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누나가 있다. 지금까지 얼굴을 대면했던 게 20번은 되려나? 늘 사진과 집안 어른들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로 누나의 근황을 접하긴 해도 자주 만나지는 않았기에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누나의 마음이 따뜻하고 선하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늘 배려하는 말투와 환한 웃음으로 대해주었다. 그런 누나는 미국으로 시집을 갔고 그렇게 볼 기회는 더 줄어들었다. 어릴 적 시골에 살던 나에게 서울에 살았던 누나를 보기엔 나이 차이와 지역차이가 주는 거리감이 커서 선뜻 먼저 연락을 하거나 찾아가지는 않았다.
두어 번 누나에게 연락해 만났던 적이 있다. 한번은 수능을 마치고 나의 절친 녀석과 서울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생전 처음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려가 주었었다. 지금은 사업이 철수되어 사라진 베니건스로 기억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서울에 놀러 갔다가 광화문 누나 집에서 재워달라고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싶다. 어색하고 낯선 건 누나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그때 생각을 하면 미안하고 쑥스러운 생각이 든다.
한동안 연락조차 없이 지냈는데 그런 누나에게 연락해 찾아가겠다고 한 적이 있다. 작년에 미국에 처음으로 갈 일이 있었다. 가족들이 함께 갔기에 간 김에 보러 가는 게 어떤가 싶었다. 하지만 누나는 부담스러워했고 결국 만남은 다음에는 기약 없는 약속으로 연기가 되었다. 그런 누나 가족들이 이번 주에 한국에 온다고 한다.
22년 겨울의 초입에 조카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누나의 첫째 아들과 헤어졌다는 소식이 가슴을 메여왔다. 자식 있는 부모로서 그 아픔이 어떨지 예상은 되었지만 누나가 겪는 그 슬픔과 아픔은 내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이직한지 얼마 안 돼서 2인 기숙사 방에서 홀로 숨죽이며 마음 아파하며 어떻게 위로와 연락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른이라는 나이가 되었지만 어른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낯선 일들에는 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발만 동동 구르게 되었다.
작년 미국에 갔을 때 누나를 만나 위로를 해줄 자신은 없었다. 다만 어른스럽지 못하게 주저하고 망설이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판단은 누나에게 맡기고 연락을 했던 거였다. 그 아픔의 크기가 너무나도 컸기에 만남을 다음으로 미루었는데. 누나의 가족이 한국에 온다니 너무나도 반갑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지금에라도 만나서 진정한 위로를 하고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 둘째도 형을 잃은 상실감과 엄마 아빠의 부재 기간 동안의 아픔이 있을 텐데 잠시라도 만나 헤아려 주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낫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멀리 있어도 표현하지 않아도 늘 서로를 생각해 주는 가족이 있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