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도망치고 싶었던 새벽, 마침내 마당바위에 앉다

by 고카




‘크아 아~~~~’ 소리가 마치 맹수의 포효처럼 크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지지직거리는 빈 화면을 틀어놓은 티브이 소리와도 같은 소리에 무서운 마음이 더 커졌다. ‘집으로 다시 돌아갈까?’ 여러 번 머릿속으로 고민했지만 이미 몸은 천천히 시끄러운 폭포소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두려움을 마주하며 한발 한발 내딪어 갔다. ‘뚜루 뚜뚜루루 뚜루루~ 띠로 띠로띠로 띠로띠~’ 한 소절 가사가 겨우 기억이 날 법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둠 속으로 향했다. 삼십분을 공포 속에 낑낑대며 오르다 보니 숨이 거칠어졌다. 누군가를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저 멀리에서 하얀 LED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는 ‘저기요~~~ 같이 가요~’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조용히 그 불빛 뒤 롤 쫓았다. 어느새 그 불빛 앞에 또 다른 불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불빛은 3개였다. 그렇게 불빛을 쫓다 보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헤드 랜턴 불이 없이도 물체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러던 중 내 앞으로 다가오는 물체가 느껴졌다. 조용한 발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나의 앞으로 왔다. 놀란 마음을 다잡으며 이미 이른 시간에 올라갔다 온 사람일것이라 생각하고 그 사람을 스쳐 보내고 다시 내길을 향했다.


공기는 차가웠다. 하지만 허겁지겁 올라온 탓에 땀이 흥건해졌고 여려 겹으로 입었던 옷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올라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산 아래 펼쳐진 야경의 불빛이 공포와 함께 내디딘 발걸음이 꽤 높은 곳을 향했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내가 올라온 북한산 탐방지원 센터 경로 반대쪽 우이동 방면에서 올라오는 길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내 공포는 사라졌다. 저 멀리 동쪽에 보이는 산의 등고선 위로 붉은색과 검푸른 색이 이루는 그러데이션이 너무 아름다웠다. 조용하고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여명의 시간이 너무 포근했다.


마지막 계단 암벽 코스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약간의 교통체증이 생기려 하고 있었다. 부지런히 그 인파를 피해 정상에 올랐다. 마당바위에 가방을 내려두고 정상석에 달린 태극기까지 올라가 산 아래를 내려보았다. 일출 산행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또 산 아래에서 출발하는 과정까지 내 마음속에 수십 번 떠올랐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낸 것에 대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바위에 앉아 저 멀리 앞을 내다보았다. 서울의 동쪽 그리고 한강 물줄기를 따라 저~멀리 팔당 너머까지 보였다. 지평선 부근에 자리한 산등성이를 따라 아름다운 풍광이 나를 압도했다. 말없이 조용히 앉아 가방에서 텀블러와 스테인리스 컵을 꺼내어 커피를 따라 마셨다. 이어폰으로 자우림의 스믈 다섯 스물하나를 들었다. 칼바람에 벗어두었던 경량 패딩과 바람막이를 여미어 입었지만 등에서 머리까지 척추를 따라 흐르는 전율이 짜릿함과 몽환적인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일출까지 보며 마당바위에서 30여 분 가량 마음을 치유하고서 하산을 했다.


내가 왔던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산길은 구불구불했다. 두려움 덕에 그 가파른 길에 힘듦을 느끼지 못 했던 것이다. 나는 이미 일출을 보고 돌아가는 길인데 그 무렵이 되어서야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 아래에 다다르니 그제야 맹수의 울음소리를 했던 계곡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찬 물줄기는 계곡의 형세가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을 더 도드라지게 하고 있었다. 다시 들어도 계곡물소리는 우렁찼다.


집에 돌아오니 아직도 모두 잠들어 있었다. 조용히 배낭을 내려놓고 샤워를 했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사 온 막걸리 한 잔을 따라 마시며 개운함과 청량한 맛을 느끼고 있는데 아이들이 방에서 나왔다. 한밤의 꿈과 같았던 나의 첫 일출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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