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고양이 봉고 - 5

by 곡도




방을 빠져나온 봉고는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기하학적이고 견고한 정체불명의 구조물들을 - 텔레비전, 냉장고, 싱크대 등등을 -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세 마리의 동물들이 떡하니 봉고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봉고를 에워싸고서 다들 한 마디씩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작가 말로는 벙어리라고 하더군. 희한한 일이야.] 얼룩 고양이가 말했다.


[그건 희한하다고 하는 게 아니야. 불행하다고 하는 거지.] 애꾸눈 고양이가 불쾌하다는 듯 핀잔을 주었다.


[그래, 그래. 벙어리라니, 정말 불행한 일이군.] 얼룩 고양이가 얼른 다시 고쳐서 말했다.


[하지만 본인은 별로 불행해 보이지 않는데.] 덩치 큰 개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봉고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자기 자신이 불행한 줄 모르는 건 흔한 일이지.] 애꾸눈 고양이가 말했다.


[어쨌거나 앞으로 우리만 엄청 불편하게 생겼어.] 얼룩 고양이가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작가는 신경 쓰지도 않겠지.] 덩치 큰 개가 말했다.


[우리가 아무리 불평을 해도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애꾸눈 고양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침울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봉고는 그런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 그거 알아? 아주 오래전에 사람들은 오직 한 가지 언어만 썼었데.] 갑자기 애꾸눈 고양이가 쾌활하게 말했다.


[한 가지 언어라니?] 덩치 큰 개가 말했다.


[지금 사람들은 우습게도 사는 곳마다 쓰는 말이 다 다르잖아.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같은 것들 말이야. 심지어 그들은 개들도 다 다르게 짖는다고 믿지. 멍멍, 바우와우, 왕왕.... (덩치 큰 개가 소리내어 웃었다.) 그런데 원래 사람듣은 모두가 같은 언어를 썼다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신이 나타나서 이들의 언어를 여러 개로 찢어 놓았데. ] 애꾸눈 고양이가 대답했다.


[신이 왜 그런 거야?] 얼룩 고양이가 물었다.


[사람들이 너무 싸웠기 때문이야. 모두 같은 언어로 말하니까 오히려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거지. 말장난과 기만과 사기와 비난과 오해가 판을 쳤데. 하지만 언어가 갈라진 후,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몰라. 만약 우리가 하는 말을 시시콜콜 알아들었다면 우리에게 애정을 갖기는커녕 증오하거나 경멸하게 되었을 걸. 사람들이 서로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말이야.] 애꾸눈 고양이가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봉고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 애는 행운아인 셈이군.] 덩치 큰 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가장 사랑받을 거야.] 얼룩 고양이가 말했다.


[때로는 불행이 행운이 되는 법이지.] 애꾸눈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서로 통성명은 해야지. 안녕, 봉고. 나는 꼬꼬야.] 얼룩 고양이가 인사했다.


[꼬꼬라는 이름은 코스트코에서 딴 거야. 작가가 코스트코 주차장에서 나를 발견했거든.] 꼬꼬가 겸손하게 덧붙였다.


[아, 꼬꼬는 자신이 대형 쇼핑몰 출신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어.] 애꾸눈 고양이가 놀리듯이 말했다.


꼬꼬는 눈썹을 치켜뜨며 얼굴을 붉혔고, 덩치 큰 개는 그래도 쇼핑몰을 탐험한다는 건 대단한 경험이라며 꼬꼬를 치켜세웠다.


[안녕, 나는 뚜기야.] 덩치 큰 개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바둑이에서 딴 이름이지. 뭐, 별 뜻은 없어.] 뚜기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 애쿠야. ] 애꾸눈 고양이가 말했다.


[보다시피 애꾸눈이기 때문이야. 다른 장점은 다 놔두고 하필이면 장애를 가지고 이름을 짓다니, 작가는 정말이지 고약한 취향을 가졌어. 널 봐. '봉고'라니. 벙어리 고양이라는 뜻이잖아. 정말 우스꽝스럽지.]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뚜기가 말했다.


[엄청나게 중요해, 바보야. 누구나 이름 이상은 될 수 없는 거야.] 애쿠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넌 얘를 바보라고 부르는구나.] 꼬꼬가 애쿠에게 핀잔을 주었다.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증거가 있어.] 뚜기가 힘을 주어 말했다.


[맹추의 이름은 맹한 시츄라는 뜻이지만 맹추는 결코 맹하지 않단 말이야. ]


[아, 그건 순전히 나이 때문이야. 나이를 많이 먹으면 점점 이름에서 해방되니까.] 애쿠가 말했다.


[아니야. 맹추는 원래부터 맹하지 않았을 거야.] 뚜기가 주장했다.


[쯧쯧, 시츄는 모두 맹하단다. 그렇지 않으면 시츄가 아니지. 네가 결국 개이고 내가 결국 고양이인 것처럼 말이야.] 애쿠가 우겼다.


[하지만 나도 개처럼 한 다리를 들고 오줌을 싸는 걸.] 꼬꼬가 수줍게 말했다.






[어쨌거나 우리 중에 순종은 맹추밖에 없어.] 뚜기가 강조했다.


[세상에, 순종이 뭘 어쨌다는 거야. 순종이란 끝없는 동종교배로 만들어낸 괴물이야. 괴물이 예쁘게 생겼다고 해도 괴물은 괴물인 거지.] 애쿠가 말했다.


[맹추에게 괴물이라고 하다니, 너무하잖아.] 꼬꼬가 외쳤다.


[맹추가 아니라 순종이 그렇다는 거야. 아니 아니, 인간의 미학적 집요함, 그거야 말로 진짜 괴물 중에 괴물이지.] 애쿠가 재빨리 변명했다.


그때 봉고가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 봉고. 혹시 맹추를 찾고 있니?] 꼬꼬가 물었다.


[맹추는 안방에서 쉬고 있어.] 뚜기가 말했다.


[같이 맹추를 보러 갈까?] 애쿠가 물었다.


봉고는 조용히 애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keyword
이전 04화벙어리 고양이 봉고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