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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Nov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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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왕자는 도시의 수많은 길들을 며칠 동안이나 헤매고 다녔다. 이토록 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에 어린왕자는 아연실색했다. 길이라는 건 편의시설이기보다는 통제수단으로 보였고 도시는 마치 거대한 벌집과도 같았다. 일벌은 자신이 일벌인 것이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믿고 있을까. 마치 자신이 벌인 것조차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어린왕자는 지하 연구소에 있을 때보다 세상이 더 좁게 느껴졌다.


     마침내 어린왕자는 도시의 한 외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어린왕자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녕.”


     어린왕자가 말했다.


     “안녕.”


     사람들이 대꾸했다. 모두가 회색빛 살갗에 우울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어린왕자가 물었다.


    “의논하고 있어.”


     사람들이 대답했다.


    “뭘 의논하고 있는데?”


    “어떻게 죽을까 의논하는 중이야.”


    “죽는다고?”


    어린왕자가 외쳤다.


    “왜 죽으려는 건데?”


    “아아, 그건 어려운 질문이야.”


    한 사람이 대답했다.


    “별로 상관없는 질문이기도 하지.”


     또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중요한 건 결심했다는 거야.”


    어린왕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뭐든지 이유가 있기 마련이잖아.”


     그러자 사람들은 와락 웃음을 터트렸다. 그중 몇몇은 너무 오랜만에 웃은 탓에 사래가 들려 기침을 콜록거리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간신히 기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 이유 역시 매우 혼미하기 때문이지.”


    “무슨 뜻이야?”


     “우리가 죽으려는 건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인 데 살아있는 것에는 이유가 없거든.”


     “그러니 이유 없이 죽는 게 이유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더 이상한 일도 아니지.”


    “하지만 인간에게는 의지가 있잖아.”


    어린왕자가 항의했다. 그러자 모두 다시 웃음을 터트릴 것처럼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나 정작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누군가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의지, 그것은 결국 자살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일 뿐이야.”


    그리고 그들은 다시 둥그렇게 모여 앉아 어떻게 자살하는 게 좋을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어린왕자는 그들의 등 뒤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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