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라는 이름은 '벙어리 고양이'에서 따온 '벙고'가 발음 상 편하도록 변형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름 짓는 게 '목소리'의 일관된 취향인 듯했다. 아직 봉고는 만나보지 못했지만 이 집에는 봉고 외에도 '애쿠'와 '꼬꼬' 라는 고양이들과 '뚜기'와 '맹추'라는 개들이 살고 있었다.
[애쿠]는 [애꾸눈 - 애꾸 - 애쿠]가 된 것이고,
[꼬꼬]는 [코스트코 - 코코 - 꼬꼬]가 된 것이며,
[뚜기]는 [바둑이 - 두기 - 뚜기]가,
[맹추]는 [맹한 시츄 - 맹츄 - 맹추]가 된 것이다.
지금 봉고는 피부병이 다 낫지 않아서 '목소리'의 작업실에 격리되어 있는 중이었다. '목소리'는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다가 봉고가 잠에서 깨어나자 번쩍 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봉고, 일어났니?]
목소리가 부드럽게 물었다. 봉고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들고 있던 연필을 내려놓고 커다란 손으로 봉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봉고는 앞에 놓인 연필을 손으로 툭툭 쳐 보았다.
[나는 지금 일하는 중이야. 그러니 방해하면 안 돼.]
'목소리'가 말했다. 봉고는 연필과 '목소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는 작가란다.]
작가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너만 알고 있으렴. 아무도 날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나를 작가라고 소개하는 건 염치없고 무모한 짓이지.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나를 작가라고 소개한 적이 없어. 그건 나를 백수라고 소개하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니까.]
작가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벌써 10년째 글을 쓰고 있단다. 하지만 출판사들은 내 글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데. 대중성, 참신성, 일상성 따위의 얘기를 하더군. 인터넷에도 글을 올려봤지만 조회수가 영 신통치 않아. 아마 난 작가로서 별 재능이 없는 모양이야.]
봉고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충고하더구나.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에 대한 글을 좋아하니까 그런 걸 좀 써보라고 말이야. 요즘 유행이라나. 그거야말로 대중적이고, 참신하고, 일상적이라는 거지. 그래서 나는 지금 고양이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중이야. 그림도 좀 곁들여서. 그런데 말이야, 사실 너에게 양해를 좀 구할 게 있단다. 내 글에 나오는 주인공이 바로 너거든.]
봉고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미리 경고하는데, 네게는 초상권이나 저작권 따위의 주장을 할 권리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네 치료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 네가 안다면 너도 이 정도 협조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거야. 네가 먹는 사료며 캔, 간식도 하늘에서 기적처럼 뚝딱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니거든.]
봉고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아이구, 사실 난 동물 따위는 기르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다섯 마리나 되다니.]
작가는 크게 한 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뒤섞여 있는 종이들 사이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봉고에게 보여주었다.
[자, 이게 너란다. 마음에 드니?]
봉고는 종이 속에 그려진 검은 새끼 고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림 속 고양이는 마치 실로 꿰맨 것처럼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네가 사람 말을 단 한마디라도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배고파요"라던가, "주인님" 이라던가, "고양이"라던가, 하다못해 "야옹'이라고 말이야. 그럼 우린 돈방석에 앉게 될 테고, 내가 이 고생은 안 해도 될 텐데.]
작가는 또 한숨을 푹 쉬었다.
[하지만 세상에 기적은 없단다. 내가 재능 없는 작가인 것처럼 너도 벙어리 고양이일 뿐이지.]
작가는 봉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봉고는 사각사각 움직이는 연필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작가 곁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