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미 떠나버린 너에게
흔들리는 개나리 아래에서
하늘위로 뜬 두개의 달을 바라보며
나는 서서히 내려갔다.
머리 위로 흐르는 투명한 강물을 느끼며
이리 저리 움직여보지만
내 몸은 비좁은 책상에 묶여버린 어느 젊은 마술사의 미녀처럼
옴짝 달싹 하지 못하고
소리치는 너의 입모양만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뿐이다.
미안하다고
사실 미안할 건 없다고
미안할 이유는 없다며
일그러진 너의 얼굴엔 짜증과 조롱과 혐오와 연민이 얹혀있고
나에겐 그런 얼굴마저 희미해져 간다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봉오리를 바라보며
나는 어쩌면 다 피고 저버리는 꽃이며
너에게 볼품없는 꽃이며
나는 이 보잘 것 없는 것을 피우기위해
이것도 꽃이라고 피워내기 위해
차라리 아직 피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좀 더 늦게 피는 국화였으면 어땠을까
국화를 좋아하는 너에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면
다음엔 국화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