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는 거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다. 아까부터 봉고를 보고 있던 애쿠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니?]
봉고는 물끄러미 애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집이 너무 넓어서 그러니?]
봉고는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래, 처음에는 그럴 만도 하지.]
애쿠가 어깨를 으쓱했다.
[천정은 까마득히 높은 것 같고, 벽 뒤에 또 벽이 있는 방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지. 도대체 이 넓고 복잡한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한 기분이 들 거야.]
애쿠는 자신이 처음 이곳에 도착했던 그 옛날에 얼떨떨하게 주변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째서 세상이 이토록 넓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
봉고도 애쿠를 따라 또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애쿠는 그런 봉고를 보며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봉고야. 사실을 말하자면, 이곳은 고작 작은 방 두 개에 화장실 하나, 부엌 겸 거실이 딸린 오래된 1층 연립주택일 뿐이야. 소위 '서민주택'이라는 곳이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우리의 야생 본능을 생각할 때 이곳은 턱없이 좁은 곳이란다.]
봉고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세상에, 이 좁은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다니.]
애쿠가 한탄했다.
[텔레비전을 보면 어마어마하게 넓은 집에서 사는 고양이들도 많던데. 누가 우리를 주웠느냐에 따라 팔자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고 만 거지.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 말이야. 사소한 우연이 결정적인 운명이 되어버리고 만거야. 가끔 나는 이런 상상을 하곤 해. 길거리를 떠돌고 있던 나를 벤츠를 몰고 가던 억만장자가 발견하고 차를 세우는 거야. 그리고는 자신이 입고 있던 밍크코트를 벗어서 나를 소중하게 감싸 안고는 궁전 같은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는 거지. 드넓은 거실과 번쩍이는 부엌, 수십 개의 방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그런 집 말이야. 그럼 평생 모험을 하며 살 수 있을 텐데. 지루하지 않은 멋진 인생이 되었을 텐데.]
애쿠는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나를 주워온 건 아무도 보지 않는 글 나부랭이나 쓰고 있는 가난뱅이 작가였지. 앞으로 더 큰집으로 이사 갈 희망 따위는 조금도 없는. 그게 내 팔자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좀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야. 어쨌거나 나에게도 단 한 번뿐인 삶이니까.]
봉고는 애쿠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뭐, 너무 나쁜 쪽으로만 생각할 건 없어.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 익숙해질 거야.]
애쿠가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어느새 이 작은 집이 내게 딱 맞는 옷인 것처럼 느껴지지. 멋지지도 흥미롭지도 않지만 편안한 옷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애쿠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 보였다. 봉고는 그런 애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자, 내가 쓸데없는 얘기를 한 것 같구나. 넌 벌써부터 그런 걸 알 필요가 없단다. 없고 말고. 지금은 이 넓고 불가해한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니렴. 새로운 곳을 발견하고 하나씩 정복해 나가는 거야. 그게 바로 어린 고양이의 특권이니까.]
애쿠는 봉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는 냉장고 옆에 놓인 빨래 바구니 속에 들어가 한 숨 늘어지게 자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문득 봉고를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지는 마. 시간은 아주 충분하니까.]
그리고는 크게 하품을 하며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