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 봉고, 봉고가.... 탈출했어-]
어느 화창한 아침, 창가에 앉아 부지런히 꼬리 털을 고르고 있던 꼬꼬가 갑자기 소리를 꽥 질렀다. 애쿠와 뚜기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정말 창밖 담장 위에 봉고가 앉아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탈출한 거지?]
애쿠가 외쳤다.
[빨리 데리고 와야 해.]
뚜기가 허둥지둥 주위를 둘러보면서, 그러나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외쳤다.
[하필 작가도 집에 없는데.... 이를 어쩌나.]
꼬꼬가 맞잡은 두 손을 쥐어짜며 말했다. 모두들 발을 동동 구르며 봉고를 소리 높여 불렀다. 그러나 봉고는 그런 그들을 멀끔히 보고만 있었다. 마치 낯선 이들을 바라보듯이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손짓발짓 해가며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던 그들은 문득 또 다른 누군가가 그들 사이에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들은 슬그머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봉고였다. 그들 옆에서 봉고가 눈을 빛내며 창밖의 봉고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들 와악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만약 한밤중이 었다면 공포에 질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봉고가 둘이라니.]
꼬꼬가 자신들 옆의 봉고와 창 밖의 봉고를 번갈아 바라보며 외쳤다.
[도플갱어인가?]
애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모두들 '도플갱어'라는 말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그런 걸 일일이 따질 정신이 없었다.
[봉고에게 초능력이 있나 봐.]
뚜기가 몸을 부르르 떨며 봉고에게서 슬쩍 한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혼란스러워진 그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마침내 애꾸가 입을 열 때까지 말이다.
[저건 봉고가 아니야.]
애쿠가 손가락을 들었다. 모두들 애쿠의 손가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손가락끝이 창밖의 봉고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니라고?]
모두들 외쳤다.
[하지만 이렇게 똑같이 생겼는 걸.]
꼬꼬가 두 봉고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언뜻 그렇게 보이지만 잘 봐. 입 모양이 조금 다르잖아.]
애쿠의 지적에 모두들 다시 한번 창 밖의 봉고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정말 봉고와는 입모양이 조금 달랐다.
[휴우, 그렇구나. 다행이다.]
뚜기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이 너무 호들갑을 떤 것 같아 내심 부끄러웠다.
[그나저나 정말 똑같이 생겼는 걸. 이상할 정도로 말이야.]
꼬꼬가 눈을 깜빡이며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 행동을 멈출 수 없는 모양이었다. 봉고도 창밖의 고양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도 저건 봉고의 형제일 거야.]
애쿠가 턱을 괴고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이도 비슷한 데다가 이렇게 꼭 닮은 고양이가 같은 장소에서 발견될 확률은 매우 적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애쿠의 합리적인 설명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 봉고는 하수구에 빠지는 바람에 형제들과 헤어져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거야.]
뚜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만약 봉고가 하수구에 빠지지 않았다면 진짜 봉고가 지금 창밖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몰라.]
꼬꼬가 창밖의 고양이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일이 조금 다르게 풀렸다면 저 둘의 운명이 바뀌었을지도 모르지.]
뚜기가 입술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사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만약 일이 조금 다르게 풀렸다면 우리야말로 저곳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걸.]
애쿠가 말했다. 모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들 자신들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의 고양이들의 수명은 평균 5년 정도밖에 안된데. 집안에서 사는 고양이들 수명은 평균 15년이나 되는 데 말이야.]
꼬꼬가 애써 고개를 치켜들며 기운차게 말했다. 그러자 뚜기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얼마나 오래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바깥의 5년은 분명 모험과 사건들로 빈틈없이 꽉 차있을 거야.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아야 할 걸. 하지만 우리는 그저 온전하고 게으르게 살아있을 뿐, 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야. 가끔은 머리가 멍해지면서 내가 누구인지 조차 무색해진다니까. 그걸 15년 동안이나 계속하는 거야. 마치 100년과도 같은 15년 동안. 과연 우리가 저들보다 더 오래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애쿠와 꼬꼬는 뚜기가 그토록 길게 말하는 것에 한 번 놀라고, 그 말의 깊이에 두 번 놀랐다. 뚜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사실 뚜기 자신도 몰랐다. 그런데 입을 여니 이상하게도 그런 말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들 침울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애쿠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 우리의 15년도 나름의 의미가 있어. 이 안에서도 모험과 사건들이 가득하다고.]
[정말?]
뚜기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예를 들면?]
꼬꼬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그래, 고양이와 개가 친구가 된다는 걸 저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이보다 극적인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15년은 정말이지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없었다.
그 사이 봉고는 창밖의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의 고양이도 봉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똑같이 닮은 둘은 잠시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때 창밖의 고양이가 '야~옹~'하고 큰 소리로 울더니 담벼락을 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봉고는 그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