 피해자를 도울 수밖에 없는 건지, 너무나 안타깝다. 출근했을 때 화장기 없는 내 얼굴에 대고 '너 어제 뭐하고 놀았니'라고 묻는 몰상식한 사람이, 지금 내가 사는 나라에는 다행히 없다. 지하철에서 추행당하면 반드시 신고하라는 플래카드는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된다. 사회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안도감, 남녀가 평등하다는 평화감. 대한민국에서는 그 당연한 것들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덕목이 된 것인가?! 그렇다면 무서워서 사랑은 어떻게 하나.
1990년도의 영화 '단지 그대가..' 이후 2020년도의 '69세'까지, 여성의 몸을 대하는 대한민국은 아주 천천히, 더디게, 너무 더뎌서 눈물 날만큼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운동에 동참하는 개인적인 방법은, 내 몸을 아끼고 소중히 하는 것, 우리 세대에는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었지만, 이성과의 관계나 터치에 대해 싫고 좋은 감정을 확실히 할 것, 그리고 주변의 불의를 보고 눈감지 않는 것, 내가 줄 수 있는 한의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 가다가 '그년 어떻게 한 번 자보고 싶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주변의 누군가가 즉각 도와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모든 것은 현재를 자각하는 것에서부터다. 내 몸의 주인이 되어, 거울에 비친 나를 예쁘게 봐주고, 지켜주는 나.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부터 조금씩 변모해가는 나. 사회도 개개인처럼 그런 자정 작용을 해 주었으면 한다. 그런 시대에 태어났으면 나는 조금은 더 나 자신을 아꼈을까. 제대로 거울 속의 나를 바라봐 줄 수 있었을까. 상처받는 줄도 모른 채 정신없이 살아온 나날들을 돌아보다가 이만큼의 단상을 적어버렸다.
어린 날의 예쁘고 또 아팠던 나를 기억해 보면, 희미한 기억은 기억대로 두고, 과거와 현재를 꼭 만나게 해 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조금은 더 기껍게 사랑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2007년 가을 어느 여행지의 호텔방에서, 왠지 마음에 들었던 그림. 이제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