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고양이 봉고 - 14 (완결)

by 곡도






한 밤중에 봉고는 잠에서 깨어났다. 혼자였다. 봉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방은 어둡고 조용했다. 아무도 없었다. 봉고는 방석 위에서 길게 기지개를 켜고는 거실로 나왔다. 거실도 어둡고 조용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었다. 애쿠는 소파 위에서, 꼬꼬는 냉장고 위에서, 뚜기는 식탁 밑에 깔아놓은 이불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봉고는 잠시 그대로 서서 그들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작가의 작업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업실 문 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봉고는 뒷 발로 몸을 일으켜 앞 발로 틈새를 비집고서 문을 열었다. 작가는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다가 방으로 들어오는 봉고를 발견하고는 웃었다.


[잠이 깼나 보구나. 아직 아침이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작가는 봉고를 안아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책상 위에는 여러 가지 그림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네가 우리 집에 온지도 벌써 꽤 시간이 지났구나. 이렇게 그림들이 많이 쌓인 걸 보면 말이야.]






작가는 그동안 그렸던 그림들을 봉고에게 한 장씩 보여주었다. 처음 봉고가 눈을 떴을 때,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처음 애쿠와 꼬꼬와 뚜기를 만났을 때, 처음 맹추를 만났을 때, 처음 파티를 했을 때, 그리고 처음 경험하는 이별 등등, 수십 장은 족히 되는 그림들이었다.


[이제 너에게 더 이상 처음은 없을지도 몰라.]


작가가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똑같은 매일이 반복되겠지. 같은 음식, 같은 사건, 같은 낮과 밤, 같은 이야기들. 앞으로 평생 동안 말이야. 그리고 그런 너를 바라보는 나의 죄의식도 점점 쌓여가겠지. 과연 생명을 이 작은 공간에 가두어두는 게 정당한 건지, 네가 과연 행복한 건지, 내가 최선을 다 하고 있긴 한 건지, 영원히 알 수 없어서 나는 고통스럽겠지. 그러다가 결국 너희가 하나씩 세상을 떠날 때면, 나는 솔직히 안도하게 될 거야. 나도 이제 홀가분하게 살 수도 홀가분하게 죽을 수도 있을 테니까. 전에도 말했지만 난 동물 따위는 기르고 싶지 않았단다.]


늘 그렇듯 봉고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너희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멀리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싶어. 나와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면 말이야. 그럼 나도 진정 행복해질 텐데. 하지만 그런 곳은 없어. 그래서 미안하구나.]


봉고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너를 주인공으로 했던 글도 별로 반응이 좋지 않았어. 물론 너의 잘못은 아니야. 내 잘못이지. 무엇보다 나한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주제였어. 억지로 감상과 감동을 짜내려 하다니. 특히 12편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였단다. 그래서 이만 이 글을 마치려고 해. 읽는 사람만큼이나 쓰는 사람도 흥미를 잃어버렸으니 말이야. 글이 잘 되면 너에게 보답으로 생참치라도 거하게 한 번 쏘려고 했는데, 다 틀려버렸지 뭐야.]


봉고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거기다 제일 최악이 뭔지 아니? 멀쩡한 너를 벙어리로 만들었다는 거야. 사람의 말을 할 줄 모른다고 해서 네가 정말 벙어리인 건 아닌데 말이야.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는 네가 벙어리나 다름이 없단다. 너희들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거든. 그건 정말 괴로운 일이지만 어쩌면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 ]


봉고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자, 이제 좀 더 자렴.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어. 자고 일어나면 새 날이 밝아있을 거야. 뭐, 딱히 특별한 날은 아니겠지만 좋은 날이기를 진심으로 바래.]

봉고는 [야옹]하고 작게 울더니 작가의 손에 머리를 부벼댔다. 그리고는 작가의 무릎 위에 둥글게 몸을 말고 다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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