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고양이 봉고 - 9

by 곡도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났는데도 낮에 외출했던 작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각자 구석에서 자신만의 소일을 하고 있던 동물들은 해가 지시 시작하자 하나둘씩 거실로 모여들었다. 결국 맹추만 빼고는 모두 거실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앉아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배가 고팠다. 일단 배가 고파지자 몹시도 배가 고팠다. 그러나 허기보다 더한 불안이 점점 그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모두들 시무룩해져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봉고는 소파 밑에 굴러들어간 털실 뭉치를 꺼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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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매우 드문 일인데.]


마침내 꼬꼬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의 식사 시간을 2시간쯤 지나고 있을 때였다.


[맞아. 이렇게 늦는 법은 없는데.]


뚜기가 귓가를 긁으며 말을 받았다.


[사실 작가가 외출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긴 하지.]


애쿠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방금 자신이 한 말이 농담인지 푸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잠시 모두들 침묵했다.


[나는 말이야, 작가가 집을 나설 때마다 혹시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꼬꼬가 조심스럽게 말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마치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는 듯이 말이다.


[난 종종 꿈도 꾸는 걸. 집을 나간 작가가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꿈 말이야.]


뚜기가 고백했다. 그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쩌면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질지도 모르지.]


애쿠가 최대한 태연하고 공정한 척하며 말했다. 하지만 수염이 저절로 뻣뻣하게 치솟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아아,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정말 작가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면?]


꼬꼬가 소스라쳐서 소리쳤다.


[말도 안 돼. 왜 작가가 집에 돌아오지 않겠어?]


뚜기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의 꿈이 떠올라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뭐, 그거야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사고는 늘 있기 마련이니까.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어디에 갇혔거나, 싸움에 휘말렸을 수도 있고, 그래서 병원에 입원했거나, 오랫동안 의식이 없거나..... 어쩌면 죽었을지도 몰라.]


애쿠가 최대한 건조하게 말했다.


[작가가 죽는다고? 말도 안 돼.]


뚜기가 외쳤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작가는 결코 죽지 않아. 왜냐하면, 왜냐하면, 죽지 않을 거니까.]


뚜기의 격한 반발에 애쿠는 자신이 좀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뭐, 그럼 죽는 건 빼도록 하지. 어쨌든 다른 것들은 여전히 가능성이 있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어디에 갇혔거나, 싸움에 휘말렸거나, 병원에 입원했거나, 오랫동안 의식이 없거나......]


[그래도 죽지는 않아.]


뚜기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하지만 만약 작가가 정말 돌아오지 않으면 우린 어떻게 하지?]


꼬꼬는 이제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고 있었다. 모두들 눈동자만 굴렸다. 작가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 우리는 이대로 굶어 죽는 걸까?]


뚜기가 겁에 질려서 말했다. 지금도 배가 너무 고팠다. 굶는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죽을 정도로 굶는다는 건 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 걸까?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애쿠가 손등으로 턱을 괴며 진지하게 말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애쿠를 바라보았다.


[우리 중 하나를 잡아먹을 수밖에.]


꼬꼬와 뚜기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방금 자신이 옳게 들은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들도 오래전 자신들의 조상들이 사냥을 해서 먹고살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개가 고양이를 먹고 고양이가 개를 먹고 또 스스로의 종족을 잡아먹었다지. 그러나 그것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시절의 일이었다. 지금은 문명시대가 아닌가. 애쿠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다 같이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인간들도 그러는 걸. 극한의 상황이 되면 인간들도 서로를 잡아먹지. 바다에서 조난을 당하거나, 비행기 사고로 고립되거나, 전쟁이 나서 식량이 떨어지면.... 텔레비전에서 봤어.]


꼬꼬와 뚜기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다고? 그렇다면 고양이가 개를, 개가 고양이를, 스스로의 종족을 먹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 없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만약 인간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리고는 동시에 외쳤다.


[그럼 누구를 잡아먹지?]


모두들 자신도 모르게 봉고를 바라보았다. 봉고는 소파 아래에서 꺼낸 털실 뭉치를 가지고 놀고 있다가 - 하지만 보기에는 털실 뭉치가 봉고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것 같았다 - 어리둥절한 얼굴로 모두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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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하지만 봉고는 너무 작고 살도 거의 없는 걸.]


뚜기가 말했다. 꼬꼬도 동의했다.


[그건 그래. 먹을 게 별로 없을 거야.]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봉고는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다시 털실 뭉치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럼, 맹추는 어때?]


애쿠가 말했다. 모두들 맹추가 자고 있는 안방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확실히 손쉬운 방법이긴 하지.]


꼬꼬가 말했다.


[더구나 나이가 많으니 좀 덜 억울할 거야.]


뚜기가 말했다.


[그럼 맹추로 정하기로 할까?]


애쿠가 마치 재판관이라도 되는 것 같은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저 가늘고 긴 털 때문에 먹기가 상당히 힘들 거야. 게다가 저번에 목욕할 때 보니까 털 빼면 살집이 얼마 있지도 않더라구. 뼈가 앙상해.]


꼬꼬가 황급히 말했다. 뚜기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게다가 맹추가 매일 먹는 약이 5-6가지나 되잖아. 분명 고기에서 쓴 가루약 맛이 날 거야. 도저히 먹을 수가 없을 걸.]


그러자 애쿠가 한숨을 쉬더니 뚜기에게 말했다.


[그럼 할 수 없이 네가 우리를 위해 희생해야겠구나.]


[나? 아-니 어째서?]


뚜기가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네가 덩치가 제일 크고 고기가 제일 많으니까. 이 정도 양이면 우리 모두 꽤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거야. 이왕이면 하나의 목숨으로 많은 고기가 생기면 좋은 거잖아? 인간들은 그걸 '가성비'라고 하더군.]


애쿠의 말에 꼬꼬가 얼른 끼어들었다.


[아니, 오히려 그게 문제가 아닐까? 그 많은 고기를 냉장고에 넣을 수도 없는데 어쩔 셈이야? 먹고 남은 고기가 금세 썩어버리고 말 텐데, 그럼 그 고약한 냄새 때문에 숨도 쉬지 못할 거라구.]


일리가 있는 말이어서 모두 주춤거렸다. 애쿠가 다시 말했다.


[그럼 꼬꼬 널 먼저 잡아먹는 게 좋겠다. 크기도 적당하고 늘 몸을 핥아서 청결하게 몸을 유지하니 먹기에 딱 좋을 거야. 게다가 대형 마트 출신이니까 모두의 식량이 되어 주는 게 자신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도 아니잖아?]


이번에는 뚜기가 손사래를 쳤다.


[무슨 소리야. 꼬꼬가 늘 몸을 핥는 건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이야. 꼬꼬의 고기를 먹으면 모두 알레르기에 걸릴지도 몰라. 난 지금도 몸이 근질근질한데 알레르기까지 걸리면 피가 날 때까지 긁어야 할 거야.]


이번에도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꼬꼬와 뚜기의 시선이 애쿠에게 모아졌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애쿠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물론 너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지. 당장에라도 말이야. 하지만 너희도 모두 알다시피 내가 지독한 변비잖아. 지금 똥이 장에 꽉 차있는 상태란 말이야. 잘못하면 모든 게 범벅이 되어 버려서 밥맛이 뚝 떨어져 버릴 걸.]


모두들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침묵했다. 아직도 작가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를 잡아먹어야 할 거야.]


꼬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5마리에서 4마리가 되고, 4마리에서 3마리가 되고, 3마리에서 2마리고 되고.....]


뚜기가 말했다.


[결국 혼자 남게 되겠지.]


애쿠가 말했다.


[혼자 남게 되면 대체 뭘 해야 하지?]


꼬꼬가 물었다. 애쿠가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듯이 어깨를 흔들며 대답했다.


[당연히 작가를 기다려야지. 작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지. 이제까지 우리가 매일 해온 것처럼 말이야. 마지막 그 순간까지.]


모두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계속 기다릴 거라고 생각하니 자신이 먼저 잡아먹힌다 해도 크게 억울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기다림은 삶보다도 죽음보다도 더 본질적이며 실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봉고에게 첫 번째 희생자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떨까?]


뚜기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야. 봉고가 선택하면 아무도 반박할 수 없을 거야. 왜냐하면 봉고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


꼬꼬도 찬성했다. 애쿠도 눈썹을 찡긋했다. 모두가 봉고를 바라보았다. 봉고는 털실에 온통 휩싸여 있다가 또다시 모두의 시선을 느끼고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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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야, 우리 중에 누구를 먼저 먹는 게 제일 좋겠니?]


애쿠가 물었다. 봉고는 반짝이는 동그란 눈으로 그들을 하나씩 하나씩 바라보았다. 마치 각각의 맛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숨을 멈추고 꼼짝도 하지 않는 가운데 마침내 봉고가 어깨를 으쓱하는 순간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작가가 뛰어들어왔다.


[아, 미안. 미안. 너무 미안해. 계속 기다렸지? 고속도로가 어찌나 막히던지 제시간에 올 수가 없었어. 배고프겠다. 지금 빨리 밥 줄게.]


모두들 작가에게 우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들이 나눈 얘기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모두 신이 나서 작가를 따라 부엌으로 몰려갔다. 그날 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특별히 간식까지 두둑이 얻어먹은 그들은 만족스럽게 잠자리에 들었고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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