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고양이 봉고 - 13

by 곡도




[자, 오늘은 생일 파티다.]


양손에 무언가를 잔뜩 싸들고 들어온 작가가 신이 나서 외쳤다. 그 소리에 소파를 긁고 있던 뚜기가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와, 그렇군. 오늘이 바로 케이크를 먹는 날이군. 케이크를 먹는 날이야.]


그리고는 'HAPPY BIRTHDAY' 가랜드를 벽에 걸고 있는 작가에게 달려가 도와준답시고는 방해를 하기 시작했다.


[오호, 오늘이 바로 그날이구나. 생일이라는 거.]


창가에서 졸고 있던 꼬꼬도 꼬리를 흔들며 얼른 뛰어내렸다. 쫙 펴진 수염이 경쾌하게 흔들렸다.


[쳇, 생일이 뭐 대수야? 고약한 케이크를 먹는 날일 뿐이잖아. 그 '애완동물용 당근 케이크'라는 거.]


애쿠가 우웩 구토를 하는 시늉을 하자 꼬꼬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맞아. 그 케이크는 진짜 별로야. 차라리 밭에서 방금 뽑은 당근을 흙채로 씹어 먹는 게 더 맛있을 거야. 그렇지만 좋은 날이건 분명하잖아. 작가의 기분이 좋아지니까. 무엇보다 오늘만큼은 90년 대의 그 세기말적인 우울한 락은 듣지 않아도 돼.]


꼬꼬 역시 뚜기에게 합세해서 좌식 테이블에 연두색 체크무늬 식탁보를 깔고 있는 작가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참 나, 생일이라니. 인간들은 별걸 다 기념하는군.]


애쿠가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옆에서 어리둥절한 얼굴로 앉아있는 봉고에게 설명해 주었다.


[생일이란 태어난 날을 말하는 거야. 오늘은 작가의 생일이란다. 작가는 매년 자신의 생일날 우리 모두의 합동 생일잔치를 열지. 우리 생일은 알 수가 없으니까 한꺼번에 기념하자는 거야. 오늘은 당근 케이크를 먹고, 신나는 음악을 듣고, 내키는 대로 춤도 추고, 거실을 마음껏 어지럽혀도 혼나지 않는 날이란다. 그러니 너도 가서 즐기도록 해.]


그래서 봉고도 시키는 데로 했다. 그 바람에 파티 준비가 끝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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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쯤 근사한 생일상이 차려졌다. 모두들 상 주변에 모여들었고 특히 뚜기는 상자 속에 들어있는 케이크 때문에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 작가는 케이크 상자를 열 생각이 없었다. 작가는 모두에게 알록달록한 고깔까지 씌워주고는 만족스럽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작가는 결코 사람들하고는 이런 짓을 하지 않았다. 유치하고 남사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에 단 한 번 그도 이런 남사스러운 짓을 하곤 했다. 어쨌거나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마침내 케이크 상자를 개봉하는 순서가 되었다. 작가는 자신의 입으로 팡파르를 불며 케이크 상자를 열었다. 그것은 당근 케이크가 아니었다. 연어 케이크였다.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고 심지어 애쿠마저도 하나뿐인 눈을 가늘게 뜨며 몇 번이나 만족스럽게 깜빡거렸다. 작가는 케이크 위에 촛불 6개를 켜 놓았다. 하나는 작가 자신을 위해, 하나는 맹추를 위해, 하나는 애쿠를 위해, 하나는 뚜기를 위해, 하나는 꼬꼬를 위해, 하나는 봉고를 위해서였다. 모두들 케이크에 바짝 얼굴을 붙이고 모여들었다. 일렁이는 촛불이 모두의 얼굴에 부드러운 빛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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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작년보다 초가 하나 더 늘었구나.]


작가가 봉고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혼자 회상에 젖어 긴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희들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돈은 또 얼마나 많이 드는지, 제발 집 좀 어지르지 말라는 등등의 잔소리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작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뚜기의 입에서는 벌써 침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봉고는 촛불 하나를 가지고 장난을 하다가 그만 불을 꺼트렸다.


[자 자, 잠깐만 기다려. 맹추를 데리고 나올 테니까. 그럼 우리 모두 촛불에게 소원을 빌고 신나게 파티를 시작하자.]


작가는 말을 마치고 얼른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모두들 작가와 맹추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둘은 나오지 않았다. 초가 타들어가고 케이크 위에 쌓여있는 연어 위로 촛농이 떨어지는데도 방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작가가 무언가 이불 꾸러미를 들고 나오더니 그대로 말없이 집을 나갔다. 모두들 영문을 알 수 없어 어안이 벙벙한 채 그대로 앉아있었다. 이윽고 다 타들어간 초가 모두 꺼질 때까지도 작가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케이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케이크는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다. 신선한 연어에서 퍼지는 촉촉한 육즙. 모두들 작가와 맹추의 몫까지 남김없이 실컷 먹어치우고는 배를 두드리며 나가떨어졌다. 그제서야 봉고는 슬쩍 챙겨두었던 커다란 연어 조각 하나를 입에 물고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맹추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맹추가 늘 앉아있던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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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를 따라 들어온 애쿠와 뚜기와 꼬꼬도 그것을 보았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 봉고처럼 벙어리가 된 것 같았다. 그들은 파티 장식으로 어지러운 거실에 앉아 작가와 맹추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것이 그들의 삶이었다. 새벽이 되어서야 작가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없는 빈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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