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고양이 봉고 - 6

by 곡도



애쿠, 뚜기, 꼬꼬가 앞장서서 줄지어 걸어가고 봉고는 그들의 뒤를 잰걸음으로 따라갔다. 하지만 자꾸만 뒤로 쳐저서 애쿠, 뚜기, 꼬꼬는 두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봉고를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안방으로 들어서자 모두들 자신도 모르게 발자국 소리를 죽였다. 안방에 있는 작가의 침대 옆에는 푸른색에 노란색 점박이가 있는 크고 푹신한 방석이 놓여있고 그 위에 하얀색 털 뭉치 같은 게 보였다.


[저기 맹추가 있어.] 애쿠가 속삭였다.


[맹추는 늘 저기 있지.] 뚜기가 속삭였다.


[대부분은 잠을 자고 있어.] 꼬꼬가 속삭였다.


봉고는 하얀색 털 뭉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털 뭉치는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봉고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뭘 보고 있는 거야?] 뚜기가 물었다.


[숨을 쉬는 모습이 신기하니?] 꼬꼬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건 나도 할 수 있는데.] 뚜기가 크게 숨을 들이키며 자신의 가슴을 부풀려 보였다.


[작가도 가끔씩 맹추가 숨 쉬는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고 있던데 말이야.]


애쿠는 탐정처럼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서 맹추가 숨 쉬는 모습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실은 뭘 보아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모두들 꼼짝하지 않고 맹추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침내 꼬꼬가 꽥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아주 작은 소리였다.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거지?] 꼬꼬가 외쳤다.


[맹추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지.] 뚜기가 말했다.


[하지만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잖아.] 꼬꼬가 말했다.


[맹추를 깨우자.] 애쿠가 말했다.


[안 돼. 작가가 싫어할 거야. 맹추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어.] 뚜기가 반대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괜찮을 거야. 봉고를 맹추에게 소개해줘야 하니까.]


애쿠는 맹추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이봐, 맹추. 일어나 봐.]


하지만 맹추는 여전히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맹추, 일어나.] 애쿠가 더 큰소리로 말했지만 맹추는 여전히 꿈나라였다.


[잠깐만 일어나 봐. 우리가 왔어.]


애쿠가 더 큰 소리로 말했지만 소용이 없자 보다 못한 뚜기가 커다란 코로 맹추의 엉덩이를 슬쩍 밀었다. 마침내 하얀 털 뭉치가 꿈틀거리더니 털이 부스스한 머리가 솟아올랐다.



[무슨 일이지? 이제 때가 되었나?] 맹추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때 말이야?] 애쿠가 물었다.


[그때 말이야.] 맹추가 말했다.


[그때 라니?] 꼬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맹추가 부르르 떨며 외쳤다.


[잠이 덜 깬 모양이군. 꿈을 꾼 모양이야.] 뚜기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 아직은 아닌 모양이네.] 맹추가 한숨인지 안심인지 모를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안녕, 맹추.] 애쿠와 뚜기와 꼬꼬가 동시에 인사를 했다.


[안녕, 얘들아.] 맹추가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애쿠가 말했다.


[그런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너무 오래 잠들었었나 봐.] 맹추가 말했다.


[왜 매일 잠만 자는 거야?] 꼬꼬가 물었다.


[난 연습하는 중이야.] 맹추가 대답했다.


[연습이라니? 무슨 연습?] 공놀이든 숨바꼭질이든 연습하기를 좋아하는 뚜기가 물었다.


[잠을 자는 연습이지.] 맹추가 말했다.


[잠을 자면서 잠을 자는 연습을 한다는 거야?] 애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아. 잠자는 데 익숙해져야 하니까. 나는 곧 아주 오랫동안 잠을 자야 하거든. 그런데 혹여나 익숙해지지 않을까봐 걱정이야.]


맹추는 울적하게 고개를 숙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외쳤다.


[아이쿠, 저 시커먼 건 뭐야? 내가 헛게 보이는 건가?]


[아아, 아니야. 작가가 또 어디선가 한 놈을 데려왔지 뭐야.]


애쿠가 봉고를 슬쩍 앞으로 떠밀며 말했다.


[맨날 우리 때문에 돈이 없다고 투털 대면서.] 꼬꼬가 새침하게 말했다.

[지금도 집이 좁은 데 말이지.] 뚜기 역시 툴툴거렸다.


[자 자, 어쨌거나 이 애는 봉고라고 해.] 애쿠가 봉고를 소개했다.


[안녕, 봉고. 나는 맹추라고 한단다.]


맹추가 부드럽게 말했다. 봉고는 커다랗게 눈을 뜨고 맹추를 바라보았다.


[아, 봉고는 벙어리라 말을 할 수가 없데.] 뚜기가 얼른 말했다.


[그래? 어쩌다가 어린 나이에....] 맹추가 말끝을 흐리다가 문득 감탄하며 말했다.


[세상에, 너 정말 어리구나.]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꼬꼬가 말했다.


[우리 모두 새끼일 때가 있었잖아.] 뚜기가 뒷발로 귀를 긁으며 말했다.


[맹추 너도 당연히 새끼일 때가 있었을 텐데.] 애쿠가 말했다.


[맞아. 그런 때가 있었지. 있었을 거야. 아마도.]


맹추가 감탄인지 한탄인지 알 수 없는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보다시피 이렇게 걷지도 못하고, 앞도 잘 보이지 않고, 기저귀나 차고 있어야 하는 신세지.]


모두들 어색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그때 봉고가 크게 하품을 하더니 푸른색 방석을 기어올라가 맹추 옆에 웅크리고 자리를 잡았다.


[아, 봉고가 졸려운 모양이네.] 애쿠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자면 안 돼. 맹추가 불편할 거야.] 꼬꼬가 지적했다.


[내가 옮겨 줄게.] 뚜기가 봉고의 목덜미를 물려고 하자 맹추가 말렸다.


[아니야. 그만둬. 어차피 나는 잠이 들면 옆에 봉고가 있는지도 모를 텐데, 뭘. 그리고 이렇게 붙어 자다 보면 나도 봉고가 꾸는 꿈을 같이 꿀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럼 꿈속에서라도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신비와 모험이 가득한 세상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볼 수 있겠지. 세상은 넓어, 시간은 많아, 산다는 건 신나고도 두려운 일이야, 절대 시시한 결말은 없어,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맹추는 피곤한지 다시 고개를 밑으로 떨구었다. 애쿠와 뚜기와 꼬꼬는 맹추가 쉴 수 있도록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봉고는 벌써 맹추의 품 안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맹추는 봉고의 귀에 대고 가만히 속삭였다.


[잘 자라, 아가야. 그리고 혹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네가 어느새 폭삭 늙어있더라도 너무 놀라지는 마렴. 나도 잠에서 깰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하거든. 시간은 너무 빠르단다.]


그리고 맹추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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