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봉고를 이동 가방에서 꺼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봉고는 눈을 꿈벅이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주변에는 갈색 푸들과 하얀색 포메라니안, 종을 알 수 없는 커다란 개, 유모차에 들어있는 노란색 바탕에 흰색 줄무늬 고양이, 거기다가 금색 철장에 든 살구색 머리의 노란 앵무새도 있었다. 노란 앵무새는 다리에 감긴 하얀 붕대를 부리로 쪼아대고 있었다.
[여기는 동물 병원이란다.]
작가가 속삭였다.
[넌 기억나지 않겠지만 네가 많이 아플 때 3번이나 왔었어.]
봉고는 기억이 나는 것인지 아니면 낯설어서 인지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불안해할 거 없어.]
작가는 봉고를 품에 안았다.
[의사 선생님은 병을 낫게 해 주시는 분이니까.]
그러더니 작가는 얼굴을 바짝 봉고에게 붙이고 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의사들을 너무 믿어선 안돼. 그들은 친절한 것만큼이나 냉담한 사람들이거든.]
작가는 지나가는 간호사 눈치를 살피느라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계속했다.
[그들은 네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너무 서운해하지 마. 사람의 의사들은 더 지독하니까. 친절하지도 않고 냉담하기만 하지.]
작가는 봉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리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지 3개월 만에 돌아가셨는데 말이야, 의사들이 자신을 짐승 취급한다며 3개월 내내 노발대발하셨지.]
봉고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병원이란 사람을 짐승 취급하고 짐승을 사람대접하는 곳이란다. 죽음 앞에서는 사람과 짐승의 차이 같은 건 무의미하거든.]
그 때 갑자기 앵무새가 큰 소리로 꽉꽉 거렸다. 앵무새는 노란색 날개를 후드득 치며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를 반복해서 떠들었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봉고 보호자님 들어오세요.]
의사의 호출에 작가는 허둥지둥 봉고를 안고 진찰실로 들어갔다.
[봉고가 그동안 많이 컸네요. 밥은 잘 먹나요?]
[네, 잘 먹고 잘 쌉니다.]
[피부병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이제 피부병 치료는 그만해도 되겠어요.]
작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럼 이제 다 완치된 건가요?]
[그게, 사실, 곰팡이성 피부병에 완치란 없어요.]
[완치가 없다구요?]
작가가 미간을 찡그리며 외쳤다.
[평생 균을 몸에 가지고 살아가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그러다가 몸이 약해지면 다시 발병할 수도 있구요. 그러니까 계속 관찰하고 신경을 써 주셔야 돼요.]
[평생이요? 아니, 피부병이 무슨 심각한 불치병도 아닌데 완치가 안된다니,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작가의 미간이 더 구겨졌다.
[원래 그래요. 어쩔 수가 없어요.]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돌았다. 마침내 의사가 입을 열었다.
[오늘 접종도 하는 게 좋겠어요. 괜찮으시죠?]
[너무 이른 게 아닐까요?]
[아니에요. 지금쯤 하는 게 좋아요.]
[에에, 알겠습니다.]
[저, 그럼, 바깥에서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작가가 나가고 봉고와 의사는 진찰실에 단둘이 남았다. 의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거 알고 있니? 네 주인은 의심이 너무 많아. 내 얼굴을 흘끗흘끗 쳐다보면서 내 말에 숨은 뜻이 뭘까 음흉하게 궁리하지. 그런데 그건 네 주인만 그런 건 아니야. 병원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단다. 그들은 의사들이 자신들을 바보 취급한다고 생각해. 무언가를 감추거나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뭐,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지만, 문제는 의사가 자신들에게 믿음을 주기를 기대한다는 거야. 세상에, 믿음이라니. 의사가 성직자도 아닌데. 의사도 생명의 주변을 맴돌고 있을 뿐인데. 내가 아는 암병동 의사는 환자들에게 늘 말하곤 하지. 나한테 살려달라고 하지 마세요. 나는 죽음이 아니라 암과 싸우고 있는 것 뿐입니다. 휴우, 사람들은 알아야 해. 오늘날 의사도 그들과 똑같이 기만적인 소시민이자 이기적인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걸. 세상에, 심지어 요즘은 성직자도 다를 게 없는걸.]
봉고는 의사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의사는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봉고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붉은 액체가 들어있는 커다란 주사기를 등 뒤에서 꺼냈다.
[자, 조금 아플 거야. 하지만 참아야 해. 앞으로는 이보다 더 아픈 일도 종종 있을 테니까.]
그리고는 아무런 경고도 없이 봉고의 목덜미에 커다란 주사기 바늘을 꽂아 넣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봉고는 털이 쭈뼛 솟구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봉고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