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고양이 봉고 - 11

by 곡도



후덥지근한 저녁, 작가는 개들과 고양이들의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다섯 마리의 메뉴가 각각 달랐기 때문에 꽤나 신경 쓰이는 작업이었다. 식사 준비가 거의 끝나갈 무렵 별안간 창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거칠게 싸우는 소리였다. 작가는 얼른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길고양이 밥 주는 사람과 동네 사람이 또 싸우는구나.]


작가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저 난리를 친다니까. 온 동네가 시끄럽게 말이야. 둘 다 절대 고집을 꺾지 않아. 듣고 있자면 매번 똑같은 얘기를 되풀이하지.]


작가는 맹추의 밥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봉고도 작가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작가는 깊이 잠들어 있는 맹추를 조용히 흔들어 깨웠다. 맹추는 고개를 들더니 제법 힘차게 꼬리를 흔들어댔다. 맹추의 밥은 쇠고기, 노령견용 주식캔, 애견용 우유를 넣고 믹서기로 곱게 갈아 죽처럼 만든 것이었다. 맹추는 더 이상 사료를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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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이렇게 설명한단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잖아. 그런데 생명을 아끼고 돌보는 일이 왜 이토록 비난받아야 하지? 고통받는 생명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어? 인간이 인간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것도 고통을 통해서이듯이, 그 고통받는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해도 우리는 그 생명에게 공감할 수 있는 거야. 우리는 상대가 인간이든 아니든 다른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스스로 더 인간적이 될 수 있어. 인간 중심적인 사상에 경도되어 당장 내 눈앞에서 고통받고 있는 생명을 외면하는 것이야 말로 오히려 가장 비인간적인 일이 아닐까? 누구도 나에게 둔감하고, 게으르고, 비겁해지라고 요구할 수는 없어.]


맹추가 밥을 다 먹자 작가는 거실로 나왔다. 봉고도 작가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작가는 애쿠와 꼬꼬 앞에 각자의 밥그릇을 놓아주었다. 애쿠의 그릇에는 고양이전용 사료와 고양이전용 닭가슴살 캔이, 꼬꼬의 그릇에는 고양이전용 사료와 고양이전용 참치캔이 담겨있었다. 물고기 종류를 좋아하는 꼬꼬와 다르게 애쿠는 생선 비린내를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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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항의하지. 그들은 고양이 울음소리에는 귀를 기울이면서 정작 사람들의 목소리는 묵살하고 있다고 말이야. 그것이 과연 진정 '인간적'인 것일까? 솔직히 말해서 고양이들은 핑계고 실은 본인들의 만족을 위해서 하는 일 아니야? 불쌍한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행위야말로 가장 손쉽고 값싸게 도덕적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 뒤에 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지. 고양이들이 내는 소음, 영역 싸움, 발정, 개체수 증가, 음식 찌꺼기와 배설물, 생태계 교란 등등. 그래, 복잡하고 구질구질한 건 골치 아프겠지. 그저 예쁜 고양이들에게 예쁘게 밥을 주는 예쁜 역할만 하고 싶은 거야. 선의라는 허울 뒤에 숨어서 유치한 특권 의식에 도취되어 엄중한 현실을 외면하다니.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꼭 착한 사람이 아니고,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꼭 착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성숙한 책임감이 그들에게는 결여되어 있어.]


애쿠와 꼬꼬가 밥을 다 먹자 작가는 뚜기의 밥그릇을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 봉고도 작가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애견전용 사료와 수제 육포가 담긴 커다란 그릇을 뚜기 앞에 놓아주자 뚜기는 허겁지겁 달려들어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사료며 육포가 사방으로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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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반론해. 우리들도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이런저런 실수도 하고 이런저런 문제도 일으키지. 특히 사람의 감정은 혼잡하고 지저분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이기 마련이야. 그래, 우리 마음속에 우월감, 특권 의식, 과시욕이 생겼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꼭 인과관계가 있는 건 아니야. 설사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꼈다고 해도,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려고 밥을 주는 건 아니란 말이야. 최소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만큼은 함부로 부정해선 안 되잖아. 오히려 반대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런저런 논리를 갖다 붙이며 이성적인 척 하지만, 실은 그저 자신들의 이기심과 무신경을 지적받는 것 같아서 과민반응을 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생태계의 질서를 교란시킨다고? 마치 복지를 반대하는 자유시장주의자들 같네. 길고양이는 자연 생태계가 아니라 이미 인간 영역의 일부라는 걸 부정하는 건 기만일 뿐이야.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관리하는 것도 결국 인간의 역할이고 책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비난받을 일도 없고 냉소적이 되는 것은 무척이나 쉽지만, 무언가 더 나은 일을 해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돌을 던지는 건 지독한 일이야.]


뚜기가 밥을 다 먹자 작가는 봉고의 밥그릇에 새끼 고양이용 사료를 붓고 새끼 고양이 전용캔에서 걸쭉한 고기 수프를 듬뿍 떠서 사료에 비벼주고는 그 위에 삶은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주었다. 봉고는 또래에 비해 입이 짧고 식욕이 왕성하지 않아서 작가가 특별히 더 신경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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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분노하지. 이걸 자꾸 추상적인 가치관의 문제로 몰고 가지 말란 말이야. 이건 경험과 일상에 관한 문제야. 우리가 처음부터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걸 반대했을까? 우리가 처음부터 고양이 밥에 약을 치고 다녔을까? 남의 집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과시하듯이 밥을 준 게 누구지? 하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을 다짜고짜 냉혈한 취급한 게 누구야? 그들은 길고양이를 살찌우면서 우리의 분노도 역시 살 찌운 거야. 우리가 이기적이라고? 왜, 이기적이면 안 되는 건가? 누군가가 자기 멋에 취해서 멋대로 하는 짓에 우쭈쭈 하며 무조건 찬성하고 이해해 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거야? 그런 특권 의식은 어디에서 오는 거지? 왜 우리를 죄인 취급하는 거야? 그들이 자기 방구석에서 무슨 짓을 하든 우리는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내 집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우리에게도 참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 그렇게 길고양이들이 불쌍하면 자기들 집으로 데려가면 될 게 아니야. 하지만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하고 싶지 않은 거지. 그들은 '좋은 일'이라는 허울 뒤에서 희생의 정도를 저울질하는 교활한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이건 선의와 악의에 대한 문제도 아니고, 생명에 대한 문제도 아니고, 심지어 길고양이에 대한 문제도 아니야. 바로 타인에 대한 존중의 문제라는 걸 전혀 이해하려들지 않는단 말이야.]


봉고가 제법 밥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작가는 기분이 좋았다. 배가 불러와 졸려워진 봉고가 눈을 비벼댔다.


[그리고는 저들은 서로를 향해 똑같이 외쳐.]


봉고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작가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정신병자들.]


봉고는 크게 하품을 했다.


[아니면 정말 너희 고양이들이 잘못인 거니.]


하지만 이미 잠이 든 봉고는 작가의 말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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