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방황 중

단상의 아포리즘 20

by 고봉진

걷다 보면


요며칠 걷지 않으니

떠오르지 않았다.


걸을 때 떠올랐다.

참 신기했다.

자연스럽게




긍정 마인드를 얻으려면


부정적인 생각은

파급력이 있다.


몸을 움직여

마음이 통해야 한다.

웅크리기만 하면

생각이 스며든다.




담담하게 살아간다


어떻게든 살아간다.

잘 사는 건지 모르겠다.


슬펐다가도 좋아진다.


게으름과 부지런함을

반복한다.


담담하게 살아간다.

당당하게 살고 싶지만




자판을 두드려야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주제가 생각나고 내용이 떠오른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몸이 가는 대로 쓰면 된다.


반대로 안 써질 때가 있다.

그때는 잠시 쉬는 게 좋다.


근데 써지고 안 써지고는

일단 써야 알 수 있다.

느낌으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자판을 두드려야 알 수 있다.




여전히 방황 중


내 나이 곧 50이 되는데 여전히 방황 중이다.

40때보다 더 방황하는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지난 번 제주대 병원 병실에서

한 청년이 했던 말을 기억하자.

“이길 수 없으면 즐겨라.”


결과에 상관없이 즐길 생각으로 살아가자.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갈테니 말이다.




밥퍼 목사


어제 밤에 우연히 TV에서

밥퍼 목사 최일도 목사님 인터뷰를 봤다.


억울한 일을 당연하게 여겨라.

고통받는 만큼 복을 받을 것이다.


인생을 살려면

이 분처럼 살아야 한다.


내 몸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니

부끄럽다.




가족


혼자 있을 때는 덜 걷게 된다.

함께 있어야

내 생활이 통제된다.


가족은

내 보금자리이자

훌륭한 구속이다.


아내와 아들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엘라키스톤


엘라키스톤(Elachiston)은 헬라어(그리스어)로

‘지극히 작은’이란 뜻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종교여야

진정한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지극히 작은 자를 기억하자!




쓸모있는 글


오늘도 쓸데없는 글을 쓴다.

나중에 돌아보면

건질 글이 많지 않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쓰다듬고

마음을 다잡는다.


쓸데없는 글이어서

쓸모 있다.




걷기


오늘 집과 학교를

2번 왔다 갔다.

팔과 다리에 힘이 난다.

걸으면서 행복했다.

오늘 제주 날씨가 너무 좋았다.


아무 생각이 없을 때도 있고,

이런 저런 생각이 날 때도 있고,

어떤 생각에 집중할 때도 있다.

불연듯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걸으면

마음과 몸이

힘을 얻는다.




한 칸 띄우기


한 칸을 띄고 자유롭게 글을 쓴다.

(잘 써질 때를 제외하고)

계속 써야 하면 같은 주제로 써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한 칸 띄우는 것이 현명하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이 잘 안 풀리면 칸을 띄우고 다른 작업을 하면 된다.

(긴 글을 쓰면 좋지만) 잘 되지 않으면 칸을 띄우고 짧은 글을 여러 개 쓰면 된다.

나중에 짧은 글을 모아 연결하면 긴 글 못지 않다.

인생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글과 걷기


세월의 흐름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두자.

내 인생을 살아갈 뿐, 다른 이의 삶을 살 수 없다.

내 길을 갈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이 흘러가듯 순리에 맞게 살아가자.


힘들면 글을 쓰고 많이 걷자.

글을 쓰고 걷다보면 어느덧 마음이 정리된다.

‘글과 걷기’를 통해 알게 된다.

인생이 뚜벅뚜벅 걷는 걸음과

한 자 한 자 쓰는 글이라는 것을.




불쑥 떠오른다


골똘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걸을 때 풀린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럴싸한 해결책이 생각난다.


걸을 때 불쑥 머리 속으로 들어온다.

누가 집어넣기라도 한 것처럼




주말 산책


제주 자연이 아주 가까이에서 보인다.

차를 타고 오가면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천천히 걷기에 보이는 것들이다.


길가에 핀 꽃들, 날 보고 달아나는 꿩,

푸르른 한라산, 맑은 하늘,

벌레를 물고 날아가는 새


아이들 행사로 제주대 교정이 활기차다.

기분 좋은 주말 오전 모습이다.




글과 걷기


글쓰는 시간은 행복하다.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계속 쓰게 된다.


걷는 시간은 행복하다.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계속 걷게 된다.


글과 걷기가 대체될 수 있을까?




걸을 수밖에 없는 구조


난 원래 엄청 게으른 사람이다.

게을러서 몸을 거의 쓰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걸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구조’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출퇴근길을 걷는다.

차는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

출근길 50분, 퇴근길 50분, 발걸음으론 5,500보씩 11,000보가 된다.

출퇴근길 걸음은 내게 보물이 되었다.


몸이 찌푸둥해서 시작한 출퇴근길 걸음이었다.

운동이 필요하겠다 싶어 걸었다.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걸으면서 땀을 흘리고, 머리 속 생각을 정리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

가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단상의 조각들’ 작은 글 소재는 그냥 생긴다.

감사가 흘러나온다.


‘걸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길 정말 잘 했다.




내 페이스대로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내 페이스대로

살고 싶다.


한 걸음 한 걸음

가볍다.




일석이조


감정을 이용해 글을 쓴다.

즐거움을 토대로 삼고,

괴로움을 재료로 삼는다.


글을 쓰면서 감정을 다스린다.

괴로움을 다스리고

슬픔도 이겨낸다.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감정이 글을 쓰게 하고,

글을 쓰면서 감정을 다스린다.




격차와 신분


사회는

격차로 분리된다.

또 다른 신분사회인가?


분업과 기능적 분화도

새로운 신분을

만들 뿐인가?


좋은 사회를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만날 수 있을까?




노래와 글


노래는 전율이 느껴지는데

눈물이 나는데

함께 울고 싶은데


글도 같은 감정을

자아낼 수 있을까?


내가 울어야

그런 글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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